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창세기(23) 기근(饑饉)을 통한 말씀 (창세12,10-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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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3-04-20 | 조회수660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창세기(23) 2023. 4. 20. 목 기근(饑饉)을 통한 말씀 (창세12,10-20)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 그래서 아브람은 나그네살이하려고 이집트로 내려갔다. 그 땅에 든 기근이 심하였기 때문이다. 11 이집트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그는 자기 아내 사라이에게 말하였다. “여보, 나는 당신이 아름다운 여인임을 잘 알고 있소. 12 이집트인들이 당신을 보면, ‘이 여자는 저자의 아내다.’ 하면서, 나는 죽이고 당신은 살려 둘 것이오. 13 그러니 당신은 내 누이라고 하시오. 그래서 당신 덕분에 내가 잘되고, 또 당신 덕택에 내 목숨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시오.” 14 아브람이 이집트에 들어갔을 때, 이집트인들이 보니 과연 그 여자는 매우 아름다웠다. 15 파라오의 대신들이 사라이를 보고 파라오 앞에서 그 여자를 칭찬하였다. 그리하여 그 여자는 파라오의 궁전으로 불려 갔다. 16 파라오는 사라이 때문에 아브람에게 잘해 주었다. 그래서 그는 양과 소와 수나귀, 남종과 여종, 암나귀와 낙타들을 얻게 되었다. 17 그러나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아내 사라이의 일로 파라오와 그 집안에 여러 가지 큰 재앙을 내리셨다. 18 파라오가 아브람을 불러 말하였다. “네가 도대체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짓을 저질렀느냐? 그 여자가 네 아내라고 왜 나에게 알리지 않았느냐? 19 어찌하여 그 여자가 네 누이라고 해서, 내가 그를 아내로 삼게 하였느냐? 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데리고 떠나라.” 20 파라오는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려, 아브람을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와 함께 떠나보내게 하였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미래에 잘 되게 하실 것을 믿음으로 가나안땅을 향해서 나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나안땅에 가보니까 가나안땅은 아브라함을 환영하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넓은 초원에서 천막을 칠 수 없어서 산위에서 천막을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아브라함은 계속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남쪽으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창세12,9) 9 아브람은 다시 길을 떠나 차츰차츰 네겝(남) 쪽으로 옮겨 갔다 그런데 여기서 네겝 이란 지명은 남쪽이 됩니다. 네겝은 남쪽에 있는 사막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남쪽에 있던 사막지역으로 내려갔는데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창세12,10) 10 그 땅(네겝)에 기근이 들었다. 그래서 아브람은 나그네살이하려고 이집트로 내려갔다. 그 땅에 든 기근이 심하였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내려간 네겝 사막은 설상가상으로 그 땅에 기근이 들었습니다. 보통 기근이 아니라 심한 기근이었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혼자가 아닙니다.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또 가축들도 있습니다. 자신만 아니라 온 가족들이 기근으로 굶어 죽을 상황에 놓였습니다. 평지면 기근이 와도 그래도 조금의 먹을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막입니다. 더 이상 살아 갈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기근은 단순히 자연적인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은 모두 하느님의 말씀을 따른 인생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걸어가는 모든 삶은 하느님의 인도하심입니다. 그러니 기근을 들게 하신 분도 하느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말씀만 따라온 아브라함에게 왜 이런 극심한 기근을 허락하시는 것은 날마다 우리가 하느님께 던지는 질문입니다. 하느님 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서 갔습니다. 힘들어도 하느님께서 주신 말씀을 가지고 미래의 희망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왜 내 인생에 기근을, 광야를, 환난을 허락하십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왜 아브라함에게 이런 기근의 시련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 첫째, 기근을 통해서 하느님만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극심한 기근을 주심으로 인생 밑바닥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창세12,10) 10 그 땅(네겝)에 기근이 들었다. 그래서 아브람은 나그네살이하려고 이집트로 내려갔다. 그 땅에 든 기근이 심하였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그 땅에 극심한 기근이 들었으므로 고민도 하지 않고 애굽에 나그네살이(거류)하려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실 때 한 순간도 고민하지 않고 가나안 땅으로 간 것과 대조를 이룹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을 비난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내 가족이 굶어죽게 되었습니다. 그래 내 가족들이 굶어 죽더라도 나는 미래를 바라보고 이 가나안땅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근이 드니까 고민도 하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렇게 애굽으로 내려갔는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창세12,11-12) 11 이집트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그는 자기 아내 사라이에게 말하였다. “여보, 나는 당신이 아름다운 여인임을 잘 알고 있소. 12 이집트인들이 당신을 보면, ‘이 여자는 저자의 아내다.’ 하면서, 나는 죽이고 당신은 살려 둘 것이오. 애굽으로 내려가다가 걱정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사라이가 너무 아름다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들이 사라이는 살리고 나는 죽이면 어떻게 하느냐 입니다. 이때 사라이의 나이가 65세입니다. 사라이가 얼마나 아름다운 여인이었으면 아브라함이 이런 고민을 했겠습니까? (창세12,13) 13 그러니 당신은 내 누이라고 하시오. 그래서 당신 덕분에 내가 잘되고, 또 당신 덕택에 내 목숨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시오.” 고 합니다.
그래서 사라이를 나의 누이라고 하자고 합니다. 사라이가 아브라함의 이복누이인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아내인 것은 속이자고 합니다. 그래서 그대로 말미암아 내가 애굽에서 보존되리라고 합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라고 하자고 한 것은 단순히 생명을 보존하는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사라이 덕에 더 많은 유익과 혜택을 받기 위함입니다. (창세12,14-16) 14 아브람이 이집트에 들어갔을 때, 이집트인들이 보니 과연 그 여자는 매우 아름다웠다. 15 파라오의 대신들이 사라이를 보고 파라오 앞에서 그 여자를 칭찬하였다. 그리하여 그 여자는 파라오의 궁전으로 불려 갔다. 16 파라오는 사라이 때문에 아브람에게 잘해 주었다. 그래서 그는 양과 소와 수나귀, 남종과 여종, 암나귀와 낙타들을 얻게 되었다. 결국 아브라함은 사라이 덕에 많은 재물을 얻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을 등처가라고 합니다. 아내 등치고 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등처가 가운데 드라이브맨이 있습니다. 남편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내 출퇴근만 시켜줍니다. 또 셔터맨이 있습니다. 아내가 약사인데 남편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약국 셔터만 열어줍니다. 또 수퍼맨이 있습니다. 아내가 수퍼를 합니다. 그래서 날씨가 좋으면 날씨가 좋기 때문에 일하러가지 않습니다. 또 날씨가 좋지 않으면 날씨가 좋지 않다고 일하러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매일 수퍼에서 과자를 안주로 먹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런 사람들보다 더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래도 아내를 지켜줍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아내를 지켜주기는 커녕 아내 사라이를 파라오의 후궁으로 줍니다. 그렇게 함으로 아내 덕에 애굽에서 더 잘 먹고 잘 살려고 합니다. 성경은 인간을 절대 영웅시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하느님만 위대하시지 아브라함은 별수 없는 인간인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여기에 어항이 있습니다. 이 어항이 깨끗합니까, 더럽습니까? 가만 두면 깨끗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어항을 휘저으면 더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도 가만히 있으면 괜찮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어떤 인간도 휘저으면 더러움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서 가나안땅으로 갔을 때만 해도 아브라함은 괜찮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기근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휘저으시니까 아브라함의 밑바닥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에 비해서 하느님은 어떠하십니까? (창세12,17) 17 그러나 주님께서는 아브람의 아내 사라이의 일로 파라오와 그 집안에 여러 가지 큰 재앙을 내리셨다. 사실 누가 잘못했습니까? 아브라함 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누구에게 재앙을 내리십니까? 파라오입니다 그래서 파라오가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12,18-19) 18 파라오가 아브람을 불러 말하였다. “네가 도대체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짓을 저질렀느냐? 그 여자가 네 아내라고 왜 나에게 알리지 않았느냐? 19 어찌하여 그 여자가 네 누이라고 해서, 내가 그를 아내로 삼게 하였느냐? 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데리고 떠나라.” 사실 아브라함이 사라를 아내라고 하면 그를 죽일 것이라는 말은 아브라함의 생각 이였습니다. 파라오도 사라이가 아내라고 말했다면 데리고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왜 아브라함이 잘못 했음에도 불구하고 파라오에게 재앙을 내리는 이유는 만일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이가 파라오의 후궁으로 완전히 들어간다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이루실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하늘과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은 많은 자손들을 약속하셨습니다. 무엇보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사라이를 통해서 예수그리스도가 나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거짓말 때문에 하느님의 약속이 깨어질 위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파라오의 집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인간은 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실수한다 할지라도 하느님은 여전히 신실하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기근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인생 밑바닥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코로나를 통해 인생의 기근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밑바닥을 보게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 인생이 밑바닥에 내려가다 보면 거기에서 인간의 위대함을 발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믿을 것은 나 자신 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인간 힘으로 인생의 기근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聖經)은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라도 별 수 없는 인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조상도 자기가 살기 위해서 아내를 파는 인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 인생에 기근을 허락하신 이유가 별수 없는 인간을 바라보지 말고, 약속에 신실하신 하느님만 바라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고 잡혀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심으로 인생 밑바닥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이사40,6-7) 6 한 소리가 말한다. “외쳐라.” “무엇을 외쳐야 합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7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별수 없기에 하느님만 바라보며 앙망(仰望)하며 살아가라 말씀하십니다. (이사40,31) 31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기근을 통해서 인생의 밑바닥 가운데서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열등감을 가지지 맙시다. 열등감은 교만입니다. 우리가 별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에 열등감을 가지는 것은 내가 대단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나 자신의 연약함에 대해서 실망하는 것 불신앙입니다. 그 누구도 바라보지 맙시다. 약속에 신실(信實)하신 하느님만 바라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날마다 새 힘을 주십니다. 날마다 독수리 날개 치는 새 힘을 얻을 것입니다. 달음질하여도 피곤하지 않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는 새 힘을 얻을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기근 가운데서 오직 하느님만 바라보며 살아갑시다. 둘째, 기근을 통하여 하느님은 약속의 땅을 떠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실수를 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기근 때문에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을 떠난 것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에서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갔다고 하는데, 이것은 애굽이 지형 상으로 낮은 곳이기에 내려갔다고 볼 수도 있고, 또 아브라함의 신앙이 내려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26장에서 이사악 때도 흉년이 들었을 때 하느님께서 이사악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흉년이 들어도 가나안땅에 거주하라고 하십니다. (창세26,2) 2 주님께서 이사악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땅(가나안)에 자리 잡아라. 그리하면 내가 네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을 이루어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듣고 이사악은 흉년이 들어도 애굽으로 가지 않고 가나안 땅에 거주(居住)합니다. (창세26,12-13) 12 이사악은 그 땅에 씨를 뿌려, 그해에 수확을 백 배나 올렸다. 주님께서 그에게 이렇듯 복을 내리시어, 13 그는 부자가 되었다. 그는 점점 더 부유해져 마침내 큰 부자가 되었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무리 힘이 들어도 약속의 땅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①우리에게 있어서 약속의 땅은 먼저 성경(聖經)입니다. (1코린4.6) 6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이 모든 것을 나 자신과 아폴로에게 적용시켜 이야기하였습니다. 여러분이 ‘기록된 것에서 벗어나지 마라.’ 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배워, 저마다 한쪽은 얕보고 다른 쪽은 편들면서 우쭐거리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고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성경이 하느님의 완성되고 유일한 계시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성경 안에 모든 해답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만 보면 그 말씀 안에 그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도 남는 충분한 은혜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 안에 모든 문제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또 성경 안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준비하신 모든 복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떠나지 않고 있으면 반드시 하느님께서 우리의 모든 길을 형통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또② 오늘 본문에서 가나안 땅은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사고를 치더라도 교회에서 쳐야한다. 아무리 시끄러워도 교회는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만일 학생들이 교회를 떠나서 문제가 생기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가나안 땅을 떠나지 말라 고 하는 것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는 떠나지 말라, 신앙의 세계는 떠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 어떤 인생의 기근이 있어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나안 땅인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과 교회를 떠나지 말고 그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③셋째, 기근 가운데서도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극심한 기근으로 애굽으로 내려가는 아브라함과 하느님께서 함께 하셨다면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물론 하느님께서 사라이의 일로 파라오의 집에 재앙을 내리신 일입니다. 그런데 10절을 보면~ (창세12,10) 10 그 땅(네겝)에 기근이 들었다. 그래서 아브람은 나그네살이하려고 이집트로 내려갔다. 그 땅에 든 기근이 심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내려갔다는 것은 기근으로 가나안땅에서 애굽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를 보면 내려갔다는 이 단어가 하느님께서 고통가운데 있는 이스라엘백성에게로 내려갔다고 했을 때 사용하였던 동사(와에레드)와 같은 동사입니다. 출애굽기 3장 7절-10절까지를 보겠습니다. (탈출3,7-10) 7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이 겪는 고난을 똑똑히 보았고, 작업 감독들 때문에 울부짖는 그들의 소리를 들었다. 정녕 나는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 8 그래서 내가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하여, 그 땅에서 저 좋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족과 히타이트족과 아모리족과 프리즈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이 사는 곳으로 데리고 올라가려고 내려왔다. 9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나에게 다다랐다. 나는 이집트인들이 그들을 억누르는 모습도 보았다. 10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 여기 하느님은 내 백성의 고통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 부르짖음을 들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근심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8절에 내가 “내려왔다” 애굽인의 손에서 “구하여” 가나안땅으로 “데리고 가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정확하게 출애굽사건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애굽으로 내려간 아브라함과 이스라엘백성들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근심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내려가셔서 애굽 인의 손에서 건져내셔서 가나안땅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우리가 극심한 기근으로 내려가지 말아야 할 애굽으로 내려갈 때도 내가 너희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극심한 기근으로 고통가운데 있을 때 너희들의 모든 고통을 보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그 모든 고통을 다 알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너희가 인생의 기근으로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내가 저 하늘 위에서 보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 받는 삶의 현장으로 내려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고통 받는 삶의 현장에서 우리를 데리고 다시 약속의 땅으로, 축복의 땅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족하여 연약할지라도 약속에 신실하신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잘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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