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위령]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산골(散骨)에 관한 지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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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7-11-25 | 조회수6,637 | 추천수0 | |
[전례 생활]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 ‘산골’(散骨)에 관한 지침
한해의 전례력이 막바지에 이르러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인 대림 시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교회는 해마다 이맘때면 다른 무엇보다 죽음과 종말을 묵상하면서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라는 사도 신경의 마지막 대목에 집중한다. 대림 시기 또한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구조에서 첫 부분의 주제가 바로 종말에 오실 구세주와 그분을 통해 완성될 구원을 고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육신의 부활’은 인간의 이성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시편 89(88)편 37절의 “영원히 존속하고… 태양같이 내 앞에 있으리라.”라는 구절을 풀이하면서 이렇게 고백했다. “육신의 부활만큼 그리스도교 신앙이 그토록 격렬하고 끈질기게 완강한 반대에 부딪히는 것은 없다.”
‘어떻게 부활할 것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은 “우리의 상상력과 이해력을 뛰어넘는 것으로, 신앙으로만 접근할 수 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00항).
육신의 죽음과 부활
사실 ‘육신의 부활’ 이전에 인간의 육신 그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아듣는 것도 쉽지는 않다. 육신은 영혼과 구별되면서도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서 영혼의 육체적인 측면이 육신이고, 육신의 영적인 측면이 영혼인 것으로 생각될 정도이다.
인간의 육신은 물질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영적인 무엇이다. 인간은 육신을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상대방의 영혼을 느끼며 교감한다. 그래서 ‘육신은 영혼의 성사’라고까지도 말한다.
육신은 그것이 인간의 육신인 이상 단순히 살과 뼈, 혈액 등 물질적인 것의 총체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그 총체와 동일시되지도 않는다. 길게 자란 머리카락을 자르면 새 머리카락이 자라고, 긴 손톱을 깎으면 새 손톱이 나오며, 젖니가 빠지면 영구치가 올라온다.
자른 머리카락, 깎은 손톱, 빠진 젖니 등을 보면서 내 몸의 일부가 죽어서 떨어져 나갔다고 놀라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몸은 물질 이외의 어떤 요소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서로의 눈빛과 표정을 보면서 마음을 읽고, 서로의 체온을 통해 온정을 느끼는 것이 인간이다. 그럼에도 몸을 이루는 물질이 썩어서 사그라진다는 것 또한 여전히 사실이다.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남기는데, 이 시신 그대로가 부활할 몸은 아니라고 성경은 알려 준다. 인간의 육신과 시신은 동일시되지 않는다.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죽지 않고 다 변화할 것입니다. 순식간에, 눈 깜박할 사이에, 마지막 나팔 소리에 그리될 것입니다. 이 썩는 몸은 썩지 않는 것을 입고 이 죽는 몸은 죽지 않는 것을 입어야 합니다”(1코린 15,44.51-53).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 새 머리카락이 자라거나 새 이가 나오듯이 육신이 부활할 때에는 우리 몸의 모든 세포가 불멸하는 영적인 세포로 완전히 대체됨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씨앗이 썩으면 거기서 새로운 식물이 자라는데, 씨앗 자체가 그 식물은 아니다.
또한 씨앗이 썩어야 새싹이 돋는다. 고인이 남긴 시신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영적인 몸으로 대체되기 전에 썩어서 없어지는 씨앗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1코린 15,36-38 참조)
바로 이러한 이유로 교회는 육신의 부활을 믿으면서도 동시에 화장(火葬)을 인정하는 것이다.
신앙교리성의 훈령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2016년 8월 15일 ‘죽은 이의 매장과 화장된 유골의 보존에 관한 훈령’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기 위하여」를 발표하였다. 신앙교리성은 이 훈령에서 교회가 화장의 관습을 교리적으로 반대하지 않으며, 화장 자체는 영혼의 불멸과 육신의 부활에 관한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객관적으로 어긋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죽은 이의 육신을 화장하는 것은 그의 영혼에 영향을 주지 않고, 하느님께서 당신의 전능을 통하여 죽은 이의 육신을 새로운 생명으로 되살리시는 것을 막지 못한다”(4항).
그러면서도 신자의 유골을 공중이나 땅이나 바다 또는 다른 어떤 장소에 뿌리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단언하였다. 이렇게 금지 규정을 제시하는 이유는 “모든 형태의 범신론이나 자연주의나 허무주의의 모습을 피하고자”(7항)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산골’(散骨)이라는 행위 그 자체가 육신의 부활에 대한 신앙을 거스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 행위 안에 이 신앙 교리를 부정하는 의도가 내포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설사 그런 의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 같은 인상을 줄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골을 기념물이나 장신구 또는 다른 물건에 넣어 보관해서도 안 된다.
한국 교회의 적용 지침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2016년 11월 7일에 ‘한국 천주교회, 매장과 화장된 유골의 보존에 관한 지침’을 마련하였다. 이는 위에 제시한 신앙교리성 훈령의 의미를 더욱 명백히 밝히고 한국 교회에 적용할 때 유념해야 하는 현실적 문제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와 전례위원회의 자문을 통해 발표한 이 지침은, 화장 자체가 문제시되지는 않음을 더욱 분명히 하고자 이렇게 명시하였다. “화장 자체는 영혼 불멸과 육신의 부활에 관한 그리스도교 신앙 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2항).
또한 이 지침에서는 산골을 금지하는 이유의 핵심을 매우 명확하고 직접적으로 설명하였다. “이러한 지침은 유골을 뿌리는 행위 자체가 그 근본 의도와는 상관없이 범신론이나 자연주의나 허무주의의 표현으로 오해될 수 있음을 피하기 위함이다”(5항).
신앙교리성 훈령에서는, 합법적인 이유로 시신의 화장을 선택한 경우 신자의 유골은 묘지 또는 교회의 관할 권위가 지정한 장소에 보존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5항 참조), 한국 교회의 지침은 신자의 유골을 묘지 봉안당(납골당)에 보존하는 것은 신앙교리성의 훈령에 부합한다고 밝혔다(3항 참조).
한편, 한국 교회의 지침은, 수목장은 그 자체가 그리스도교 신앙 교리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수목장은 직접적으로 산골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하며 매장의 의미도 있기에, 육신의 부활에 대한 신앙이 분명히 고백된다면 허용한다고 명시하였다(6항).
신앙교리성 훈령 8항은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세상을 떠난 이가 생전에 그리스도교 신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산골을 공공연하게 요청한 경우 교회법에 따라 그 사람을 위한 그리스도교 장례식은 거부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한국 교회의 지침은 “이와 같은 조치는, 육신의 부활에 대한 부정 차원이나 범신론적이고 자연주의적 또는 허무주의적 관점에서 요청했음이 분명히 드러나는 경우에 한한다.”(7항)고 밝혔다.
한국 교회의 후속 조치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신앙교리성 훈령과 한국 교회의 지침에 따른 후속 조치로서 2017년 춘계 정기 총회에서 「상장예식」(2003년 발행)의 산골 관련 내용은 폐기하기로 결정하였으며, 더욱 상세한 지침을 제시하였다.
수목장을 포함하여 자연장의 경우, 거룩한 장소인 묘지 공간에 마련된 수목, 화초, 잔디 등에 화장한 유골을 묻고 추모할 수 있도록 고인의 이름이 적힌 표식을 세우게 하였다. 이때 매골(埋骨)만이 허용되며, 유골을 나무 주위에 뿌리는 산골은 금지하였다.
또한 봉안 기간이 지난 유골의 처리는 정부가 정한 봉안당 관련 법률을 따르되, 산골을 하지 않고 공원묘지에 별도로 ‘공동 안치소’를 마련해 영구히 봉안하고 추모할 수 있게 이름을 표기하도록 하였다.
* 신호철 비오 - 부산교구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전례학 교수 겸 교목처장,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를 맡고 있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7년 11월호, 신호철 비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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