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초기의 세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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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9-07-02 | 조회수1,876 | 추천수0 | |
[전례 해설] 초기의 세례
원시 교회의 세례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3-5).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부활과 성신 강림을 체험한 베드로 사도는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사도 2,38) 하고 설교하였다. 이 설교를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다(사도 2,41 참조). 바오로 사도도 개종할 때 다마스커스에서 세례를 받았고(사도 9,19 참조), 그의 서간들 안에서도 그리스도 신자들이 모두 세례를 받았음을 말한다(로마 6,3-4; 1고린 1,13-15; 6,11; 갈라 3,27 참조). 따라서 교회의 탄생과 동시에 세례도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세례가 “주 예수 그리스도” 또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사도 2,38; 8,16; 10,48; 1고린 6,11) 베풀어진 듯한데, 그 의미는 세례자가 이제 예수의 소유가 되고, 그분에게 양도되어 그분에게 속하게 된다는 것이며, 따라서 그분에게 순종할 의무가 지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삼위일체적 세례 양식(마태 28,19; 디다케 7,1.3 참조)이 우세해지고, 이제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가 거행된다.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선포된 복음을 들어야 하고,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해야 한다(사도 16,30-31 참조). 이 신앙 고백에서 다른 모든 신조를 요약하고 포함하는 중요한 신조는 그리스도의 부활이다(로마 10,9 참조). 이 신앙은 완전한 회개를 요구하며 생활 전체를 변화시키길 요구한다. 물론 세례받을 의향도 전제된다. 사도 바오로는 세례 교리를 더 심화시키고 보충하고 완성한다. 그에 의하면 세례는 세례자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무덤에 묻히심과 부활에 일치시킨다(로마 6,3-5; 골로 2,12 참조). 즉, 침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무덤에 묻히심을 상징하고, 물에서 나옴은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부활함을 상징한다. 이렇게 세례는 죄의 도구로서의 육신을 죽게 하고(로마 6,6 참조)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한다(로마 6,11 참조). 결국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빠스카 신비에 참여하게 된다.
사도 시대와 교부 시대를 연결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인 “디다케”도 세례에 관한 귀중한 증언을 전해 준다. “모든 것이 다 준비된 다음 흐르는 물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만일 흐르는 물이 없거든 다른 물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찬물이 없거든 더운물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물이 충분하지 못할 때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이마에 세 번 물을 부어라”(7,1-3 참조). 이 증언을 통해 그 당시 세례 집행의 일반적 방법은 침수식임을 알 수 있고(사도 8,39 참조), 이마에 물을 붓는 수주식은 예외적 방법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수주식에 대한 1~2세기의 유일한 증언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다 준비된 다음 세례를 베풀라.”는 증언을 통해서 볼 때, 세례를 위한 체계적 준비가 시도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마태 28,19-20 참조). 물론 오늘처럼 교리 교육에 중점을 두기보다 윤리적 준비에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즉, 생활 중심의 준비를 시켰다.
3세기의 세례
교회는 3세기에 반복된 박해에도 불구하고 비약적 성장을 하게 된다. 250년의 로마 교회가 규칙적으로 1500명의 빈민들을 도왔다는 사실을 통해, 당시 공동체가 많은 그 신자들로 구성돼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떻게 교회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물론 그리스도교의 내적 힘과 초자연적 기원에 근거한다. 그러나 히뽈리도는 이에 대한 흥미 있는 대답을 제공해 준다. 그의 사도 전승 둘째 부문은 새 예비자를 받아들임, 세례 예비 기간, 세례식에 관한 내용을 다룬다. 여기서 입교 희망자가 입교 준비를 허가받기 채워야 할 여러 가지 조건들이 언급된다. 우선 입교 희망자는 교회 대표자들에게 안내된다. 지원자의 이때 신앙을 갖고자 하는 의도가 진실한지 확인되고 지원자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특히 그리스도교 윤리의 요구에 상응한 혼인 생활을 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이어서 신자에게 적합하지 않은 직업들이 열거된다. 외설죄나 우상 숭배와 관련 있는 모든 직업, 즉 우상 숭배 성직자나 신전지기, 연극 배우나 연극 흥행사, 서커스나 원형 극장 관계자, 무술 시합자, 군인들, 고급 관리와 같은 사람들은 그러한 직업을 포기하거나 우상 숭배와 관련되는 일 혹은 외설과 관계되는 일들을 거부해야 입교 준비가 허용되었다. 이렇게 교회는 단호하게 양자 택일을 했다. 반쪽 신자내지 엉터리 신자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철두 철미한 교회의 자세가 오히려 선교에 도움이 됐다. 아울러 신자들의 모범이 선교에 큰 힘이 됐다.
입교가 허용된 사람들은 이제 세례 준비를 위해 3년 동안 준비해야 했다. 이 기간은 조직적 교리 공부를 위한 기간은 아니었고 윤리적 수련 시기였다. 종교적이고 금욕적 수련을 동반하고, 거기에 적합한 가르침을 제공하는 일종의 수련기였다. 예비자들은 말씀의 전례에 참여할 권리를 가졌다. 그러나 그들은 독자적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것은 교사 한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성서에서 선택된 부분들을 읽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이를 위해 적합한 윤리적 가르침을 담고 있는 책들이 선택됐다. 이 가르침은 항상 기도로 끝맺어졌고, 교사는 헤어질 때 자기 학생들에게 안수로 강복했다. 3년이 경과했을 때 세례 후보자들은 그들이 그리스도교 이상에 적합한지 검토받는, 말하자면 품행에 관한 시험을 치렀다. 이 시험에 통과되면 이제 세례 후보자에게는 보다 직접적 세례 준비가 허용됐다. 이 시기는 부활시기가 시작되기 전의 시기였다.
이제는 가르침이 더 계획적으로 이루어졌고, 중심 내용도 더 이상 윤리 가르침이 아니고 신앙의 가르침이었다. 또한 구원에 관한 복음이 가르쳐졌다. 그리고 사도 신경이나 다른 신경(信經)을 교리가 종합됐고, 후보자들은 이 신경을 암기해야 했다. 세례받기 얼마 전 그들은 주교 앞에서 이것을 암송해야 했다.
떼르뚤리아노에 의하면 세례받기 전 몇 주간 동안 세례 후보자들은 재를 지키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밤샘을 해야 했다. 히뽈리또에 의하면 주교는 세례 전 며칠 동안 여러 차례 후보자를 위해 구마식을 거행했다.
세례식은 부활성야에 거행됐는데, 히뽈리또는 이렇게 증언한다. “닭이 울면 우선 물 위에 기도를 바친다……. 세례 후보자들은 옷을 벗는다. 그 다음 어린이들에게 세례를 준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 말해야 한다. 말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해서 부모나 그 가정에서 온 어떤 사람이 말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남자들에게, 맨나중에 여자들에게 세례를 베푼다”(사도전승 21장 참조). 그 당시에 부모가 신자인 경우, 갓난 아이들은 즉시 세례를 받아야 했다.
세례는 사탄에 대한 거부 의식으로 시작됐다. 사탄을 거부하는 것은 세례에서 첫번째 중요 행위였다. 그 다음 신앙 고백이 이어졌다. 마귀를 거부하는 대답은 나는 끊어 버립니다(Renuntio)이고, 신앙 고백은 나는 믿습니다(Credo)이다. 이렇게 해서 세례자는 마귀의 진지에서 그리스도의 진지로 옮겨 간다. 그리고 나서 오늘 우리가 예비자 성유라고 부르는 구마 성유로 세례자는 도유됐다. 물로 씻는 예식 후 세례자는 크리스마 성유로 한번 더 도유했다. 이 도유는 세례자가 이제 완전히 그리스도에게 속한다는 것을 표현한다. 그리스도는 “도유된 분”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주교는 새 세례자에게 안수했다. 이 안수도 한 가지 도유와 연결돼 있었다. 이것은 세례와 연결된 견진이다. 그 다음 주교는 새 신자들과 평화의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나서 새 신자들은 첫번째 성찬례에 참여했다.
세례 후 새 신자는 “육신의 부활과 성서에 상용한 다른” 교육을 받았다. 좀더 나중에는 한 주간 동안 매일 교리가 있었는데, 이때 성사에 관해 자세하게 가르쳐졌고, 세례 예식의 의미, 성찬례 같은 신비 교육이 있었다.
옛 교회의 생활에서 세례는 아주 탁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리고 신자는 누구나 세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세례받은 것을 큰 영광으로 여겼고, 그리스도인이라는 긍지를 갖고 살았다.
[경향잡지, 1989년 5월호, 장석윤 비오(태백 장성본당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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