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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영성체의 바른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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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2 조회수7,591 추천수0

[전례 해설] 영성체의 바른 자세

 

 

한껏 멋을 부린 한 아가씨가 손에 장갑을 끼고 영성체하러 나왔다. 성체를 주려던 사제가 “장갑을 벗든지 혀를 내미십시오.”라고 가르쳐 주었다. 멋쟁이 아가씨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허둥지둥 장갑을 벗고 성체를 받아 모신 다음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여인들이 손에 흰 천을 감고 성체를 받던 때가 있었다. 갈리아(Gallia) 전례의 영향을 받은 라인강 서편 지역에서 8세기경에 행한 성체 흠숭과 경건함의 한 표현이었다. 마치 황제를 알현하여 충성을 서약할 때 흰 천으로 손을 감은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후 성체 공경의 표시로 장궤, 영성체대, 흰 천으로 감싼 영성체대 등의 관습이 생겼었다. 너무 흠숭과 공경을 중요시하여 영성체가 친교를 위한 식사나 잔치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마치 의사가 환자에게 약을 먹이는 식이었다.

 

지금도 영성체하는 신자들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두 손을 다 내미는 할머니, 애기를 안고 오른손만 내미는 부인, 무릎을 꿇고 입을 벌리는 신자, 더구나 덩달아 따라 나와 어쩔 줄 모르는 예비자도 더러 있다.

 

 

입으로냐 손으로냐

 

영성체는 혀 혹은 입으로 자유로이 할 수 있다(사목 지침서, 2편 39조). 이 근거는 “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 신심 예식서”(21항)에 자세히 나와 있다. “영성체를 시켜 줄 때에는 축성된 제병을 영성체자들의 혀에 얹어 주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것은 오랜 세기 동안 계속되어 온 풍습이다. 그러나 각 주교회의는 자기 지역 안에서 축성된 제병을 영성체자들의 손에 얹어 주는 방법을 허락할 수 있다. 조건은 이런 결정의 회의록을 교황청에 보내서 확인을 받아야 하고, 불경의 위험이 전혀 없어야 하고 성체께 대한 그릇된 생각이 신자들 마음속에 스며들지 않을 경우에 한한다. 두 경우 다 자격 있는 성체 분배자가 성체를 분배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9세기까지는 신자들이 성체를 하느님의 선물로 여기고 손으로 받아 모셨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빵을 들어 감사 드리고 그것을 쪼개어 나누어 주셨다. 물론 참석자들의 손에 주셨다. 유다인들의 식사 풍습도 빵을 식탁이나 천 위에 놓고 감사 기도를 드린 다음 손으로 떼어 나누었다.

 

4세기말 예루살렘의 주교 학자 성 치릴로는 이렇게 가르쳤다. “성체를 영할 때에는 왼손을 내밀고 그 위에 오른손을 얹는다. 마치 황제를 맞이하듯이 성체를 받고, ‘그리스도의 몸’ 하고 사제가 말하면 ‘아멘’ 하고 대답한다. 그 다음 손 위의 성체께 절하고 눈으로 응시한다. 그리고 나서 성체를 입으로 가져가 영한다.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다.”

 

물론 지방에 따라 다른 관습도 있었으나 손으로 하는 영성체 방식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9세기부터 성체 흠숭의 열성이 점차 커져서 성체도 혀로 받아 먹게 되었다. 작은 성체 조각이라도 천이나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 또 성체를 집으로 가지고 가는 폐단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입으로 하는 영성체는 단지 조심과 공경 의식에서 나온 것이므로 식사의 뜻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었다.

 

 

혀도 지체, 손도 지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여러 나라에서 손의 영성체를 다시 허락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교황이 주교들 회합 때 영성체 방식에 대하여 설문 조사를 하였는데 대부분의 주교들은 입의 영성체만을 찬성하였다. 그러나 무시 못할 소수의 의견을 인정하여 1969년 교황청 회칙 “주님의 기념”(Memoriale Domini)을 발표하였다. 손의 영성체가 보편화된 지역의 주교회의는 3분지 2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 교황청의 허가를 받아 손의 영성체를 입의 영성체와 똑같이 실시하도록 하였다.

 

바오로 사도는 “몸은 한 지체로 된 것이 아니라 많은 지체로 되어 있습니다.”(1고린 12,12-27)고 하였다. 즉 지체는 몸을 위하여 각각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다. 어느 하나가 다른 것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다. 반면 야고보서(3,5-10)에는 혀에 대한 경고도 있다. “혀는 악의 덩어리입니다. 우리는 같은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양하기도 하고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같은 입에서 찬양도 나오고 저주도 나옵니다.”

 

손은 어떠한가. 부정을 행하고 남을 때리기도 한다. 한편 일을 하고 애무도 하며 남을 축복할 수도 있다. 사제의 손은 서품식 때 축성되므로 ‘천 년 전통’의 고귀한 손이라고 보지만 그전에야 다른 신자들과 다를 바 없었다.

 

이제 성체 흠숭의 참뜻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흠숭의 태도는 항상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다. 동작은 마음의 한 표현일 뿐이다. 따라서 동작은 다르고 변할 수 있으나 정성은 변치 말아야 한다. 성찬의 빵을 손으로 영하거나 턱밑에 성반을 받치고 혀로 영하거나 모두 다 흠숭의 표현이 될 수 있다. 둘 다 옳고 바른 자세이므로 새삼 문제삼을 것이 못된다. 도리어 영성체를 통해 일치와 사랑의 성사를 더욱 깊이 깨달아야 한다.

 

 

성체와 성혈의 배령

 

손으로 영성체할 때에는 오른손으로 왼손을 받쳐들고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 하며 성체를 보이면 “아멘”으로 응답하며 성체를 받아들고 옆으로 몇 걸음 비켜서서 오른손으로 집어 입에 넣는다. 영성체 직후에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므로 감실이나 사제 앞에 절할 필요는 없다. 특별한 사유 즉, 아기를 안았거나 손을 다쳤으면 입으로 영성체한다. “아멘”으로 응답한 후 혀를 입술 위로 내밀며 입을 벌린다. 특별한 사유 없이 개인 신심에서 무릎을 꿇거나 입으로 영성체하면 사제가 성체 분배 중 혼란해짐으로 삼가는 것이 좋다.

 

성작을 받아 성혈을 영할 때에는 사제가 “그리스도의 피” 하면 영성체자는 “아멘” 하고 대답한다. 성작과 성작 수건을 받아들고 입으로 마신다. 성혈이 흐르지 않도록 수건을 입에 댄다. 사제에게 성작을 돌려주고 자리로 돌아온다. 사제는 수건으로 성작의 가장자리를 닦는다. 성체를 성혈에 찍어서 영할 경우에는 사제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고 말한다. 영성체자는 “아멘” 하고 손에 성체를 놓을 수 없으니 입으로 직접 받아 영하고 자리로 돌아간다.

 

 

양형 영성체

 

성체를 받아 먹고 또 성혈을 받아 마시는 것을 양형 영성체라고 한다. 최후 만찬 기록(3월호 102면 참조)에 보면 축복의 빵과 더불어 축복의 잔에서 예수님 계약의 피를 마시는 것은 당연하고도 중요한 식사였다. 그러므로 13세기까지는 평신도들까지 모두 축성된 포도주를 마셨다. 그런데 왜 점차로 성혈 배령이 사라졌는가?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지나친 염려와 두려움이었다. 실수로 성혈 한 방울이라도 흘리는 날이면 대죄를 면치 못한다고 생각하였다. 두 번째는 중세 신학이 이 변화된 빵에 온전하고도 영원한 그리스도께서 피를 포함하여 현존하신다고 가르쳤다. 평신도에 대한 성혈 배령의 금지는 1415년 독일 콘스탄스 공의회의 결정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 헌장(55항)을 통하여 제한하긴 하였지만 다시 성혈을 영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뜨리덴띠노 공의회에서 확정된 교리 신학적 원리를 침해하지 않고 교황청이 규정할 경우, 두 가지 형태 즉 주의 몸과 피의 배령은 주교의 판단에 따라, 성직자 수도자 및 평신도에게도 허락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영성체로서도 온전한 그리스도와 참된 성사를 받는다.”

 

 

받아 마셔라

 

“미사 경본 총지침”(242항)에 양형 영성체가 가능한 열네 가지 경우를 제시하고 있다. 몇 가지만 여기서 살펴본다.

 

(1) 어른 영세와 미사 때, 견진성사 미사 때, (2) 혼인 미사의 신랑 신부, (3) 성품(부제품과 신품) 받는 미사 때의 서품자들, (4) 미사 중 첫 서원, 갱신, 종신 서원 받는 미사 때의 서품자들, (5) 교회 직무를 부여받는 평신도들, (6) 병자를 위한 가정 미사에 참여한 이들, (7) 피정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 (8) 사제의 첫 미사 때 그 부모와 식구 및 특별한 은인들. 그 밖에도 주교회의 결정이나 주교의 판단에 따라 너무 많지 않은 신자들이 참여한 큰 축일에 양형 영성체를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양형 영성체로써 성찬의 표시가 더욱 완전하게 드러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새로이 영원한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의 뜻이 더욱 명백히 표현되며, 성찬과 세말에 하느님 나라에서 있을 잔치와의 관계가 더욱 확실하게 된다(미사 경본 총지침, 240항 참조).

 

초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동서방 어디서나 성체를 서서 받았고 특히 성혈을 영하기에는 서는 자세가 적합하였다. 12세기경부터 무릎을 꿇고 영성체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다시 서서 영성체하기 시작하였다. 1967년 “성체 신비 공경에 관한 훈령”에서 신자들은 무릎을 꿇거나 서서 영성체하도록 자유에 맡겼다. 덧붙여 여러 상황을 고려하고 형제적 일치를 도모하기 위하여 사제가 지시하는 대로 행동할 것을 권고하였다.

 

무릎을 꿇는 것은 그 자체가 흠숭을 뜻하므로 성체 앞에서 다른 존경의 표시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서서 영성체할 경우에는 줄을 지어 나와서 성체를 받아 모시기 전에 존경의 표시 즉 깊은 절을 히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자기 자리나 적당한 장소와 때를 가려서 행할 것이다.

 

 

하루 두 번의 영성체

 

교회법(canon)이 믿음과 행동의 규범으로 정착한 4세기경부터 영성체는 하루 한 번으로 제한되었다. 1967년 “성체 신비 공경 에 관한 훈령”(28항)에 의하면 세 가지 경우만 두 번의 영성체가 허락되었다. 즉 토요 특전 미사와 그날 아침 미사, 부활이나 성탄 축일 밤중 미사와 낮미사, 주의 만찬 미사와 성유 축성 미사였다. 1973년의 새 훈령(Immensae caritatis)은 이 범위를 더 넓혀 미사 중의 영세, 견진, 병자성사, 장례식 때에도 같은 날 두 번의 영성체를 허락하였다.

 

1983년 새 교회법은 제한 없이 두 번 영성체할 수 있게 하였다. 지성한 성찬(성체)을 이미 영한 이라도 같은 날 자기가 참여하는 성찬 거행 중에서만 다시 성체를 영할 수 있다(교회법 제917조).

 

 

공심재와 성체 분배자

 

공심재는 공복재라고도 한다. 즉 교회 규정에 따라 영성체 전 음식물을 먹지 않는 것이다. 초기 교회 신자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영성체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동방 교회는 영성체 전 단식하였다. 우리 신자들은 중세기부터 자정 이후 일체의 음식과 음료를 먹지 않고 그날 미사에 참여하여 영성체하였다.

 

1957년에야 3시간으로 공복재를 완화하였고 1964년부터는 한 시간으로 단축하였다. 현재는 새 교회법에 따라 다음과 같이 공복재의 규정이 완화되었다.

 

(1) 건강한 사람은 영성체 전 적어도 한 시간 이상 어떤 음식도 삼가야 한다. 단 불과 약은 언제든지 들 수 있다.

(2) 고령자, 병자, 간호하는 이는 공복 한 시간 이내에도 음식물을 섭취할 수 있다.

(3) 같은 날 두 번 이상 미사 지내는 사제는 한 시간 이내의 미사에 앞서 요기할 수 있다(교회법 제919조 참조).

 

규정이 완화되었다고 폐지된 것이 아니다. 성체께 대한 존경과 주님을 깨어 기다리고 준비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어야한다.

 

성체의 분배는 초세기부터 주교와 사제가 정식으로 행하였다. 그런데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체를 받아 가지고 집으로 가서 영하는 관습이 있었고 환자나 감옥의 수인들에게까지 전해줄 수 있었다. 처음 몇 백 년은 이렇게 필요한 경우 평신도들도 성체를 분배하였다.

 

4세기부터 부작용 때문에 평신도의 성체 분배가 금지되었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사제가 부족한 나라에서부터 점차 다시 허락되었다. 1969년부터는 합당한 교육을 받은 평신도에게 주교가 허락하였다. 시종직을 받은 자와 사제 없는 수도회 장상은 허락 없이 분배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정식 분배자인 사제의 지시에 따라 남용의 소지가 없어야 한다.

 

[경향잡지, 1992년 11월호, 안문기 프란치스꼬(천안 봉명동본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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