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심장만 뛰는 사람과 가슴도 뛰는 사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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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강만연 | 작성일2023-04-10 | 조회수357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전례적으로 봤을 때 우리는 부활을 했다는 의미를 가지고 살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서 어제 묵상을 한 게 있습니다. 한번 공유를 하고자 합니다. 요즘 가브리엘 신부님 글을 읽으면서도 그렇고 대전교구 김재덕 베드로 신부님의 유튜브 강론을 들으면서도 그렇고 묵상 소재가 쏟아지지만 지금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다 그걸 묵상할 수가 없어 조금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뭔가 순간 영감이 떠오를 때 그때 그 순간을 놓치면 그냥 영감이 휘발되기 때문입니다. 아쉽지만 할 수 없습니다. 다시 언제 시간이 나면 또 기억이 날 것이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히 부활 전의 몸 그대로 부활을 한다면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게 육이 됐든 영이 됐든 환골탈태가 되듯이 그렇게 부활이 되어져야 의미가 있습니다. 제목에서 보면 심장만 뛰는 사람과 가슴도 뛰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이 말 안에 있는 조사를 잘 봐야 됩니다. '만' 과 '도' 조사입니다. 사람이 부활이 됐든 부활이 되지 않고 옛날 그 모습 그대로 살아있다고 해도 살아있으려고 하려면 첫 번째 조건이 심장이 뛰어야 합니다. 법에서도 사람을 자연인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의 기준이 심장이 멈췄을 때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조건이 심장이 뛰는 것으로 표현을 한다면 당연히 모든 살아있는 사람은 심장이 뛰게 돼 있습니다. 이건 단순히 그냥 생명체로 태어나 숨만 쉬고 살아가는 육신의 상태만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근데 가슴도 뛰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슴도'라는 말 속에 '도'의 의미는 심장도 뛰고 가슴도 함께 뛴다는 그런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간혹 가슴이 뛴다고 할 때 그때의 가슴은 심장을 말하는 가슴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심장을 육체에 비유하면 가슴은 영혼에 해당하는 의미입니다. 삶에 적용하면 가치있는 삶과 의미있는 삶을 상징하는 말도 됩니다. 그런 의미를 가질 때 우리는 '가슴'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 육신의 수명이 다할 때는 육이라는 옷을 벗어야 합니다. 이 옷을 벗게 될 때 우리는 영의 존재로 다시 우리의 본향으로 가게 됩니다. 원래의 고향입니다. 그땐 육이 아니라 영혼의 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때 입게 될 옷은 지금 이 육신의 옷 속에 있는 영혼으로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영혼의 세계에서는 입을 수 없는 옷이 됩니다. 우리가 가는 세상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당연합니다. 자연인에서 군인이라는 신분이 되면 군복을 입어야 하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영혼의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영혼이 되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심장만 뛰는 삶을 살게 된다면 모르긴 몰라도 좀처럼 천국에 가기는 조금은 역부족이 될 것입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 세상에서 가슴도 뛰는 삶을 산 사람만이 천국에서 사는 사람들이 입게 될 영혼의 옷을 입을 자격이 될 겁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의 영혼은 그런 영혼만이 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이 세상을 살면서 가슴 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일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한비야 씨를 좋아합니다. 그분의 삶은 삶 자체가 멋지고 역동적입니다. 그분의 삶 일부분을 보면 가슴 뛰는 삶이 어떤 삶인지 대충 이해를 할 수 있을 겁니다. 한비야 씨는 원래 오지탐험가였습니다. 어떤 계기로 인해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월드비전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요 그건 케냐의 한 흑인 안과 의사로 인해 인생의 변화가 왔던 것입니다. 한번 그 의사와 인터뷰할 일이 있었습니다. 유명한 의사라 심지어 대통령도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 그런 의사였는데 한센병과 같은 피부질환을 가진 환자들에게서 진물이 나는 상황에서도 의사로서의 소명을 가지고 치료를 하는 모습에서 처음에는 그 의사에 대해 멋지다고 전해들은 외적인 이미지와는 전혀 아니라서 실망된 부분이 있었지만 이런 모습을 보고서는 단 몇 분만에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해 인터뷰를 했던 것입니다. 이 인터뷰 내용이 정말 감동입니다.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또 얼마든지 시내에서 일을 하면 돈도 더 많이 벌 수도 있는데 이런 곳에서 일을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환한 웃음과 함께 " 자신이 나이로비에 있었다면 잘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 자신이 가진 기술과 재능을 돈 버는 데에만 쓰게 되고 그렇게 살면 자신의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런 일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슴 뛰는 일이다."고 했던 것입니다. 한비야 씨는 그 케냐 의사의 그 말에 뜨거운 전율을 느꼈고 그 의사의 그 말이 자신이 월드비전에서 일을 하는 계기였고 어떤 대학생도 한비야 씨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그 케냐 의사와 같은 말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내용만을 봐도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뭐가 가슴 뛰는 삶인지는 알 수 있을 겁니다.
마치 이 의사는 마태오복음 25장 '최후의 심판'에 나오는 그 복음 말씀처럼 인생을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의인이 작은 이에게 선행을 했을 때 마지막 최후의 심판에서 예수님께 자기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는데 언제 그런 일을 했냐고 말하는 대목처럼 누군가 알아주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런 일을 해도 자기 스스로에게 그 자체로서의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그걸 가슴 뛰는 일로 생각하며 행복해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제가 제목에서 언급한 것처럼 심장만 뛰는 사람이 아니고 가슴도 뛰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합니다. 단순히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하는 게 아니라 신앙인으로서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단순히 심장만 뛰는 사람과 같은 사람보다는 가슴도 뛰는 삶을 살아야 먼 훗날 하느님 앞에 갔을 때 하느님을 만나기에 합당한 영혼으로 태어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영혼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수도 없이 부활의 날개를 펴 하늘 나라로 비상할 수 있도록 날개짓을 연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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