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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의 숲: 기념 환호(신앙의 신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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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6-09-14 조회수9,415 추천수0

[전례의 숲] 기념 환호

 

 

“성찬 제정” 뒤에 사제는 “신앙의 신비여!”하고 외칩니다. 그리고 교우들은 정해진 기도문으로 환호하며 응답합니다. 이 예식을 “기념 환호”(acclamatio anamneseos)라고 부릅니다. 환호의 내용이 기념이기 때문에 이 이름을 붙였습니다.

 

사제가 외치는 “신앙의 신비여!”는 교우들의 환호를 이끄는 기능이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미사에서는 포도주 잔을 축성하는 말씀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다. 

신앙의 신비(여).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이것들을 행할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행하여라.

 

이 구절은 6-7세기에 축성문에 들어왔는데 왜 들어 왔는지, 그 뜻은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전례 개혁 때 바오로 6세 교황 뜻에 따라 성찬 제정 이야기 밖으로 옮겼습니다. 감사기도 한 가운데 신자들의 참여를 넣어 더 살아 있는 전례 거행에 이바지하였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자들은 감사기도에서 시작 대화, “거룩하시도다”, 그리고 마지막 “아멘”에만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신앙의 신비”는 무엇일까요? 신비라는 말은 “하느님만 아시는 비밀”이라는 뜻인데 성경, 특히 성 바오로에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가리킵니다. 곧 하느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그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거룩한 계획입니다. “신비”라는 말은 나중에 성사들의 거행, 곧 전례 예식을 가리키게 됩니다. 이러한 까닭에 그리스어 “신비”를 라틴어로는 흔히 “성사”로 옮겼습니다.

 

 

교우들이 하는 환호의 본성은 기념

 

그러므로 “신앙의 신비”는 축성된 빵과 포도주, 나아가 성체 안에 그리스도의 실제 현존을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당신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이루신 구원 신비 전체를 말하며, 특히 신앙 전체를 요약하고 종합하는 성사인 성찬례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신비여!” 외침은 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선포이고, 그분의 영광스러운 오심을 기다린다는 고백입니다. 이러한 뜻은 바로 앞에 오는 축성문과 뒤따르는 회중의 응답 환호에서 잘 드러납니다.

 

미사경본은 회중의 응답 환호로 세 가지 양식을 싣고 있습니다.

 

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이 양식은 1코린 11, 26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명백히 말하고 있습니다.

 

나)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나이다.” 둘째 양식은 만찬 이야기를 마감하는 바오로 서간(1코린 11, 26)을 거의 그대로 인용합니다. 부활이란 말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 “십자가와 부활로 저희를 구원하신 주님, 길이 영광 받으소서.” 라틴어 원문에는 “저희를 구하소서.”라는 간구 형태를 사용하여 환호의 성격을 나타냅니다(자비송 참조). 우리말로는 “영광받으소서.”로 옮겼는데, 환호의 성격을 드러내려는 뜻인 것 같습니다. 한편, 원문의 “세상의 구원자님”(Salvator mundi)을 단순히 “주님”으로 옮겼습니다.

 

“어린이 미사”의 감사기도에는 환호를 하나 덧붙여 네 개의 환호를 싣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광 속에 오실 것을 기다리나이다.”

 

교우들이 하는 환호의 본성은 기념입니다. 이 예식의 이름도 “기념 환호”입니다. 환호들은 “죽음과 부활”(가 양식), “죽음”(나 양식), “십자가와 부활”(다 양식)을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기억합니다. 이렇게 “성찬 제정문” 마지막에 주님께서 하신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말씀에 따라 그분의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회중의 이 기념은 바로 뒤에 사제가 이어 받아 계속하는 기념과 쌍둥이가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환호는 “선포” 또는 “전달”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곧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공적으로 세상에 선포합니다. 셋째 양식도, 위에서 말한 대로, 문장의 내용은 간구로 되어 있지만 외침의 형태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선포에 속합니다.

 

마지막으로 첫째와 둘째 양식에서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그리고 어린이 미사의 환호에는 “영광 속에 오실 것을 기다리나이다.”라는 표현으로 종말 차원, 또는 미래 차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미사를 무엇보다도 십자가에서 바친 그리스도의 제사를 기념하는 것으로 여기고, 그분의 실제 현존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오심”도 미사의 본질에 속합니다(R. 팔시니). 미사는 주님의 영광스러운 마지막 오심을 바라봅니다. 실제로 미사에 현존하시는 분은 죽으셨으나 부활하시어 영광스럽게 되신 주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부활하신 뒤에 십자가 달리셨던 표지들, 곧 영광의 빛나는 상처를 지니시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뵙기를 바랍니다. 그분 발현을 기다립니다. 그래서 사도 공동체에서는 미사에서 “오소서, 주 예수님”(아람어 “마라나타”)하며 간구하였습니다. 사람은 미래를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믿는 이들에게 그 미래의 이름은 “주 예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서 모든 것의 참된 의미가 드러나고, 그분 없이는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됩니다. 미사에 참여하는 것은 지금 여기서 그 미래를 미리 맛본다는 뜻입니다.

 

 

회중의 환호는 자유롭게 고를 수 있어

 

회중의 환호는 모두 직접 예수님을 지향합니다. 감사 기도문은 아버지 하느님께 바치기 때문에 이 환호는 감사기도의 흐름을 끊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어색하거나 낯설지 않습니다. 사실 미사에서 회중이 바치는 부분은 자유롭게 아버지나 아드님께 바칩니다. 보기를 들어, 자비송, 대영광송의 둘째 부분, “거룩하시도다” 둘째 부분, “하느님의 어린양”, 영성체 전에 바치는 “주님, 주님을 모시기에…” 와 같은 기도들은 예수님께 바칩니다.

 

회중의 환호들은 전례 시기나 축제일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고를 수 있습니다. 보기를 들면, “십자가와 부활”이 나오는 “다 양식”도 사순과 부활 시기뿐만 아니라 다른 전례 시기, 그리고, 혼인이나 장례 같은 모든 종류의 미사에서도 쓸 수 있습니다.

 

한편, “신앙의 신비여!” 권고에 어떤 양식으로 응답해야 할지 교우들은 잘 모르는 문제가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말로 첫째와 둘째 양식은 같은 표현으로(“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시작하기 때문에, 선창이 하나를 골라 먼저 시작해도 어떤 것을 선택할지 회중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여러 본당과 공동체들이 줄곧 “가 양식”만 선택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기계적인 또는 형식적인 응답이 되기 쉬어 전례에 생기를 주지 못합니다. 나아가 “신앙의 신비여!” 앞이나 뒤에 주례나 다른 이가 “(   ) 양식으로 하겠습니다.”라며 개입을 하게 되면 거행의 자연스러운 흐름이 끊어지며, 참석자들의 마음이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노래로 하거나, 미사 전에 알려주는 것이 방법일 수 있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9월호, 심규재 실베스텔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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