제목 | [전례] 구약성경의 예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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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8-01-10 | 조회수1,844 | 추천수0 | |
[전례배움터] 구약성경의 예배
지난 호에서 인간이 신적존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타난 "자연적 예배"와 하느님의 계시에 의해 나타난 "계시된 예배"를 비교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구약성경의 예배"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구약 예배의 형성
구약의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하느님의 거룩함에 함부로 가까이 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만나기 위해 세속으로부터 벗어난 거룩한 장소(성소), 거룩한 사물(계약의 궤, 제단, 제구, 제물), 거룩한 사람(사제, 레위), 거룩한 시간(축제일, 안식일), 거룩한 행위(정결례, 축성, 할례, 제사, 기도, 봉헌, 피를 뿌림), 거룩한 법규(단식, 금령)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하느님과 만나기 위해 성별(축성)된 것으로 간주되었고, 세속적 용도로는 사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과 만날 수 있으며, 하느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거룩한 영역이 나타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기 전에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단순했습니다. 선악과의 금령을 어기지 않고 하느님께 복종하는 한 인간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창세 2,9; 3,22) 그리고 "나무열매를 먹는다."는 것은 일종의 예배행위로 나타나며, 이를 통해 하느님과 친밀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인류의 첫 범죄 후에 인간은 하느님과 단절되게 되었으며, 이 때부터 예배에는 피 흘림의 희생이라는 요소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아담의 자손들, 노아, 아브라함 등)은 하느님께 제단을 쌓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립니다.(창세 4,26; 8,20; 12,8) 그러나 하느님은 어떤 예배라도 전부 받아들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은 예배를 드리는 인간의 마음을 중요시 하셨으며(참조. 카인과 아벨의 예물: 창세 4,3-5), 몇몇 예배 형식은 금지하였습니다. 금지된 형식은 이방신 예배 혹은 우상숭배와 관련된 것으로, 사람을 죽여 바치는 제사(참조. 이사악의 희생: 창세 22장; 2열왕 16,3; 레위 20,2), 풍요를 기원하는 신전 매춘(1열왕 22,47; 신명 23,18), 신상의 제작(신명 4,15-18; 탈출 32,4) 등입니다.
이스라엘의 특징적인 예배이며, 유일신 하느님의 경배라는 특징을 갖춘 구약 예배의 본격적인 출발점은 출애굽 사건입니다. 이것은 정치적 측면에서 노예생활에서 해방과 이스라엘 백성의 형성이지만, 종교적 측면에서 이방종교로부터의 참회와 하느님 신앙의 수용이며, 그 자체로 특정한 예배를 설정하게 됩니다. 이 때부터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섬기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형성되어 "사제적 백성(탈출 19,6)"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2. 구약 예배의 특징
① 공동체적 차원 구약 예배의 공동체적 차원은 우선 이집트 탈출로 형성된 이스라엘 백성에 있어서 정치, 종교, 사회의 공생관계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택된 백성이며, 하느님께 성별된 백성이고, 따라서 계약을 지켜야 한다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참조. 탈출 19,5; 신명 6,4-9; 시편 33,12) 축제, 예배, 예절의 모든 행위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현존 속에서 살아가겠다는 백성의 제안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② 역사적, 기념적, 예언적 차원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역사 안에 개입하시는 하느님과 맺은 관계, 하느님께서 행하신 구원행위, 구원사건을 바탕으로 세워집니다. 구약 예배의 이러한 역사적 차원을 잘 표현하는 개념은 바로 "기념(anamnesis)"입니다. 기념은 과거에 수집한 추억을 회상하는 단순한 기억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념은 과거에 하느님께서 행하신 구원사건이 어느 정도 재현(再現)되고, 현재화(現在化)되어 생생한 사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기념은 과거에 구원사건을 행하신 하느님께서 "지금 여기에서(hic et nunc: here and now)" 동일한 구원사건을 행하실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런 이유에서 하느님께서 "선조들(신명 5,3)"이 아니라 현 세대와 계약을 체결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것은 예배의 중심이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과거의 구원사건은 지금도 유효한 은총의 선물로 다가올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희망도 솟아나게 합니다. 과거에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구원사건은 미래에도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 줍니다. 이것을 우리는 예배의 예언적 차원이라고 부릅니다.
③ 내적, 실천적 차원 구약성경은 예배에 대해서 언급할 때마다, 내적 정결의 필요성과 계약에 충실할 필요성을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내적 정결에 대해서, 예배는 "자비를 베푸는 의로운 이(집회 35,1-10)?, ?회개하는 마음(시편 40편, 50편)"의 봉헌으로 행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예배와 계약준수, 즉 예배와 삶은 아주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스켐에서 행한 연설(여호 24장)에 의하면, 구원사건을 선포하는 하느님의 말씀과 백성의 응답 사이의 밀접한 관련은 "구원사건을 행하신 하느님을 역사 안에서 만남?, ?그 만남을 오늘날 예배에서 흥겹게 거행", "계약에 충실한 삶의 일관된 응답" 등의 세 가지 순간으로 나타납니다. 여호수아의 연설에 대해 백성은 "우리는 주 우리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의 말씀을 듣겠습니다."(여호 24,24)라고 장엄하게 대답하고 계약을 맺습니다. "섬기다"라는 동사는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완전한 의탁을 표현합니다. 이스라엘에게 구원역사, 예배, 율법은 이토록 결합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형식주의의 유혹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예배는 예배를 이끌어내는 하느님의 말씀으로부터도 분리되었고, 예배에 뒤따라야 할 삶으로부터도 분리되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이 계약으로부터 요구받는 삶을 잊어버린 채, 예배 그 자체에 집착하게 되자, 예배와 삶은 분리되어 버렸습니다. 예언자들은 삶과 분리된 예배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이사 29,13) 이러한 예언자들의 비판은 계약의 실천을 통하여 올바른 예배를 확립하려는 것이었습니다.
3. 글을 맺으면서
먼저 각자가 체험한 구원사건 가운데 가장 크게 기억에 남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구원의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도록 합시다. 이것은 개인적인 단계의 "기념"이 됩니다. 이러한 기념은 미래에도 우리를 구원해 주실 하느님을 신뢰하고 의탁하게 도와줍니다. 또한 과거에 우리를 구원해 주셨고, 앞으로도 구원해 주실 하느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도록 좀더 열심히 살기로 다짐하고,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월간 빛, 2006년 2월호, 장신호 요한보스코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전례꽃꽂이연구회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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