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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성모 동산의 꽃과 풀들: 예수님 수난을 묵상해요, 주님 수난 꽃과 백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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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3-07 조회수6,278 추천수0

[성모 동산의 꽃과 풀들] 예수님 수난을 묵상해요, 주님 수난 꽃과 백양나무

 

 

주님 수난 꽃

 

똑같은 사물을 보면서도 우리는 저마다 다른 느낌을 받거나 동떨어진 생각을 한다. 꽃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같은 꽃인데 그 꽃을 본 사람들 중 누군가는 꽃이 시계를 닮았다고 생각했고, 다른 누군가는 꽃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연상케 한다고 보았다. 이 꽃의 생김새를 보면 영락없이 시계의 숫자판이며 바늘들을 닮았다. 또 신앙의 눈으로 요모조모 뜯어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나타낸다고 여길 만한 요소들이 그득했다.

 

- 주님 수난 꽃.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꽃을 ‘시계꽃’이라 이름 지어 불렀고, 또 어떤 이들은 ‘주님 수난 꽃’(Passion Flower, 학명 Passiflora)’이라고 불렀다.

 

1610년경 멕시코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자 한 사람이 로마를 방문했다. 그는 로마로 오는 길에 유럽에서는 볼 수 없던 꽃을 그린 그림들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 그림들을 보시오(J. Bosio)라는 수도자에게 보여 주었다. 마침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논문을 작성 중이던 보시오는 이 그림들을 보면서 사뭇 혼란스러워졌다. 처음 보는 꽃이었는데, 자신이 몰두해 있는 논문 주제인 ‘예수님의 수난’과 여러 가지 면에서 연결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냉철하게 보려는 그의 눈에는 그림들이 어딘가 생소해 보였고, 그래서 분명 과장된 것이리라고 생각했다. 논문에서 이 꽃에 대해 이야기할지 말지 망설였다. 그러던 차에 그림 몇 점이 더 도착했다. 그리고 때마침 멕시코 출신 예수회원 하나가 찾아왔다가 그 그림들 속의 꽃이 실제로 현존하는 꽃임을 확인해 주었다.

 

보시오는 이 꽃에서 다음과 같은 상징성들을 읽어냈다. 이 꽃의 포엽(苞葉)이 3개인 것은 삼위일체를 나타낸다. 꽃잎을 둘러싼 실모양의 부화관(副花冠, 꽃갓과 수술 사이 또는 꽃잎과 꽃잎 사이에서 생겨나는 꽃잎보다 작은 부속체)들은 가시관을, 5개의 수술은 예수님의 다섯 상처를, 수술들 위로 솟아오른 씨방은 예수님을 매질하기 위해 묶어서 세우는 데 쓰인 기둥을, 3개의 암술은 예수님의 몸을 십자가에 고정한 3개의 못을 나타낸다. 또한 창(槍)처럼 생긴 것이 돌아가신 예수님을 찌른 성 론지노*의 창을, 꽃잎들의 아랫부분에 박혀 있는 둥근 반점들은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받은 은전 30개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보시오는 이 꽃이 하루나 하루 반 정도 활짝 피었다가 이내 종 모양으로 오므라드는 현상을 보고, “하느님께서는 무한하신 지혜의 섭리로 이 꽃을 창조하신 것을 마음에 들어 하셨으며, 그러기에 십자가와 수난의 놀라운 신비들이 그리스도께서 영광과 위엄 중에 다시 오시기로 예정된 때까지 이방인들에게는 감춰진 채로 보존되어야 함을 암시하기 위해 서둘러 꽃잎을 닫아서 보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썼다.

 

이 식물은 600여 종이 넘으며, 어떤 것은 열매를 맺기도 하는데, 이 열매를 ‘주님 수난 열매’라고 한다. 꽃의 색깔 또한 하양, 노랑, 분홍, 다홍, 보라, 푸른색 등 다양하다. 남아메리카 우림 지역이 원산지이지만, 지금은 전 세계에 분포한다. 스페인에서는 ‘오상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이 꽃은 또한 ‘신앙’ 또는 ‘신념’, ‘거룩한 사랑’, ‘신앙적 열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과 부분도.

 

 

덧붙여 흥미롭게 읽을거리 하나 더: 네덜란드 화가 후스 반 클레브(Joos Van Cleve)의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Madonna and Child)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1530-1535년에 그린 이 그림에 놀랍게도 주님 수난 꽃이 등장한다.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버찌 열매를 향해 손을 뻗치신 아기 예수님을 안으신 성모님께서 오른손에 카네이션을 들고 계신 장면인데, 카네이션 위에 이 꽃이 솟아 있는 것이 이채롭다. 아마도 예수님의 육화를 상징하는 카네이션과 함께 주님 수난 꽃으로 아기 예수님의 본성과 운명을 나타내려 한 듯하다.

 

그러나 1610년 무렵까지는 유럽에서 주님 수난 꽃을 몰랐고 이 그림은 그 시점에서 80년 전이나 앞선 시대에 그려졌다는 점에 주목하면, 후대에 누군가가 이 꽃을 그려 넣은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을 애도한 백양나무(Aspen)

 

버드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들 중에서 나무껍질이 흰색에 가까운 종류들, 가령 사시나무, 은사시나무, 은백양나무 등을 일컬어 흔히 백양(白楊)나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백양나무는 흔히 사시나무로 통칭된다. 우리는 몸을 몹시 떠는 모양을 두고 비유적으로 ‘사시나무 떨 듯하다’라고 말한다. 이 말마따나 ‘백양나무(사시나무)’ 하면 그 이파리들이 작은 바람결에도 쉽게 흔들리며 자잘한 소리들을 들려주는 나무를 언뜻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백양나무는 라틴어로 Populus tremula인데, ‘떠는(흔들리는) 포플러’라는 뜻이다. 미풍에도 이파리들이 잘 흔들리기는 여느 포플러들도 마찬가지인데, 유독 백양나무가 이렇게 불리는 것은 높은 나무에 무성하게 달린 이파리들이 흔들릴 때면 이파리의 흰색에 가까운 뒷면이 눈에 더 잘 들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백양나무와 관련해서 교회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 온다. 골고타 언덕의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순간, 세상의 그 많은 나무들 중에서 유일하게 백양나무만 그분의 죽음을 슬퍼하여 이파리들을 흔들며 몸을 숙여 애도의 뜻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뒤로 백양나무의 이파리들은 작은 바람에도 (주님의 죽으심을 애도하는 의미로) 쉼 없이 흔들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지고 가실 십자가를 만드는 재료로 선택된 나무가 백양나무였다고 한다. 그러자 자신이 어떤 용도로 쓰일 것인지를 알게 된 백양나무는 두려운 나머지 잎을 떨기 시작했고, 그 떨림이 끝내 멎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는 장례식장에 갔다가 백양나무를 혹시라도 발견하게 되면 망자를 애도하고 추모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지 않을까.

 

*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신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죽음을 확인한 백인대장. 그는 이내 그 현장에서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태 27,54)라고 고백했고, 나중에 그리스도인이 되어 순교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3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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