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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를 찾아 오시는 부활하신 주님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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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4-14 조회수571 추천수6 반대(0) 신고

우리를 찾아 오시는 부활하신 주님

-“와서 아침을 먹어라.”-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주님이 이루신 일, 우리 눈 에는 놀랍기만 하네.

 이날은 주님이 마련하신 날,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시편118,22-24)

 

부활 팔일 축제 주간의 말씀이 한결같이 역동적이고 충만한 파스카의 기쁨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고기잡이 기적 이야기는 공관복음(마태4,18-22;마르1,16-20;루카5,1-11) 앞부분 소명사화와 연결되지만, 오늘 요한복음은 복음 마지막 부분에 부활하신 주님의 발현사화에 연결됩니다.

 

오늘 복음은 고기잡이 기적이 주가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일곱제자에게 발현하신 일화로 의미 풍성한 상징들로 가득합니다. 복음을 묵상하는 순간 떠오른 강론 제목이 “우리를 찾아 오시는 부활하신 주님”이었고, 부제는 “와서 아침을 먹어라.” 라는 주님의 다정한 초대 말씀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 보다 “사람을 찾는 하느님”이 더 복음적이고 고맙고 감동적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기 전에 이미 우리를 찾아오시는 겸손한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무려 26년전 이런 깨달음의 자작 애송시가 지금도 생생히 떠오릅니다.

 

“나무에게 하늘은 

 가도가도 멀기만 하다

 아예 고요한 호수가 되어 하늘을 담자”-1997.2.

 

하느님을 찾는 노고를 잠시 멈추고, 찾아오시어 함께 계신 주님을 마음의 호수에 담아 모시자는 권고입니다. 어제처럼 부활하신 주님은 오매불망寤寐不忘 제자들이 그리워, 보고싶어 당신이 돌아가신후 갈릴리 호수, 생업현장으로 돌아간 제자들을 찾아 오십니다. 

 

말그대로 우리가 그리워 보고싶어 찾아 오시는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잔치 상황과 흡사합니다. 복음 서두부터 풍부한 의미가 계시됩니다. 아마도 예수님 돌아가신후 고기잡이 현장의 생업에 종사하게 된 일곱제자들의 실의와 좌절상태를 반영하는 듯 합니다. 여기서 일곱은 요한에게 풍부함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그 일례로 요한복음에는 일곱의 표징들이 나오고 “나는 이다”라는 예수님의 신원도 일곱으로 나타납니다.

 

제자들은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니 제자들의 내면은 말그대로 “텅 빈 허무”의 캄캄한 어둠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장면에서 연상되는 주일미사후 낮기도대신 바치는 시편 127장 전반부 말씀입니다. 

 

“주께서 집을 아니 지어 주시면, 그 짓는 자들 수고가 헛되리로다.

 주께서 도성을 아니 지켜 주시면, 그 지키는 자들 파수가 헛되리로다.

 이른 새벽 일어나 늦게 자리에 드는 것도, 

 수고의 빵을 먹는 것도 너희에게 헛되리니”(시편127,1-2ㄱ)

 

그대로 오늘 복음의 전반부 제자들의 심정적 고백이었을 것입니다. 하느님 빠진 텅 빈 허무의 삶은 세상 무엇도 대체해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텅빈 배는 밥으로 채울수 있어도 허기虛氣로 “텅 빈 마음”은 하느님만으로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구절의 장면이 참 아름답고 구원의 진리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뭍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은 알지 못하였다.’

 

얼마나 멋지고 구원의 위로가 되는 장면인지요!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한 제자들을 배후에서 물끄러미 지켜보셨을 주님께서, 찬란한 아침노을 배경으로 동터오는 태양과 더불어 당신을 계시하려는 순간입니다. “절망은 없다”라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실의와 좌절, 낙심과 절망에 빠져 있을 바로 그때 거기 그 자리에 주님은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못잡았습니다.”

“그물을 배 오른 쪽에 던져라.”

 

실의와 좌절감에 빠진 제자들을 친히 찾아 오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제자들이 그물 가득 고기를 잡아 올리는 순간 눈이 열려 주님을 알아본 애제자의 “주님이십니다!”라는 고백에 이어 주님의 출현에 반가움의 절정에 도달한 수제자답게 베드로는 겉옷을 두른채 호수로 뛰어 듭니다. 

 

참으로 오늘 복음은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풍부하고 역동적입니다. 백쉰 세 마리의 고기들로 가득찬 그물은 미래의 교회의 풍성한 선교 열매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며, 그 많은 고기들에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교회일치의 견고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어지는 성체성사 미사를 상징하는 장면도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21,12)

 

똑같은 파스카의 주님께서 우리를 미사잔치에 초대해 주시며 하시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참으로 제자들의 “텅빈허무”의 마음은 “텅빈충만”으로 바뀌었듯이 우리 역시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그러합니다. “먹어라” 말마디를 대하니 문득 열왕기 상권에서 이세벨을 피해 달아나다 싸리나무 아래 잠이 든 엘리야를 흔들어 깨우던 천사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대로 광야여정중 미사에 참석한 우리들을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일어나 먹어라. 갈 길이 멀다.”(1열왕19,7)

 

예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했던 소심하고 우유부단하고 유약한 베드로가 아니니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일치의 삶을 살게 된 덕분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의 리더십이 빛나지만 제1독서 사도행전의 최고의회에서 설교는 그 리더십의 절정을 이룹니다. 사도행전의 전반부 사도들의 말을 들은 많은 이들이 믿게 되었는데 장정만도 무려 오천명 가량 되었다니, 복음의 ‘그물에 가득 담긴 고기들’의 상징적 장면은 교회의 풍성한 선교 열매로 실현되고 있음을 봅니다. 

 

이어지는 태생 불구자의 치유과정에 결정적 역할을 하신 부활하신 파스카 예수님께 대한 베드로의 설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압권壓卷입니다. 얼마나 멋지고 확신에 넘친 베드로의 감동적 설교인지, 그대로 오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는 말씀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집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입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는 없습니다.”(사도4,10ㄴ-12).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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