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대림성탄] 가톨릭 성가에 실린 캐럴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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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9-12-01 | 조회수5,992 | 추천수0 | |
「가톨릭 성가」에 실린 캐럴 이야기 (상) 고요한 밤, 캐럴 소리에 서로 겨눴던 총을 내려놨다
- 오스트리아 오베른도르프에 위치한 ‘고요한 밤 경당’(Stille Nacht Kapelle). CNS 자료사진.
지금은 저작권 때문에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해마다 이맘때면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곤 했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트리와 더불어 주님 성탄 대축일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캐럴을 미리 들으며 우리는 성탄 시기가 다가옴을 실감하고, 성탄 시기 동안 익숙한 캐럴들을 미사 중에 부르면서 아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기쁨을 더욱 크게 느낀다.
「가톨릭 성가」에 수록된 주님 성탄 대축일 성가 중 신자들뿐만 아니라 비신자들에게도 친숙한 캐럴에 얽힌 숨은 이야기들을 두 번에 걸쳐 소개한다.
♬ 99번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지만, 이 곡의 작사가가 가톨릭 사제라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더구나 이 곡이 초연된 때와 장소가 1818년 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 오스트리아 오베른도르프의 성 니콜라스 성당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야말로 성탄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816년 요제프 모어(Joseph Mohr·1792~1848) 신부는 해마다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이할 때면 느꼈던 자신의 소회를 토대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Stille Nacht Heilige Nacht)으로 시작하는 시를 썼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818년, 초등학교 교사이자 오르간 반주자였던 프란츠 그루버(Franz Xaver Gruber·1787~1863)가 이 시에 순식간에 곡을 붙였다. 26세 젊은 사제와 31세 젊은 교사의 합작품인 이 곡은 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 미사에서 처음으로 연주됐다.
이 곡은 제1차 세계대전 때 ‘크리스마스 정전(停戰)’을 이끌어냈다고도 전해진다. 1914년 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 때 독일군의 한 병사가 이 노래를 불렀는데, 이를 들은 영국 군인들이 환호했다. 노래를 마친 뒤 독일군 장교가 영국군 하사와 악수를 하며 정전이 이뤄졌다.
성 니콜라스 성당은 모어 신부와 그루버 두 사람을 기념하기 위해 1937년 8월 15일 ‘고요한 밤 경당’(Stille Nacht Kapelle)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지금까지도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 107번 ‘천사의 찬송’
이 곡의 작곡가는 가곡 ‘노래의 날개 위에’로 잘 알려진 독일 작곡가 멘델스존이다.
그렇다면 멘델스존은 이 곡을 캐럴로 작곡했던 것일까? 답은 ‘아니다’다.
멘델스존은 1840년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작곡을 부탁받아 곡을 썼고, 이 곡은 같은 해 7월 24일 라이프치히의 시장(市場)에서 초연됐다.
출판사가 붙인 작품의 제목은 ‘인쇄술 발명을 기념하는 축제 노래’였다. 이 작품은 총 4곡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 중 두 번째 곡인 ‘조국이여, 당신의 땅에서’가 ‘천사의 찬송’ 선율로 사용됐다.
처음 이 곡의 가사는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의 동생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1707~1788)가 썼다. 웨슬리는 이 가사를 주님 성탄 대축일에 영국 런던에서 교회 종소리를 듣고 영감을 얻어 썼다고 전해진다. 웨슬리는 자신이 작곡했던 곡에 가사를 붙였는데, 멘델스존의 곡과 달리 엄숙하고 느린 멜로디였다. 선율 따로, 가사 따로였던 이 곡은 1855년 영국의 음악가 윌리엄 커밍스가 멘델스존의 곡에 오랜 세월에 걸쳐 수차례 수정된 가사를 맞추면서 마침내 생명력을 얻게 됐고, 그 후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9년 12월 1일, 김현정 기자]
「가톨릭 성가」에 실린 캐럴 이야기 (하) 헨델의 곡을 편곡한 ‘기쁘다 구주 오셨네’, 시토회 수도자들이 가사 붙인 ‘어서 가 경배하세’
캐럴의 사전적 의미는 ‘성탄절이나 부활절 때에 부르는 민요풍의 종교적 가곡’이다.
캐럴(carol)의 어원은 중세 프랑스의 윤무(輪舞) 카롤르(carole)라고 한다. 춤에 어울리게 후렴구가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었던 캐럴은 16세기부터는 민중적인 크리스마스 노래를 뜻하게 됐다. 또한 이 시기 이후 수많은 캐럴 중 검증된 우수한 곡들이 교회의 찬미가로 채택된 것이다.
지난주에 이어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아 온 「가톨릭 성가」에 수록된 캐럴 두 곡의 숨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 484번 ‘기쁘다 구주 오셨네’
「가톨릭 성가」에는 이 곡의 작곡가가 헨델이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이 곡의 선율과 일치하는 헨델의 곡은 찾기 어렵다.
가장 비슷한 느낌의 곡은 헨델의 대표곡 ‘메시아’ 중 제2부의 합창곡 ‘머리 들라’다. 제1부 테너 레치타티보 ‘내 백성을 위로하라’의 반주 부분도 약간의 유사성이 있다.
이 사실만으로 ‘기쁘다 구주 오셨네’가 헨델의 곡이라고 단정지어 말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영국의 음악평론가 제임스 라이트우드(James T. Lightwood·1850~1944)는 일찍이 “이 곡은 헨델에게서 힌트를 얻은 미국인이 작곡했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지금의 곡은 ‘미국 찬송가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웰 메이슨(Lowell Mason·1792~1872)이 편곡한 것이다.
메이슨은 「가톨릭 성가」 151번 ‘주여 임하소서’의 작곡가이기도 하다.
가사는 영국의 목사이자 신학자인 아이작 와츠(Isaac Watts·1674~1748)가 1719년 시편 98장을 바탕으로 붙였다.
♬ 102번 ‘어서 가 경배하세’
이 곡을 지금의 형태로 만든 사람은 확실치 않지만, 초기 악보에 남겨진 서명으로 추정하면 존 웨이드(John F. Wade·1711~1786)로 볼 수 있다.
웨이드는 영국인 가톨릭 평신도로, 1745년 자코바이트 반란 후 추방된 영국 가톨릭 신자들과 함께 프랑스에서 생활하며 음악을 가르치고, 교회 음악을 위해 헌신했다.
이 곡은 라틴어 첫 가사를 따 ‘아데스테 피델리스’(Adeste Fidelis) 또는 영어 제목 ‘O Come All Ye Faithful’이라고도 불린다.
라틴어 가사는 시토회 수도자들에 의해 만들어져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 때 불렸다고 전해진다. 초기에는 4절이었던 가사는 후에 8절까지 늘어났다.
라틴어 가사를 영어로 바꾼 사람은 영국의 가톨릭 신부인 프레데릭 오클리(Frederick Oakeley·1802~1880)다.
오클리 신부는 1845년 가톨릭으로 개종했는데, 개종 전인 1841년 라틴어 가사를 영어로 번역했다. 영어 가사로 번역되면서 이 노래는 영어권 국가들로 널리 퍼져 나가 오늘날까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캐럴은 프랑스에서는 노엘(noël), 독일에서는 바이나흐츠리트(Weihnachtslied), 스페인에서는 비얀시코(villancico)라고 한다.
노엘이나 비얀시코에는 노엘이라는 말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은데, 노엘에는 성탄절, 캐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의미가 모두 담겨 있다.
아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은 우리에게 가장 큰 선물과도 같다. 이번 성탄에는 기쁜 노엘을 큰 소리로 부르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길 희망한다. [가톨릭신문, 2019년 12월 8일, 김현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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