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례] 응답하라 전례: 전례는 어디에서 거행하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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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2-10-06 | 조회수2,031 | 추천수0 | |
[응답하라 ‘전례’] 전례는 어디에서 거행하는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세 가지를 ‘의식주(衣食住)’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한국 사람의 표현이고 중국인들은 ‘식의주(食衣住)’라고 하여 ‘마시고 먹는 일은 덕’이라는 중국문화의 특성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사람의 거처를 뜻하는 ‘주(住)’는 마지막에 배치가 되어있지만,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임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양육되기 위해서 모이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곳을 천주교회는 보통 ‘성당(聖堂)’이라 하고, 성당은 전례적 필요에 따라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는 예배의 공간이었던 구약의 성전 개념과 전례가 거행되는 성당의 시대에 따른 변천과 그 특성, 그리고 성당 내부의 전례를 위한 다양한 공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위한 공식적인 성당이 생겼다!
예배를 거행하기 위해 불리운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모이기 위한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최후의 만찬을 위한 장소로 예수님이 미리 다락방을 준비하도록 제자를 보낸 것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장소는 아무래도 예루살렘의 대성전일 겁니다. 예루살렘 대성전은 하느님의 현존과 그분과의 만남의 최상의 장소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의 현존과 초월성이라는 것을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면서 확인해줍니다. “저 하늘, 하늘 위의 하늘도 당신을 모시지 못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집이야 오죽하겠습니까?”(1열왕 8,27).예수님께서 수난, 죽음, 부활, 승천을 통하여 파스카 신비를 드러내셨으며,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명령하신 성찬례를 거행하기 위해 그분의 부활날인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마태 28,1) 마다 모여서, 세례받은 이들을 가르치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사도 2,42)했습니다. 유다인들과 같이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사도 2,46) 모였습니다.
70년 유다전쟁으로 인하여 로마군대가 예루살렘 대성전을 파괴한 후 이스라엘의 성전 예배는 더 이상 할 수 없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기도와 예배를 위해 신자들 중에서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가정집에서 모였는데, 그 집을 ‘교회의 집’(Donus ecclesiae)이라 합니다. 여기서의 ‘교회’(ecclesia)는 모인 ‘회중’을 의미합니다.
박해 시기가 끝나고 성녀 헬레나 황후의 아들인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313년)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자유를 얻게 되었으며, 당시 공공건물의 형식으로 유행하던 바실리카 양식의 대성당을 황제의 지원으로 짓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공식적인 성당은 ‘라테라노의 성 요한 성당’(324년 실베스트로 1세에 의해 ‘지극히 거룩하신 구세주’께 봉헌되었고, 후대에 세례자 요한과 사도 요한에게 다시 봉헌됨)입니다.
시대와 지역마다 다른 양식으로 교회 건축은 발전했다
그리스도교 바실리카 양식은 전례가 거행되는 제단을 향해 모든 이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세로 방향의 지평을 강조한 반면에, 비잔틴 양식의 교회는 원형의 돔에 의한 중앙부의 강조를 선호하면서 보다 역동적인 건축을 이루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바실리카 양식은 수평과 수직, 단순과 장엄, 로마식 고정성과 프랑스-독일 민족의 역동성 사이에 조화를 이룬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변모했습니다. 12세기 전반부터는 극적이고 활동적이면서 수직성을 강조한 고딕 양식이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15세기에 들어오면서 고대로의 회귀인 르네상스 문예 부흥 시대에 고대의 원기둥과 기하학적 비례를 중시하는 성당이 지어졌으며, 트렌토 공의회(1545-1563년) 이후에는 신앙의 승리와 성취의 열정을 강하게, 때로는 비이성적으로 표현하는 바로크 양식이 등장했습니다. 낭만주의 문화와의 관련 속에서 19세기 전반에는 중세와 그 예술적 취향에 대한 새로운 열정이 일어난 ‘복고 시대’가 유행합니다.
이렇게 성당 건축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했지만, 가장 안타까운 것은 사도 시대의 ‘교회의 집’에서 느꼈던 공동체의 친근감과 유대감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직무들이 계급화되어 전례 공간에 적용되면서 제단은 높아지고 난간이 생겼으며 회중석과의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그래서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구분이 명확해지고, 회중은 전례의 구경꾼으로 전락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노력과 전례 공간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 헌장’에서 초기 교회의 원천적인 교회 정신을 드러내기 위한 성당 건축을 제안합니다. “성당 건축에서는 전례 행위의 실행과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확보에 적합하도록 힘써 배려하여야 한다”(124항). 오늘날의 성당은 공동체가 전례 거행의 중심에 더욱 가깝게 위치하고, 또 밝은 환경 속에서 느끼고 활동할 수 있게 배치된 공간을 추구합니다.
주된 전례 공간은 주례하는 성직자들이 전례를 거행하는 ‘제단’(presbyterium)이 있고, 이곳에는 성찬례가 거행되는 ‘제대’(altare), 하느님 말씀이 선포되는 ‘독서대’(ambo), 회중을 주도하고 기도를 이끄는 임무를 수행하는 ‘주례 사제의 좌석’(sedes sacerdotis celebrantis)이 배치됩니다. 신자들의 자리는 신자들이 전례에 몸과 마음으로 올바르게 참여할 수 있도록 의자와 통로, 성가대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의 보존 장소인 ‘감실’은 보통 하나이고 붙박이로 만들어야 하며, 단단하고 깨지지 않는 불투명 재질로 만들고, 기도하기에 알맞은 곳에 마련합니다. 이러한 전례 공간은 기본적으로 전례 행위를 원활하게 하도록 하며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배치되어야 합니다.
‘빛의 성전’이라 일컬어지는 롱샹 성당과 라 투레트 수도원을 설계한 현대 건축과 디자인의 선구자인 르 코르뷔지에(1887-1965)는 “훌륭한 비례는 편안함을 주고 나쁜 비례는 불편함을 준다”는 철학을 건축에 구현한 위대한 건축가입니다. 그는 보이는 건축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공간을 창출하는 데 탁월했습니다. 어찌 보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공간과 지상에서 믿음을 고백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공간을 훌륭한 비례로 구성하는 것이 성당 건축을 하는 이들의 고민이 아닐까 합니다.
눈을 현혹시키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현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는 보이는 것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혜안(慧眼)’이 꼭 필요합니다. 이런 시기에 전례에 대한 능동적 참여를 돕는 공간의 적절한 배치는 이런 영적 능력을 키우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의 성당은 어떤가요? 하느님을 만나기에 편안한가요?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10월호, 윤종식 디모테오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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