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미사] 전례의 숲: 화답 시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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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4-09-23 | 조회수4,050 | 추천수0 | |
[전례의 숲] 화답 시편
말씀 전례는 주로 독서들과 그 사이에 있는 노래들로 이루어집니다. 말씀 전례에서 독서는 성경에 나오는 과거를 회상시키고 교육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때 사건들과 예언들을 실제 현실로 변형시킵니다. 그러므로 회중은 실제 사건에 참여하면서 하느님께 찬양 노래로 응답하게 됩니다. 이렇게 독서 끝에는 화답송, 곧 화답시편이 뒤따릅니다. 과거에는 화답송을 “층계송”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독서대에 오르는 층계에서 부르는 찬송가라는 뜻입니다.
화답송은 방금 들은 말씀, 곧 주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업적을 듣고 회중이 그분께 드리는 찬양이고 간청입니다. 독서의 메아리로서 그날 전례가 독서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알려주고 독서의 올바른 해석을 위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시편 각 단락에 후렴을 되풀이 합니다. 후렴은 중요한 음악 요소로서 시편을 이끌면서 그에게 색깔을 입히는 일을 합니다.
또한 방금 선포된 독서를 구원 역사의 틀에서 알아듣도록 도움을 줍니다. 후렴으로는 보통 그 시편 안에 들어 있는 독서의 주제에 맞는 구절이 선택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각 독서에는 그에 알맞은 화답 시편들이 따릅니다. 독서집에는 각 미사에 따라 화답송을 위해 후렴과 시편들을 실려 있습니다. 화답송은 원칙으로 말씀 전례에서 생략할 수 없습니다.
시편집은 구약의 기도책이며 성가책
독서집에 실려 있는 화답송은 시편집에서 가져온 시편들입니다. 때로는 시편집 밖의 구약과 신약의 찬가들도 있습니다. 시편집은 성경 전통에서는 성가책라고 불렀고, 그리스어로 “프살모이”(현악기로 반주하는 노래들)라고 옮겼습니다.
시편집은 구약의 기도책이며 성가책이었습니다. 여기 들어 있는 시편들은 오래되고 깊은 인간 체험이 녹아 기도로 변한 사금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시편의 도움으로 신자들은 쉽게 감사, 용서의 청원, 간청,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하느님 백성은 언제나 시편을 외워 기도에 활용하였습니다. 시편은 우리에게 성경의 이해를 열어줍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만나는데 도움을 줍니다. 그러므로 시편은 구약에 들어 있는 복음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시편에는 폭력적이거나 호전적인 내용도 있습니다. 또한 나쁜 이들을 저주하고, 불의한 이들을 멸시하는 시편들도 있습니다. 물론 화답시편과 성무일도 시편에서 당혹스런 시편들은 제외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전투는 무엇보다 우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원수들”, “악인들”, “불의한 자들”과 관련된 시편으로 기도할 때, 우리 사회, 그리고 우리 각자 안에 있는 “원수”, 악인”, “불의한 자”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하느님께 이러한 악을 맞서 싸우고 그것을 없애려고 하느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음악은 언제나 가사에 봉사해야
화답송에서 시편을 노래하는 것은 교회의 오랜 관습을 기억시켜줍니다. 실제로 초대 교회부터 교회는 시편을 사용하였고 특히 전례에서 항구하게 보존하였습니다. 4세기부터 시편집은 특히 서방 교회에서 하나뿐인 성가책이었습니다. 또한 실제적 이유로, 독서집 시편과 후렴은 독서의 주제에 맞게 선택되고 작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느 성가들에서는 보기 힘든 주제의 일치성이 있습니다.
화답송으로 독서집에 들어 있는 정해진 시편 대신 “로마 성가집”에 있는 시편들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교회의 승인을 받은 성가책에서 시편을 골라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지침에 따라 시편 외에 다른 성가는 부를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시편은 하느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지은 아무리 훌륭한 노래도 하느님 말씀보다 나을 수는 없습니다. 시편 노래를 선택할 때 음악은 언제나 가사에 봉사한다는 전례 원칙을 기억해야 합니다. 음악이 가사를 무시하거나 닦달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정감을 충족시키는 것보다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노래를 부르기 위해 하느님 말씀을 생략할 수 없습니다.
시편은 기원과 본성에서 노래로 하는 기도
시편들은 노래입니다. 그러므로 문학 유형을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곧 독서는 선포하고 시편은 노래로 불러야 합니다. 미사경본에는 화답송은 적어도 후렴은 노래로 바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일이나 대축일에는 언제나 노래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화답송을 바치는 방식으로는 선창과 회중이 번갈아 후렴과 시편을 노래하는 방식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시편은 기원과 본성에서 노래로 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노래 가사입니다. 그러므로 음악 요소들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은 원칙으로 성가대가 아니라 선창이 노래합니다. 선창은 시편 구절을 노래하고 회중은 후렴으로 참여합니다.
후렴 없이 모두 함께 시편만 노래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은 읽고 후렴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미사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형태입니다. 악기 반주에 따라 후렴은 노래하거나 읽고 시편은 읽는 방식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노래로 할 수 없으면 후렴과 시편을 낭송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이 경우 시편이 넷째 (또는 셋째) 독서로 변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시편은 예식을 보충하는 또 하나의 독서가 아닙니다. 방금 들은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에 대하여 회중이 감흥을 느끼고 노래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선창은 신자들이 후렴을 쉽게 노래하거나 낭송할 수 있도록 - 본문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경우 - 먼저 후렴을 노래하거나 낭송한 다음 모두가 다시 후렴을 반복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나아가 필요한 경우, 회중이 쉽게 후렴을 바칠 수 있도록 회중과 함께 노래하거나 낭송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시편 담당이나 선창자가 없을 경우 독서자가 이 봉사를 할 수 있습니다.
독서의 선포와 화답 시편 노래는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독서와 화답송은 내용도 다르고 기능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산문, 이야기 형태고 다른 하나는 기도 시입니다. 하나는 구원의 업적을 기억하고 다른 하나는 그에 대하여 묵상하며 응답합니다. 또 같은 사람이 계속하여 지루함을 주는 것도 거행의 매끄러운 흐름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말씀하시고 인간은 듣고 응답
시편은 당신 백성과 하느님 사이에 대화를 풍요롭게 합니다. 또한 시편은 하느님 말씀이면서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로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독서에 응답하는 기도입니다. 사실 기도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응답입니다. 하느님은 말씀하시고 인간은 듣고 응답합니다. 공동체는 시편으로 응답을 하면서 하느님 말씀에 능동적으로 결합하려는 의도를 표현합니다. 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새로운 방법으로 그것을 표현합니다.
말씀 전례에서 화답송은 숨어 있는 보석입니다. 말씀 전례 전체를 아름다운 교향악 연주로 바꾸어 줍니다. 그 가치와 중요성을 모르고 “콩쥐”처럼 무시하고 학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3년 10월호, 심규재 실베스텔(신부, 작은형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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