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사] 미사 때 독서를 봉독하는 올바른 장소는 어디입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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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9-02-08 | 조회수2,119 | 추천수0 | |
[전례와 생활] 미사 때 독서를 봉독하는 올바른 장소는 어디입니까?
미사 - 열세 번째 이야기 미사 때 독서를 봉독하는 올바른 장소는 어디입니까?
위 제목의 물음에 대해 우리는 간단하게 말할 수 있으며 미사 전례서 총지침의 해당되는 항목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본기도가 끝나면 모두 자리에 앉는다. … 독서자는 독서대로 가서 미사 전에 이미 놓아둔 독서집에서 첫째 독서를 선포한다.”(미사 전례서 총지침 128항) 그리고 이는 복음 전 둘째 독서에도 해당됩니다.(미사 전례서 총지침 130항) 왜냐하면 “하느님 말씀은 성당 안에서 그 존엄성에 맞갖은 선포 장소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 장소는 말씀 전례 동안 신자들이 자연스럽게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곳이어야”(미사 전례서 총지침 309항) 하기 때문입니다.
미사의 역사를 살펴보면 비록 말씀의 선포를 위해 의무화된 장소를 지시한 어떤 시대도 없었지만, 적어도 천 년대에 와서 이 장소는 제단 영역, 그러니까 사제석 앞부분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습니다. 미사 안에서 말씀과 성찬의 관련성은 서방에서는 오랜 세월 속에 신학적으로 자리잡고 있었으며 표징으로도 항상 알아보았습니다. 언어적으로 현재까지도 강론대라는 말은 라틴어 칸첼리(cancelli), 곧 사제석을 둘러싸고 있는 제단 울타리(cancellus 칸첼루스) 라는 라틴어 표현에서 생겨났습니다. 강론대는 중세 전성기와 중세 후기에 와서야 비로소 제단에서 완전히 분리되었으며 가끔은 신자석의 중간부분(원주 기둥 상단 부분)에 자리하기도 했습니다.(중세에 건축된 성당 내부)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한때 강론은 전례와 완전히 분리되기도 했으며, 또 어느 때에는 아주 큰 교회 안에서는 청중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필요했습니다.(음향기기가 전무하였던 시대였으므로) 성경 독서대인 암보(Ambo)의 옛 형태인 우리 시대의 독서대는 원래 제단 가까이에 자리했던, 생겨난 자리에서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여기에는 신학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전례개혁은 우리에게 하느님 말씀의 품위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는 말씀과 성사는 독서대와 제단의 가까운 자리에서 그 외적인 표지를 가집니다.
제대 가까이에 자리하는 독서대는 그와 더불어 단순히 임의로나 또는 음향적인 문제만은 아닙니다. 올바른 성경 봉독 장소는 모든 음향학적 경험에 따라서 그리고 말하는 자와 듣는 자와 마주하는 지시에 상응하게끔 자리잡게 합니다. 그렇더라도 소리의 음이 참석한 모든 사람에게 보다 쉽게 도달하도록 (더 이상 중세기처럼) 듣는 사람의 머리 위에 높게 자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생생한 접촉은 듣는 것과 보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는데서 이상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 오래지 않은 지난 시대에 차부제는 서간경(독서)을 신자들과 등을 지고 제대를 향해 노래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은 그리스도를 암시하며 제대는 그리스도를 상징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같은 우의적 해석은 더 이상 자리하지 않습니다.
교회건축의 다양한 단면도들에서도 독서대 자리를 정확히 규정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 독서대는 원칙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책받침대가 아닌 고정된 자리여야 합니다. 독서대는 “성당의 구조에 따라 설치하되 신자들이 서품 봉사자들과 독서자들을 잘 바라볼 수 있고 그들이 선포하는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고 미사 전례서 총지침(272항)은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독서대는 말씀 전례의 본질적인 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독서와 화답시편, 복음봉독, 부활찬송, 강론과 보편 지향 기도가 바쳐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독서대는 하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 상징성에서 하느님 말씀의 하나 됨에 가장 잘 부합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그 고유한 등급을 가지지만, 그렇더라도 성경 전체가 하느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월간 빛, 2008년 12월호, 최창덕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장량성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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