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림성탄] 구유 | |||
---|---|---|---|---|
이전글 | [전례] 전례 주년 | |||
다음글 | [전례] 주님의 현존에 관한 말씀 | |||
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9-07-08 | 조회수3,950 | 추천수0 | |
[전례상식] 구유
인류의 빛이신 예수께서는 유다 베들레헴의 한 동굴에서 탄생하셨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에서 사해에 이르기까지 넓게 펼쳐져있는 황폐한 유다 광야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조그만 도시이다. 베들레헴은 라헬의 무덤이 있는 도시이며(창세 35,19), 다윗의 고향이다(1사무 16,1.4).
전승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이 베들레헴에 있는 한 석회암 동굴에서 탄생하셨다. 330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여 그 동굴 위에 성당을 세움으로써 베들레헴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순례지가 되었다.
유다인들은 본래 유목생활을 하던 사람들이어서 마땅한 숙소를 찾을 수 없을 때에는 천막을 치고 겉옷을 펼쳐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하곤 했다. 마리아와 요셉 역시 숙소를 찾을 수 없자 그 근처 언덕의 동굴을 찾아 임시로 잠자리를 마련했던 것으로 보인다. 복음서는 이 사실을 “여관에는 머무를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루가 2,7)고 기록하고 있다.
‘구유’라는 표현에서 사람들은 이 동굴이 빈 동굴이 아니라 이미 외양간으로 사용하고 있던 곳으로 상상하게 되었고, 이러한 상상은 예수님의 탄생 장소를 묘사할 때에 나귀나 마소를 그려넣게 했다. 로마의 ‘성 마리아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는, 예수님을 눕혔던 구유조각으로 간주되는 다섯 개의 나무조각이 그러한 상상을 뒷받침해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팔레스티나와 에집트에서는 나무보다는 점토가 더 풍부하고 가격도 싸 가정에서 사용하던 많은 그릇들이 점토로 된 것들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나무로 된 구유를 상상한다는 것은 근거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주님께서 누워계셨던 구유는 아마도 바위를 파서 흠을 낸 것이었거나 아니면 점토나 돌로 된 것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구유는 아기를 눕히기에 아주 적합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경우 다 들고 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태어나신 시대에 사용하던 구유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시대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구유를 만들어온 전통은 꼭 역사성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점토로 만들기도 하고 나무로 만들기도 했으며, 한 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지만 그분께서 지니신 신성에 대한 존경으로 은으로 구유를 만들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구유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하고,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다양하게 구유를 꾸밀 수 있는지에 대하여 몇 가지 가능성을 제시할 것이다.
구유의 역사
프리쉴라 카타콤바에 있는 한 벽화는 예수님 탄생의 장면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 벽화는 무릎에 아기를 안고 계신 성모님과 누구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요셉으로 추측할 수 있는 건너편의 한 남자와 약간 높은 곳에 별을 그려넣었다. 이것은 쉽게 예수님의 탄생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 벽화는 2세기의 것이어서 예수님 탄생을 묘사한 첫 번째 그림으로 간주된다. 이 벽화는 이렇게 일찍이 앞으로 나타날 구유를 미리 보여주고 있다. 이 밖에도 그 카타콤바에서는 3~4세기의 것으로 간주되는, 주님의 공현을 묘사하고 있는 다른 그림들도 많이 발견된다.
성 세바스티아노 카타콤바에서도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벽화를 하나 찾아볼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구유를 소와 나귀와 함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마리아와 요셉은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는 예수님과 소, 나귀를 함께 그리고 있는 그림들을 많이 볼 수 있다. 4세기부터 6세기에 이르면서 관의 표면에 새긴 부조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마리아, 요셉, 목자들과 동방박사들, 소와 나귀들을 그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만들고 있는 구유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 7~8세기에는 곳곳에 이러한 형상을 조각하거나 그리게 된다.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더 구체적인 어떤 형태를 원해서 테오도로 교황(+649년) 때에는 ‘성 마리아 대성당’에 구유 경당을 세우게 된다. 그 뒤에 이러한 경당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비롯해 다른 성당들에도 생겨나게 된다.
마침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여러 세기를 걸쳐온 그리스도 신자들의 꿈을 실현한다. 그는 1223년 성탄 대축일 그레쵸(Greccio)의 동굴 안에 구유를 만든다. 프란치스코 성인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한 수사가 기록한 바에 의하면, 그날 여러 곳에 흩어져있던 수사들과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여러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밤을 밝히기 위해 초와 횃불을 들고 기쁨에 젖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모든 것이 잘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고 기뻐했으며, 구유를 바닥에 놓고 짚을 깔고 소와 나귀는 적당한 자리에 배치했다고 한다. 단순함이 돋보이고 가난과 겸손이 빛을 발산하는 자리였다.
그레쵸는 새로운 베들레헴의 모습으로 변했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소중한 밤인 것 같았다. 사람들은 생생하게 표현된 그 신비 앞에 크게 기뻐했다. 숲이 노래부르고 바위들이 기뻐 찬미하며 수사들은 주님께 찬양의 노래를 불렀다. 온 밤이 축제의 분위기 속에 지났다.
구유 앞에 선 프란치스코 성인은 형언할 수 없는 감회에 젖었다고 한다. 구유 앞에서 미사가 거행될 때에 성인은 신비스런 위로를 맛보았다. 그는 부제로서 거룩한 복음을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하고 임금님의 탄생과 조그만 도시 베들레헴에 대한 찬양을 내용으로 강론했다. 거기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이 성인과 같은 신비를 체험했다. 그들은 모두 구유에 누워있는 한 아기를 보았다. 성인이 그 아기에게 다가가 깊은 잠에서 깨우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 그날 그레쵸의 구유 앞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일이 있은 뒤 1330년 나폴리의 성 글라라 수녀원에 처음으로 구유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관습은 곧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지역의 특성에 따라 나무가 많이 쓰이기도 하고 흙을 구워 쓰기도 하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구유를 만드는 재료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 없이 매우 다양하게 쓰여지게 된다. 석고, 점토, 석회석, 대리석, 시멘트, 벽돌, 금, 은, 동, 종이, 골판지, 해초, 목재, 나무, 여러 가지 식물, 초, 생선뼈, 철사, 상아, 직물, 빵가루, 유리 등 쓰여지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다.
구유 만들기
구체적인 만들기에 들어가기 전에 전체적인 형태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하나의 외양간을 지어 그 안에 모든 것을 담아낼 것인지, 아니면 개방형으로 만들 것인지, 또 동굴의 형태로 할 것인지, 우리 나라 외양간의 형태로 표현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서양의 예를 보면 지방마다 각기 다른 문화적 특색을 보인다. 같은 지방이라도 제작자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예수께서 탄생하신 구유가 놓인 공간뿐만 아니라 온 동네를 만들어 동네 전체가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등장 인물도 많다. 여러 동네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언덕도 만들고 물이 흐르는 개울을 만들기도 한다. 전기 장치를 이용해 각 가정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장작불이 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인형도, 동물의 모형도 각기 다르다. 인형에 입힌 옷의 형태도, 색깔도 다르다. 천편일률적이고 단조로운 우리의 구유 모습과는 다르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그 각기 다른 구유를 보기 위해 ‘순례’를 한다.
우리는 어떻게 아름답고 독창적이며, 신자들에게 성탄의 신비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구유를 만들 수 있을까?
구유를 만드는 것은 어떤 목수 혼자서 외양간 하나를 만드는 것과 같은 단순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건축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그리스도의 탄생의 신비를 표현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뜻에서 당연히 하나의 종교예술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구유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예술감각을 갖춘 건축가를 필요로 한다. 외양간 하나뿐만 아니라 탄생장소, 주변동네를 표현할 때에는 언덕과 계곡, 건물, 개울, 식물의 적절한 배치를 위해 더 더욱 조화와 조경의 감각도 필요하다.
이런 모든 요소들을 두루 갖추면서도 예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표현의 폭은 훨씬 넓어진다. 그러나 건축가와 예술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위에서 이야기한 대로 먼저 구유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면의 제한 때문에 어떻게 창공과 항성, 빛과 구름, 흐르는 물의 효과를 내고 또 어떻게 건물을 배치하고 여러 가지 식물을 심고, 인형과 동물의 형상들을 제작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 없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다음 기회에 이런 것들을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
* 김종수 요한 - 주교회의 사무차장 · 본지 주간 · 신부.
[경향잡지, 1995년 12월호, 김종수 신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