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든 이리들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언자란 어떤 말씀을 전하여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넓게는 우리가 모두 예언자들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말과 행동으로 타인에게 분명히 영향을 주고 살기 때문입니다.
어떤 유명한 야구선수가 은퇴한 후 강연을 다닐 때 교도소에서도 강연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강연 중 야구를 하다 남의 집 유리창을 깼을 때 힘이 좋아 훌륭한 메이저리거가 될 거라고 칭찬 받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한 수감자가 “저희 아버지도 언젠가는 제가 감옥에 갈 것이라고 하셨죠.”라고 말했습니다.
피카소는 어머니에 대해 “저희 어머니는 ‘네가 성직자가 되면 교황이 될 것이고, 군인이 되면 장군이 될 것이며, 정치인이 되면 대통령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죠.
그런데 저는 화가가 되었고 피카소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 각자는 누군가가 우리에게 예언해 준 말을 믿고 그 예언을 성취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니 거짓 예언자가 아니라 좋은 예언자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나의 주위에 강력한 좋은 예언자들이 있다면 그 사람은 거짓 예언자들을 어느 정도 감당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런 거짓 예언자들을 감당할 힘이 없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이상한 예언을 하는 이들을 빨리 떠나야 합니다. 아니면 그 이리들에게 잡아먹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람을 굳이 선별해서 만나야 할 때 선별기준이 될 것입니다.
2015년 6월 14일 사람들의 관심 속에 애정과 후원을 받아 오던 한 모녀의 페이스북 계정에 이상한 게시물이 포스팅됩니다.
“그녀는 죽었다.”
딸이 엄마를 살해했다는 내용입니다. 그 내용의 내막은 이렇습니다.
지난 2005년 8월 미국 남동부에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상륙했습니다.
가장 큰 손해를 입은 지역은 뉴올리언스였습니다. 폭우로 제방이 붕괴하면서 도시 대부분이 물에 잠겨 1,8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정말 대참사였습니다. 이 모녀도 피해 이재민 중 하나였습니다. 이들은 뉴올리언스 정부 임대 주택에서 살고 있었는데 허리케인으로 집이 파괴되면서 갈 곳을 잃게 된 것입니다.
엄마 디디 블렌챠드는 24살의 나이에 남편을 만나서 임신과 함께 결혼하였지만 딸 집시가 태어나기 한 달 전 이혼을 합니다. 결국, 엄마 혼자 양육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딸이 태어난 지 3~4개월쯤 됐을 때 엄마 디디가 보니 아이가 잠을 잘 때 이상 증상을 보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병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그때 이후 집시는 잘 때마다 산소마스크를 착용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하지만 불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집시가 7살이 되었을 때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이 사고의 후유증으로 근육위축증이라는 장애를 얻게 됩니다. 아이는 걷는 것을 포기하고 늘 휠체어를 타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집시는 백혈병, 천식, 간질 같은 크고 작은 질환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청력에 시력까지 좋지 않아서 항상 보청기와 안경을 착용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음식마저 삼키지 못해 소장에 연결된 호스를 통해서만 겨우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병약하게 아이가 성장하다 보니 엄마 디디는 딸이 10대가 되어서도 정신연령이 7살 수준이라면서 딸에게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나 위급상황이 생길 걸 대비해서 약 꾸러미를 들고 다니며 정말 헌신적으로 아이를 돌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엄마는 당연히 직업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에 이전 남편이 매달 보내는 양육비를 가지고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허리케인으로 집마저 잃어버린 겁니다.
이 모녀의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지면서 각종 구호단체의 러브콜이 쏟아졌습니다.
특히나 그중에 일명 사랑의 집짓기로 유명한 한 단체가 손을 내밀게 되면서 모녀를 위해 미주리에 작은 집을 하나 마련해 줍니다. 몸이 아픈 집시를 위해 휠체어가 갈 수 있게 경사로도 있고 또 따뜻한 목욕을 할 수 있는 욕조까지 집안에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모녀는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뉴스 인터뷰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엄마 디디는 누구보다도 딸을 자랑스러워했고, 집시 역시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는 엄마밖에 없다면서 인터뷰 내내 서로를 향한 애틋함이 넘쳐흘렀습니다. 이런 모습의 모녀를 향한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여졌고 그들을 위한 선행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2015년 페이스북 계정에 난데없이 올라온 포스팅이 바로 “그녀는 죽었다!”였던 것입니다.
결국 경찰이 밤 10시쯤 모녀의 집안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경찰들이 침실로 들어선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엄마 디디가 잔인하게 칼에 찔린 채 침대에 엎어져 있었고 휠체어만 덩그러니 남은 채 딸 집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경찰이 들이닥친 곳은 집시의 남자친구 닉의 집이었습니다. 이때 집시는 놀랍게도 두 발로 걷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정밀진단 결과 집시는 어떤 건강상의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집시가 남자친구 닉에게 더는 못 견디겠다며 엄마를 죽여달라 사주한 것이었습니다.
닉은 종신형을 받고 집시는 10년 형을 받았습니다. 왜 그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냐고 묻는 경찰들의 말에 집시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말했다면 누가 믿어줬을까요?”
무려 20년간 이어진 엄마의 폭력을 통한 사기극은 그렇게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출처: ‘14년간 장애인 딸과 엄마의 애틋한 '거짓사랑'’, 유튜브 채널, ‘디바제시카’]
집시의 엄마는 좋은 예언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딸을 이용해 돈을 벌었습니다. 돈에 미치면 딸까지 그렇게 이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짓 예언자를 알아보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세상 것을 좋아하면 그 사람은 100% 거짓 예언자입니다. 그러나 딸의 처지에서는 엄마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도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 세속적인 사람인지 아닌지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을 잘 모르겠다면 나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살피면 됩니다.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이 “넌 모든 것을 할 수 있어!”라고 말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참 예언자입니다. 하지만 나의 능력을 규정해버리고 “넌 나 없이는 안 돼!”라고 말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거짓 예언자입니다. 그것을 통해 상대를 이용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 말에 속아 그 사람에게 의지하게 되면 안 좋은 결말을 맞게 됩니다.
예수님은 거짓 예언자를 구별할 때 그 ‘열매’를 보고 구별하라고 하십니다.
열매는 마지막에 맺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맺으려는 목표입니다. 지금 나에게 해 주는 것을 보지 말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보라는 말입니다.
그저 나를 사랑해주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인지 그것을 통해 어떤 다른 이득을 얻으려는 사람인지 보라는 말입니다.
거저 주며 행복한 순수한 사랑이 목적이 아닌 모든 말과 행위들은 늑대의 꾐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거짓 예언자에 속지 말고 거짓 예언자도 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