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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와 미사의 영성23-25: 미사의 영성 - 복음 · 기쁜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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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8-14 조회수2,231 추천수0

전례와 미사의 영성 (23) 미사의 영성 : 복음 - 기쁜소식 I

 

 

우리는 살아가며 언제 행복하다고 느낄까요? 가족들과 오랜만에 함께 모여 따뜻한 저녁 식사를 할 때... 긴 시간 마음속에 머물러있던 원망과 미움을 훌훌 털고 이제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용서하기로 결심하였을 때... 무언가에 열중해서 열심히 일하다 문득 쳐다본 저녁노을이 너무 아름답다 느낄 때... 아마도 이렇게 삶의 순간들 속에서 선물처럼 주어지는 시간에 작지만 소중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우리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원하는 무언가를 꼭 이뤄야 하고, 또 무언가를 꼭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채워지지 않으면, 이미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보다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내 삶에 대한 목마름을 늘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무언가 간절히 원하던 것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리고 원하던 무언가를 이뤘을 때 그 순간은 너무나 행복하다고 느끼지만, 그 행복감이 사실 오래가지 못함을 깨닫곤 합니다. 원하던 것이 이뤄지면 내 삶이 금방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는데 삶은 여전히 나에게 힘겨움으로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이제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여러 얼굴을 가진 어려움들은 그 모습만 바꾼 채 또다시 나를 지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진정한 행복’은 단지 외적인 조건의 충족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에게는 외적인 조건과 상관없이 이뤄지는 행복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외적인 조건에 좌우되지 않는 행복을 찾고 느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내적인 기쁨’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외적인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가지는 좋은 느낌과 감정이 ‘즐거움’이라면, 내적인 풍요로움으로 인해 얻게 되는 것은 ‘기쁨’입니다. 즐거움은 외적인 조건이나 환경이 바뀌면 사라지지만, 기쁨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쁨은 외적인 조건과 상관없이 이뤄지며, 오히려 기쁨은 나를 둘러싼 환경과 조건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들고, 다시금 그 의미를 발견하게 합니다.

 

신앙인은 무엇보다 그러한 내적인 기쁨을 하느님을 통해 찾는 사람들입니다. 내 삶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통해서, 그리고 그 사랑이 앞으로의 내 삶에도 함께하시리라는 희망 안에서 위로와 기쁨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삶의 무게 속에 힘겨워하는 우리에게 말씀이 되신 하느님께서 사랑의 이름으로 찾아오십니다.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시고, 억눌린 이들을 일으키시며, 슬퍼하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시는 ‘기쁜 소식’으로 오십니다. 요한복음서는 이 기쁜 소식을 이렇게 전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2022년 8월 14일(다해) 연중 제20주일 춘천주보 2면, 김혜종 요한 세례자 신부]

 

 

전례와 미사의 영성 (24) 미사의 영성 : 복음 - 기쁜소식 II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과연 어디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어떤 분들은 혼자만의 여행을 통해서 기쁨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분들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경치 좋은 곳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기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실 이러한 모든 순간이 우리에게 소중하고 기쁜 시간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진정으로 기쁨을 느끼는 순간들은 나의 오랜 고민,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미움과 분노, 그리고 지난 시간 나를 나답지 못하게 만들었던 원망과 불평들이 사라지는 순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 삶의 어둠으로부터 벗어나 새롭게 삶을 살아갈 희망을 느낄 때 참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갑게도 신앙인들은 이런 순간들을 선물처럼 선사받습니다. 바로 미사 때 복음이 선포되는 순간입니다. 복음을 말 그대로 ‘기쁜 소식’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소식이 내 영혼의 구원에 대한 응답, 그리고 내 삶의 오랜 고민과 어려움에 대한 해답을 주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누리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이 세상 삶이 전부가 아니라, 복음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 너머를 생각하며 살아갈 ‘새로운 시선’을 선물받습니다. 미움과 분노가 얼마나 자기 자신을 메마르게 만드는지 깨달으며, 하느님 안에서 잘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 나를 나답게 살아가게 함을 아는 ‘새로운 지혜’를 배웁니다. 그리고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인간적 힘겨움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계신 예수님을 통해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낼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을 또한 발견합니다. 가, 나, 다해의 3년 주기 안에서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을 통해 전해지는 복음은 이렇게 내 삶에 ‘새로운 시선’과 ‘새로운 지혜’와 ‘새로운 희망’을 건넵니다.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부활의 신비에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 깨닫고, 그 깨달음을 살아감으로써 우리 삶의 또 다른 ‘파스카 신비’를 이뤄 갑니다.

 

그래서 복음은 이 세상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듣기 좋은 이야기나 처세술이 아닙니다. 또한 수필집이나 에세이 등에 나오는 것처럼 말랑말랑하고 위로를 주는 듯한 이야기와도 다릅니다. 복음은 진정 내 영혼의 기쁜 소식이며, 구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과 기쁨입니다(로마 6,22-23 참조). 미사 때 우리는 그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설레는 마음으로 듣습니다. 그때 복음은 내 삶으로 들어와 잃어버린 기쁨을 다시 살아가라고, 메마른 영혼의 생명을 다시 꽃피우라고 초대합니다. 복음은 하느님 안에서의 기쁨을 다시 살아가라는 초대장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복음을 듣고 기쁨에 넘쳐 응답합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022년 8월 21일(다해) 연중 제21주일 춘천주보 2면, 김혜종 요한 세례자 신부]

 

 

전례와 미사의 영성 (25) 미사의 영성 : 복음 - 기쁜소식 III

 

 

우리는 미사 때 우리의 구원에 대한 기쁜 소식, 즉 복음을 듣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그 기쁜 소식을 내 삶에 뿌리내리게 할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모습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쁜 소식을 ‘듣는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듣는다는 것’과 관련하여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의 본래적인 존재 방식을 들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들음은 자신에게 말 건네진 것에 대해 스스로를 소집하는 모습이며, 주의를 기울이며 따르는 모습이 됩니다(E. Kettering, Nähe, Das Denken Martin Heideggers, Neske, 1987 참조). 그러하기에 진정으로 ‘듣는다는 것’은 단지 귀로 무언가를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통하여 듣는 모습입니다. 또한 그럴 때 우리는 그 들음이 이해의 차원을 넘어 깨달음의 차원으로 넘어감을 느끼게 됩니다. 기쁜 소식을 ‘듣는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과 존재로 들을 때, 그 들음은 깨달음의 단계로 나아갑니다. ‘아, 그렇구나. 이 말씀이야말로 힘겨운 내 삶에 진정 필요한 가르침이고 진리이구나....’ 이렇게 깨달을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이야기가 나에게 진정 ‘기쁨’으로 다가옴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통해 우리의 삶 속에 참된 믿음이 조금씩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서 바오로 사도께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진다고 우리에게 가르쳤듯이 말입니다.

 

두 번째로 기쁜 소식을 ‘살아간다는 것’과 관련하여 진정으로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들은 이제 그 깨달음을 살아갑니다. 아니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마치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건강이 회복됨을 절실히 깨달은 사람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운동하고자 애쓰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 기쁜 소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제 그 자신이 누군가에게 기쁜 소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자에게만 기쁜 것은 참으로 기쁜 것이 아닙니다. 나는 기쁜데 함께 있는 다른 누군가가 아직 슬픔에 잠겨 있다면 그 기쁨을 정말 기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간직한 기쁨을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고, 그 기쁨이 모두의 것이 되도록 만들 수 있을 때 그 기쁨은 행복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기쁜 소식을 듣고 깨달으며 그 깨달은 바를 살아가는 사람은 스스로가 살아 있는 또 다른 복음서가 되어 갑니다. 생각과 말과 행위로 이루는 모든 순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자신의 삶 속에 써내려 가는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인은 자신의 삶이 하나의 기도가 되게 하듯, 자신의 삶을 누군가에게 기쁜 소식으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진정으로 복음의 기쁨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2022년 9월 4일(다해) 연중 제23주일 춘천주보 2면, 김혜종 요한 세례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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