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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숨겨진 보물인 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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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03 조회수6,591 추천수0

[능동적인 미사 참여와 전례 활성화를 위한 나눔] 숨겨진 보물인 성사 (1)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마태 13,44)

 

지난 주 “징표”에 이어서 오늘은 “밭에 숨겨진 보물” 이야기로 시작하려 합니다. 하느님 은총의 가시적 표징인 성사(聖事, Sacramentum)의 뜻은 그 범위가 광범위하기에 인간의 단어로는 성사의 뜻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습니다. 때론 인간의 언어로 한정짓기보다 비유로 표현하는 것이 더 나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자주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오늘 저 역시 비유로 하느님 은총의 선물인 성사를 표현하고자 합니다.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늘 나라를 밭에 숨겨진 보물로 비유합니다. 평소 사람들은 그 밭을 자주 지나다니지만, 그 밭에 숨겨진 보물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평소 사람들은 그 밭에서 자주 일하지만, 그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눈에 숨겨진 보물은 그저 쓸모없는 돌멩이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밭에 숨겨진 보물을 알아봅니다. 많은 이들이 하찮은 돌멩이로 생각했던 것이 아주 귀한 보물임을 한눈에 알아봅니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서 그 밭을 사버립니다.

 

숨겨진 보물은 하느님 은총의 선물인 성사와 같습니다. 그 보물이 숨겨진 밭은 “교회의 전례”와 같습니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의 전례 안에 수많은 은총을 내려주셨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전례에 참여하지만 전례 안에 숨겨진 보물은 발견하지 못합니다. 밭에 습관적으로 오지만 그 밭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 밭의 보물을 발견하지 못하기에, 밭에 와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은 여러 가지 표징들로 밭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보물인 은총을 전례 안에서 드러내는데, 그 은총은 표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만일 그 표징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보물을 보아도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인 성사, 이것은 감각적인 표징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감각적인 표징”은 장소와 그림, 말씀과 예식 그리고 여러 가지 동작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표징은 표현하려는 대상의 본질과 깊이와 존재를 드러냅니다. 표징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우리와 만나게 해주시기에 성부의 표징이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예수님께서는 숨겨진 수많은 보물을 발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표징들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값진 보물은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017년 3월 26일 사순 제4주일 수원주보 3면, 김일권 요한사도 신부(갈곶동 본당 주임)]

 

 

[능동적인 미사 참여와 전례 활성화를 위한 나눔] 숨겨진 보물인 성사 (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을 알아볼 수 있도록 다양한 표징을 교회 안에 마련하셨습니다. 장소적인 측면에서 성당은 일상으로부터 분리된 거룩한 곳입니다. 성당은 하느님께 봉헌된 곳이며, 하느님과의 만남을 위해 축성된 공간으로써, 아름다운 표징들로 장식됩니다. 이러한 장소는 우리의 모든 감각이 하느님의 은총을 향하도록 도움을 줍니다. 성당의 문턱을 넘어서는 모든 이는 이곳에서 “말씀과 성사”를 통해 삶에 필요한 은총과 축복, 도움과 위로를 받습니다.

 

성당은 순례의 길을 걷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영적인 쉼터”이며 “하늘의 거처”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당에 들어갈 때 바로 들어가지 않고, 성수로 성호경을 그으면서 곧 이루어질 거룩한 만남을 준비합니다. 성당에 들어서기 전 성수기도를 바치는 찰나의 순간은 우리가 거룩한 공간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깨우쳐 주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다른 중요한 표징으로 “제대(祭臺, Altar)”가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다른 종교들과 유대교에도 제대가 있었으며, 그 위에서 하느님께 희생 제물을 쏟아 붓거나 태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제대 위에 자신을 희생 제물로 봉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에게 제대는 구약의 제대와 다른,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새로운 제대가 되었으며 살아있는 돌이 되었습니다. 또한, 제대를 축성할 때 성유를 도유함으로써 제대는 ‘기름부음 받은 이’를 뜻하는 메시아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희생 제사의 기억을 기념하기 위해 매일 제대 주변으로 모이고, 그곳에서 생명의 빵을 나누며 친교를 이루게 됩니다. 이처럼 제대는 모든 전례의 중심이며, 구원의 은총이 흘러나오는 구원의 샘이 되었습니다.

 

또다른 중요한 표징으로는 “빵”이 있습니다. 지금은 먹을 것이 너무 풍족해서, 과거 “빵과 쌀”이 가졌던 주식으로써의 중요성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에 서양인이나 동양인에게 “빵과 쌀”은 일용할 양식이자 거룩한 선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마태 26,26)라고 말씀하시며 빵을 쪼개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줌으로써 “빵”을 거룩한 표징으로 우리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빵을 쪼개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온 인류가 속죄된 것처럼, 성찬례에서 “쪼개어짐”을 통해 무한히 나누어져 많은 사람에게 주어지도록 당신을 내어놓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전례 안에서 빵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는 것을 체험하고, 빵의 형상을 한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십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교회는 매일 빵의 표징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모시며 친교를 이루어 나갑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다양한 ‘감각적인 표징’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고, 우리에게 필요한 하느님의 은총을 전해주십니다. [2017년 4월 2일 사순 제5주일 수원주보 3면, 김일권 요한사도 신부(갈곶동 본당 주임)]

 

 

[능동적인 미사 참여와 전례 활성화를 위한 나눔] 숨겨진 보물인 성사 (3)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말씀과 더불어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에페 5,26).

요한 사도는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요한 20,30-31 참조). 부활하신 예수님이 일으키신 여러 표징을 이야기함으로써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그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임을 명확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을 알아볼 수 있도록 다양한 표징을 교회 안에 마련하셨습니다. 교회의 전례는 이러한 다양한 표징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을 내포하고 있는 전례의 거행은 현실 안에서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과 관계를 맺도록 초대합니다.

전례 안에서 중요한 여러 표징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물”에 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물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입니다. 우리는 물을 이용하여 생명을 이어나가고, 갈증을 해소하며, 더러운 것을 씻습니다. 반면에 물은 가공할 힘으로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파괴하며, 생명을 앗아가기도 합니다. 이처럼 물은 이중적인 의미로, 죽음과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물은 이중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됩니다. 노아의 방주(창세 6,13-8,22 참조)에서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정화하는 표징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사마리아 여인(요한 4,7-15 참조)에게 한 번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의 물”을 약속하셨고, 초막절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물을 바칠 때에는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요한 7,37-39 참조)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물을 표징으로 사용하셨습니다.

또한, “물”은 세례예식에서도 중요한 표징으로 사용됩니다. 지금은 예전보다 물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 세례받는 사람의 이마에 흐르는 물을 세 번 붓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에서는 세례대에 완전히 몸을 담그면서 세례예식을 거행하였습니다. 몸을 물에 완전히 담그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무덤에 묻힌 것처럼 우리도 물에 잠김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몸을 담근 물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예수 그리스도가 몸을 일으켰던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에서 새 생명으로 부활하였음을 뜻합니다.

또한, 미사 때마다 주례 사제는 포도주에 약간의 물을 섞는데 이 행위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물과 포도주의 결합은 강생하신 말씀(Logos) 안에 신성과 인성이 결합된 것을 상기시켜 주며, 십자가 죽음 이후 그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요한 19,34)을 상징합니다.

‘생명의 물, 흘러나오는 살아 있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의 결실인 “성령”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그 물(요한 19,34)은 우리를 정화시키고 성화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세례로 다시 태어난 하느님의 자녀들을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결합시켜 줍니다. 아울러 교회 안에서 하느님께 드리는 구원의 희생제사에 우리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에 결합시켜 줍니다. [2017년 4월 30일 부활 제3주일(이민의 날) 수원주보 3면, 김일권 요한사도 신부(갈곶동 본당 주임)]

 

 

[능동적인 미사 참여와 전례 활성화를 위한 나눔] 숨겨진 보물인 성사 (4)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요한 1,5).

“빛”은 교회의 가장 중요한 표징 중의 하나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빛을 필요로 하고, 빛을 향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드러내시고, 우리가 어둠을 몰아내는 그 빛을 향해 나아가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특히 전례 안에서 이 빛은 “말씀과 표징”으로 더욱 풍요롭게 드러났습니다. 부활 성야 미사 때 어두운 성전을 밝히는 부활초의 빛이 그러합니다.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벌(蜂)을 동정성을 지닌 피조물로 생각하였기에 벌을 동정 마리아에 비유하였습니다. 그리고 벌집에서 나온 밀랍은 동정 마리아에게서 탄생한 예수 그리스도로 비유되었고, 그 밀랍으로 만들어진 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가장 적절하게 나타내는 표징으로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부활초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행렬을 이루어 부활초를 따라 어두운 성전으로 들어가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따라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 앞장서서 이끌어주셨던 불기둥을 상징합니다(탈출 13,21 참조).

부활초의 상징성은 초에 십자가를 새겨 넣고 그리스어의 첫 글자와 끝 글자인 “알파(Α)”와 “오메가(Ω)”를 새겨 넣음으로써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모든 시간과 역사의 주인이며 모든 만물의 시작이자 끝임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집전자는 향 덩이 다섯 개를 부활초에 꽂아 넣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 부활하신 주님의 몸에 난 오상(五傷)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부활 성야 미사 때 성대하게 밝혀진 부활초는 단순히 그리스도의 부활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머무르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생한 현존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부활초를 높이 쳐들고 세 번 “그리스도 우리의 빛”,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노래하면서 어두운 성전으로 행렬지어 들어갑니다. 부활초의 빛은 어두운 성전을 밝혀 줍니다. 부활초의 빛은 어두운 성전을 넘어 우리 삶의 어두운 부분에서도 빛을 밝혀주어 환하게 변화시켜 줍니다. 이 빛은 모든 신자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의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초는 세례식과 장례 미사에서도 사용됩니다. 우선 죽은 이를 위한 장례 미사에서 부활초를 사용하는데, 이는 그리스도인의 죽음이 개인적인 끝이 아니라, 새로운 거처로 옮아가는 “파스카(Pascha)”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세례식 때 “촛불 켜 줌”에서 집전자는 부활초를 잡거나 만지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대부 대모는 촛불을 켜서 새 신자에게 빛을 주십시오.” 이렇게 새 신자에게 빛이 전해진 다음, 이어서 집전자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빛이 되었으니 빛의 자녀로 끊임없이 살아가십시오…” 부활초에서 붙여진 세례초의 빛은 영세자가 세례로 새로 태어났으며, 빛의 자녀가 되었음을 알려줍니다. 또한, 부활초로부터 건네받은 그 빛은 빛의 자녀로서 걸어가야 할 새 신자의 소명을 알려줍니다.

이처럼 “빛”은 전례 안에서 “말씀과 표징”으로 더욱 풍요롭게 드러나며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부활초에서 타오르는 이 불꽃은 우리의 마음 안에서도 타오르고 있습니다. 왜냐면 이 “빛”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희망과 기쁨의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2017년 5월 7일 부활 제4주일(생명 주일, 성소 주일) 수원주보 3면, 김일권 요한사도 신부(갈곶동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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