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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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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4-22 조회수767 추천수4 반대(0) 신고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언제나 늘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예수님-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시편33,18)

 

“나다.” 참 정다운 우리말이자 오늘 복음에서 물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의 자기계시를 통해 알게 되는 하느님의 이름입니다. 물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은 바로 “나다(I AM)”인분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탈출기3장14절에서 모세에게 하느님 자신이 밝힌 이름이기도 합니다.

 

“나다.”란 말을 맨처음 들은 것은 약50년전 제가 20대 청년 교사 시절 1970년대 중반 흥사단에서 지금은 돌아가신 김동길 박사에게 들었습니다. 당시 20대 젊은이들의 진리를 찾는, 민주화를 향한 열정은 참 뜨거웠습니다. 김박사님 말고도 함석헌 선생님, 안병욱 교수님, 김형석 교수님, 안병무 박사님등 많은 기라성같은 저명 민주운동인사들과 민중신학자들의 강연을 즐겨 들었고, 법정스님의 책은 모조리 구입해 읽었으며 많은 분들에게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또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와 '사상계' 잡지', 함석헌 옹의 '씨알의 소리', 안병무 박사의 '현존'을 챙겨 읽었고, 독일의 저항신학자 본훼퍼의 '옥중서간'도 애독했습니다. 또 초등학교 제자들에게는 생일때 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눈속에서의 3개월','어린왕자' 등 다양한 명작을 선물했습니다.

 

김동길 박사님의 설명 요지는 간단했습니다. 아버지가 밤 늦게 집에 돌아오셨을 때 대문을 두드리면, 아들이 방에서 듣고 나와서 “누구세요?” 물으면 “나다.” 대답할 것이고, 이때 아들은 저절로 아버지 목소리를 알아듣고 문을 열어준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버지에게 “나가 누구냐?”고 묻는 아들이 어디있겠는지요.

 

바로 하느님은 이런 분입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성구는 2012년에 세워진 저희 요셉수도원 십자로 중앙 예수님 성심상 아래 바위판에 새겨진 성구로 수도원을 찾는 많은 이들이 위로와 평화를 얻는 성구이기도 합니다. 예나 이제나 두려움에 포위되어 사는 사람들같습니다. 성경에도 무려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마디가 무려 365회 나오는데 하루하루 날마다 상기하라는 것이겠습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한밤중 물위를 걸어오던 예수님께서 큰 바람이 불어 호수에 물결이 높게 일어났을 때 두려움에 떠는 배안에 있던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은 오늘 인생 항해 중인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이겠습니다. “나다(I AM)”란 하느님 이름이 은혜롭습니다. 늘 반복해 들어도 새롭습니다. “나다(I AM)”를 보강하여 다음같이 쓰면 완벽해집니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다(I AM with you).”

“나는 너희를 위해 있다(I AM for you).”

 

바로 하느님은, 부활하여 늘 우리와 함께 계신 파스카 예수님은 이런 분입니다. 마태복음 마지막 성구도 이를 입증합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ㄴ)

 

바로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이런 하느님을 예수님을 통해서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앞서 5천명을 배불리 먹이시는 기적을 행한후 광적으로 몰려드는 군중을 피해 하느님 아버지를 찾아 산으로 물러가셨고, 제자들은 예수님 없이 목적지를 향해 항해 도중이었습니다. 서른 스타디온은 5km 정도 거리로 갈릴리 호수의 절반 거리에 해당됩니다. 호수라 하지만 호수 한복판에서는 바다처럼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호수 한복판에서 한밤중 큰 바람이 불어 물결이 드높아 질 때 제자들의 두려움도 점점 커졌을 상황에서 유령처럼 자기들을 향하여 걸어오는 이가 있었으니 제자들은 참 무섭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바로 이때 들려온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주님의 다정한 말씀은 얼마나 위로와 평화가 되었겠는지요! 주님은 멀리서도 기도중에 제자들의 곤경을 환히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새삼 두려움에 대한 근본 처방은 주님의 이 말씀뿐임을 깨닫습니다. 빛이신 주님이 함께 할 때 두려움의 어둠은 저절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예외없이 인생 항해 여정중인 우리들이요 살다보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 지요. 바로 이럴 때 마다 우리 삶의 중심에 언제나 늘 함께 하시는 주님의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음성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더불어 시편 23장에 나오는 모두가 좋아하는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는 1절 말씀도 기도로 바치면 좋겠습니다. 말마디를 바꿔 “주님은 나의 목자 두려울 것 없어라. 불안할 것 없어라. 걱정할 것 없어라. 무서울 것 없어라.”로 바꿔 고백기도로 바쳐도 좋겠습니다.

 

유비무환입니다. 혼자든 함께 든 여기 수도자들처럼 늘 시편 성무일도를 습관화하여 평생 날마다 규칙적으로 바칠 때 늘 주님 현존 의식 중에 빛속에 살 수 있을 것이며 두려움의 어둠도 걷힐 것입니다. 복음의 제자들은 이어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하는데 배는 어느새 순식간 목적지에 가 닿았으니 그대로 기적입니다. 

 

우리 역시 살아 온 뒤안 길을 보면 어느새 여기까지 와있나 놀랄 때가 있을 것이며, 순간 주님은 늘 함께 해 오셨음을 은혜로이 깨닫기도 할 것입니다. 제가 여기 요셉 수도원에 1988년 7월11일부터 정주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35년 공동체 배안에 몸담고 인생항해여정중인데 살아온 35년이 순간 같으며 그동안 주님께서 늘 함께 해주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의 제자들의 공동체는 그대로 인생항해여정중인 공동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흡사 제자들의 공동체란 배가 분열의 위기에 처한 불안한 분위기입니다. 바로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렸으니 그들의 과부들이 배급을 받을 때 홀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의 분열만큼 큰 해악은 없습니다. 하느님은 일치를 꾀하나 사탄을 분열을 꾀합니다. 바로 공동체를, 내 자신을 분열시키는 죄입니다. 외적의 침략이 없어도 내적으로 분열하면 저절로 망합니다. 바로 우리나라가 극히 경계해야 할 사항입니다. 내적 분열로 인한 혐오와 증오가 도를 넘었고 대립과 갈등이 너무나 격화되어 있습니다. 

 

밖의 적과 대결하기도 역부족인데 내적분열로 서로가 적이 되면 이보다 어리석고 위험한 일도 없습니다. 한국이란 공동체의 배가 안전 항해 할 수 있도록 각별히 다양성의 일치에 유념하며 기도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사도행전의 열두 사도의 리더십이 빛납니다. 이런 지혜로운 처방은 순전히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식탁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사도들은 참으로 지혜롭게, 분별력의 지혜를 발휘하여 신속하게 우선 순위를 확실히 하고 역할 분담으로 공동체의 분열의 위기를 극복하여 일치를 이룹니다. 마침내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나 예루살렘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사제들의 큰 무리도 믿음을 받아들였다니 이제 탄탄대로의 인생항해 여정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입니다. 여전히 계속될 어려움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 인생항해 여정에 결정적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의 경우 요셉 수도원에서 형제들과 더불어 35년간 인생 항해 여정중 평생, 하루하루, 날마다, 한결같은 미사와 강론을 통한 주님의 은총이 결정적 도움이 됐음을 은혜로이 깨닫습니다.

 

"주님, 우리가 당신께 바랐던 그대로,

 어여삐 여기심을 우리 위에 내리소서."(시편33,22).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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