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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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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5,474 추천수0

[전례 속 성경 한 말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련이 곧 기회다’라는 말이 있다. 힘겹고 막막한 시련의 때를 잘 받아들이고 이겨 내면, 시련이 인생의 전환점을 이루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제에게 강론은 시련이자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매일 미사를 집전하면서 강론을 준비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즈음처럼 학력이 높아지고 여러 신앙 교육으로 강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인 선교 사명을 전례 안에서 제대로 실현할 기회라면, 계속되는 힘든 시간은 사제가 이겨 나가야 할 당연한 순간이 된다. 더불어 사제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기쁨의 시간이 된다.

 

사제의 정체성을 느끼게 하는 복음 선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사명에서 시작되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이 말씀에 따라 제자들은 파견된 자, 곧 사도(Apostolus)로 거듭난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거절하는 유다인들을 구약성경의 예언에 근거해 비판하면서, 그들이 어리석다고 여기는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선포되었다고 말한다.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 또 이사야 예언서(52,7 참조)를 인용해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의 사명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가를 말해준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5)

 

여기서 용어의 차이를 살펴보자. 개신교에서는 목사님이 ‘설교’를 한다고 하고, 천주교에서는 신부님이 ‘강론’을 한다고 하는데 무엇이 다를까? 똑같이 복음을 주제로 설명하고 신자들이 어떻게 주님을 따를 것인지 강조하는데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강론과 설교는 전례 거행과 주제의 범위라는 기준에서 차이가 있다. ‘강론’은 그리스어 ‘호밀리아(homilia)’를 번역한 말이다. 이 말은 아버지가 자녀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또는 서로 가까운 동료 사이에 대화 형식으로 하는 이야기를 뜻한다. 현재 ‘강론’이라고 일컫는 말은 전례 거행에서 전례력의 흐름에 맞춰 신앙의 신비와 그리스도인의 생활 규범을 성경을 바탕으로 설명하는 것을 뜻한다. 반면 ‘설교(praedicatio)’는 전례와 상관없이 회중 앞에서 교리나 신앙과 관련된 주제를 가지고 강연하거나 연설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교의 강론은 그 위치나 내용 등에서 유다교 회당 예식의 영향을 받았다. 예수님 시대에는 회당 예배 중에 율법서와 예언서를 봉독한 다음 회당장이 미리 지정한 성인 남자가 그것에 대해 설명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과 바오로 사도의 회당 강론을 증언한다(루카 4,16-21; 사도 13,15-41 참조). 사도나 그 제자들의 활동 가운데 강론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고, 사도 시대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유스티노의 〈호교론〉 제1권 67장에는 “독서자가 독서를 마친 다음, 주례는 기도를 올리도록 권하고 이 훌륭한 말씀을 본받도록 촉구한다”고 쓰여 있다. 그런데 미사 강론은 중세기를 거치면서 차츰 그 비중이 약해지고 다른 부수 요소로 그 특성이 매우 흐려졌다. 미사 때 강론하는 순서가 대체로 복음 봉독 다음이었으나 미사 시작이나 신앙고백 후에 하는 경우도 생겼다. 복음 봉독이 끝나면 강론자가 제의를 벗고 강론대에 올라가 강론하면서 강론이 미사와 분리된 독자 예식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강론 내용도 전례나 성경과 관련없는 교리 해설이나 윤리 훈화가 많아졌다.

 

한동안 천주교는 성찬 전례에 지나치게 집중하여 말씀 전례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헌장>을 통해 말씀의 중요성을 재발견하여 강론을 본래 위치로 돌려놓는 전환이 이루어졌다. “전례 주년의 흐름을 통하여 거룩한 기록에 따라 신앙의 신비들과 그리스도인 생활의 규범들을 해설하는 강론은 전례 자체의 한 부분으로서 크게 권장된다. 더더군다나 주일과 의무 축일에 백성과 함께 거행하는 미사에서는 중대한 이유 없이 강론이 생략되어서는 안 된다”(<전례 헌장> 52항).

 

이에 더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은 현대 세계의 복음 선포에 관한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135항에서 전례에서 이루어지는 선포인 강론을 “사목자가 자신의 백성에게 다가가고 대화하는 능력을 가늠하는 시금석”이라고 하며, “성령을 강렬하고 기쁘게 체험하는 일”이 될 기회라고 하였다. 교황은 이 권고에서 강론 준비의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다. 성경 구절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을 할애하는 ‘진리의 존중’이 필요하고, “강론을 하고자 하는 이는 누구나 먼저 하느님 말씀으로 깊이 감화되어 그 말씀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해야”(150항) 한다고 강조하며, 말씀을 자기 것으로 삼기를 권고한다. 마지막으로 강론자는 말씀의 관상자이면서 그의 백성의 관상자이기에 “복음 선포의 실질적 대상자들”에게 주의하여 그들의 삶의 터전을 이해하고 “그들의 언어, 그들의 표징과 상징들을 고려하고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154항), 곧 양(羊)의 냄새가 나게 강론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간결하고 명료한 내용과 긍정적 언어 사용을 강론 방법의 특징으로 정의한다.

 

전례적 설교인 강론은 세 가지 주요 요소인 ‘강론자’, ‘성경’, ‘회중’의 대화를 통해 성령을 체험케 하는 길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강론자만 강론을 준비하는데 열의를 다할 것이 아니다. 전례에 참여한 회중 모두 독서 내용을 미리 읽고 묵상하며 강론자가 전하려는 성경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아들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럴 때 한여름 더위를 날리는 팥빙수처럼 삶의 현장에서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 시원한 성령의 바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윤종식 신부는 의정부교구 소속으로 1995년 사제품을 받았다. 로마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을 전공하고,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전례학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4년 7월호(통권 460호), 윤종식 티모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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