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전례 영성: 준성사, 믿는 만큼 열매 맺는 파스카 신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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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19-12-02 | 조회수6,269 | 추천수0 | |
[전례 영성 – 준성사] 준성사, 믿는 만큼 열매 맺는 파스카 신비
왜 성사가 아니고 준(準)성사인가
준성사한테는 미안하지만, 사실 준성사는 없어도 구원에 지장이 없다. 말하자면, 구원에 있어서 성사는 필수이고 준성사는 선택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준성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 밖에 어머니인 교회는 준성사(準聖事)들을 제정하였다. 준성사는 어느 정도 성사들을 모방하여 특히 영적 효력을 교회의 간청으로 얻고 이를 표시하는 거룩한 표징들이다. 이를 통하여 사람들은 성사들의 뛰어난 효과를 받도록 준비되고, 생활의 여러 환경이 성화된다”(전례 헌장, 60항).
전례 헌장이 말하는 준성사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직접 제정하셨고 “신적 제정으로서 변경할 수 없는 부분”인 반면, 준성사는 교회가 제정했으며 “변경할 수 있는 부분”(전례 헌장, 21항)이다.
둘째, 준성사는 준성사에 붙은 ‘준’(準)이 말해 주는 것처럼, 자격이나 효과가 성사 정도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성사에 버금갈 정도는 된다. 말하자면, 준성사가 정식 성사는 아니어도 성사들을 모방한 정도에서는 ‘거의 성사’이고, 준성사를 잘 받으면 곧 ‘성사’도 받으러 가기 때문에 영적 효력 면에서도 사실상 ‘곧 성사’란 뜻이다.
셋째, 준성사는 영적 효력을 얻는 방식이 성사와 다르다. 성사는 사효성(ex opere operato)이라 하여 ‘행위 자체로’ 효력이 발생하지만, 준성사는 인효성(ex opere operantis)이라 하여 ‘행하는 사람의 행위로’ 효력이 주어진다. 따라서 준성사는 거행하고자 모인 “교회의 간청”이 간절할수록 영적 효과를 드러내어, 사람들은 “성사들의 뛰어난 효과를” 받을 준비를 갖추게 된다. 그 결과로 “생활의 여러 환경이 성화된다.”
준성사의 형태
준성사가 성화시키는 여러 환경은 “특정 직무와 신분, 신자 생활의 매우 다양한 상황과, 사람들에게 유익한 물건 등”(가톨릭 교회 교리서, 1668항)이다. 환경은 다양해도 준성사의 형태는 축복과 구마의 두 가지이다.
축복은 두 종류로 나뉜다. “수도원장이나 수녀원장의 축복, 동정녀들과 과부들의 봉헌, 수도 서원 예식, 그리고 교회 직무(독서직, 시종직, 교리 교사 등)를 위한 축복”처럼 사람에 대한 축복과, “성당이나 제대의 봉헌 또는 축복, 성유와 제기와 제의와 종 등의 축복”(가톨릭 교회 교리서, 1672항)같이 사물에 대한 축복이 있다. 하지만 축복의 대상이 무엇이든 “온갖 축복의 원천은 만유 위에 축복받으신 하느님이시다”(「축복 예식」, 1항).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온갖 영적인 복’(에페 1,3)을 받는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671항).
구마에도 두 종류가 있다. 교회가 세례를 거행할 때 행하는 간단한 형식의 구마와, “하느님 자비의 신비로운 계획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이미 세례를 받은 신자가 “하느님의 용인으로 마귀에게 시달리거나 사로잡히게 된 때”(「구마 예식」, 10항) 행하는 장엄 구마가 있다. 특별히 후자는 “주교의 허가를 받아서 사제만이 행할 수 있으며, 교회에서 정한 규칙을 정확하게 지키면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가톨릭 교회 교리서, 1673항)한다.
축복과 구마 외에 장례 예식도 준성사에 속한다. 장례식은 “그리스도인 죽음의 파스카 성격을 더욱 명백히 드러내야”(전례 헌장, 21항) 한다. 사실 교회의 장례 예식이란 “믿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거행하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세례로 한 몸이 된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건너가도록”(「장례 예식」, 1항) 돕는 것, 곧 세례 성사의 은혜가 결실에 이를 수 있도록 온 교회가 간청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준성사의 효과
준성사는 성사를 모방하며 교회의 구원 활동을 끊임없이 돕는다. 이를 위해 “준성사에는 언제나 기도가 포함되며, 흔히 안수, 십자 성호, (세례를 상기시키는) 성수 뿌림 같은 일정한 표징이 따른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668항). 이처럼 준성사의 성사 비슷한 외적 표징들은 “성사들의 뛰어난 효과를”(전례 헌장, 60항) 기억하게 해 준다.
그리하여 십자 성호, 세례수 축복, 성유 축성, 성수 뿌림, 장례 예식 등은 세례 성사와 연결되고, 성당과 제대 봉헌, 성체 강복, 감실의 축복 등은 성체 성사와 연결된다. 이런 식으로, 안수, 학교나 도서관 축복은 견진 성사, 수도원장이나 수녀원장의 축복, 동정녀들과 과부들의 봉헌, 교회 직무를 위한 축복, 수도 서원 예식 등은 성품 성사, 가족과 그 구성원들의 축복, 집과 가정용품들의 축복 등은 혼인 성사와 연결될 수 있다.
끝으로 고백의 기도, 임종 때의 교황 축복, 구마 예식 등은 고해 성사를, 병자들의 축복, 병원이나 병자들을 위한 건물의 축복, 묘지의 축복 등은 병자 성사를 기억하게 한다.
준성사도 핵심은 파스카 신비
준성사가 비록 성사보다는 급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준성사는 엄연히 전례 행위이다. 성사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생명을 실어나르는 동맥이라면, 준성사는 교회의 생활 현장 구석구석까지 생생한 은총을 전달하는 모세 혈관에 비길 수 있다.
준성사를 거행하되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는 마음과 정성이 부족하면, 은총의 모세 혈관이 막혀 손발은 저리고 몸에는 병까지 올 수도 있다. 그래도 성사 생활을 하고 있으니 죽지는 않겠지만, 그리스도인다운 사랑 실천은 빈약해질 수 있다.
준성사를 정성껏 자주 거행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일상의 모든 것을, 세속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모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로 성화시키려는 마음, 이 마음 때문에 교회는 새로운 준성사들을 제정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폐지하거나 변경도 한다(교회법 제1167조 1항 참조). 결국 성사든 준성사든 중심은 그리스도이고, 핵심은 파스카 신비이다.
“그러므로 성사와 준성사의 전례는 잘 준비된 신자들에게 생활의 거의 모든 사건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 신비에서 흘러 나오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성화되게 한다. 이 신비에서 모든 성사와 준성사가 그 효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또한 거의 모든 사물을 목적에 맞게 올바로 사용하면 인간 성화를 이루고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어 있다”(전례 헌장, 61항).
* 최종근 파코미오 -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입회하여 1999년 사제품을 받았다. 지금은 성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원장을 맡고 있다. 교황청립 성안셀모대학에서 전례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9년 11월호, 최종근 파코미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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