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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세기(26) 믿음의 완성(完成)을 향하여 (창세1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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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3-04-23 조회수449 추천수2 반대(0) 신고

 

 

창세기(26)   2023. 4. 23.

 

믿음의 완성(完成)을 향하여

 

(창세15,1-21)

1 이런 일들이 있은 뒤, 주님의 말씀이 환시 중에 아브람에게 내렸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 2 그러자 아브람이 아뢰었다. “주 하느님,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는 자식 없이 살아가는 몸, 제 집안의 상속자는 다마스쿠스 사람 엘리에제르가 될 것입니다.” 3 아브람이 다시 아뢰었다. “저를 보십시오. 당신께서 자식을 주지 않으셔서, 제 집의 종이 저를 상속하게 되었습니다.”

4 그러자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 “그가 너를 상속하지 못할 것이다. 네 몸에서 나온 아이가 너를 상속할 것이다.” 5 그러고는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6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7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님이다. 이 땅을 너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려고, 너를 칼데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이다.” 8 아브람이 주 하느님, 제가 그것을 차지 하리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9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 그리고 산비둘기 한 마리와 어린 집비둘기 한 마리를 나에게 가져오너라.”

10 그는 이 모든 것을 주님께 가져와서 반으로 잘라, 잘린 반쪽들을 마주 보게 차려 놓았다. 그러나 날짐승들은 자르지 않았다. 11 맹금들이 죽은 짐승들 위로 날아들자, 아브람은 그것들을 쫓아냈다. 12 해 질 무렵, 아브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는데, 공포와 짙은 암흑이 그를 휩쌌다. 13 그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잘 알아 두어라. 너의 후손은 남의 나라에서 나그네살이하며 사백 년 동안 그들의 종살이를 하고 학대를 받을 것이다. 14 그러나 네 후손이 종이 되어 섬길 민족을 나는 심판하겠다. 그런 다음, 네 후손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올 것이다.

15 너는 평화로이 네 조상들에게로 갈 것이다. 너는 장수를 누리고 무덤에 묻힐 것이다. 16 그리고 그들은 사 대째가 되어서야 여기로 돌아올 것이다. 아모리족의 죄악이 아직 다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17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갔다. 18 그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 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 19 이는 카인족, 크나즈족, 카드몬족, 20 히타이트족, 프리즈족, 라파족, 21 아모리족, 가나안족, 기르가스족, 그리고 여부스족이 살고 있는 땅이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는데,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믿음의 완성품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은 육신의 복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근이 드니까 약속의 땅을 버리고 애굽에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애굽에서 파라오에게 책망 듣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창세기13장에서 먼저 물질의 풍성함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이 모든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셔도 땅 밟기를 하지 않고 하느님과 교제하는 자리를 택합니다. 그런데 롯은 하느님보다 육신의 복을 더 우선시했지만 결과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구하러 집에서 기르고 훈련한 사람 318명을 데리고 갑니다. 거기서 아브라함은 큰 승리를 거두고 많은 승전(勝戰)물을 거둡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자신의 힘으로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멜기세덱이 십일조를 바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대신 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승전물들은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십일조를 드립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이 세상의 모든 주권이 하느님께 있음을 알게 되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믿음에 있어서 처음에는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복 때문에 하느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나중에 육신의 복보다 하느님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또 아브라함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힘으로 승리한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함께 하셔서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절대 완성품은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미완성품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공사 중입니다. 우리는 모두 만들어 가는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절대 내 믿음이 부족하다고 절대 실망하지 말며 또 내 믿음이 이제 다 완성이 되었다고도 하지 말고 항상 우리의 믿음이 완성을 향해서 나아갑시다. 오늘 본문에도 아브라함의 믿음이 완성을 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믿음이 완성을 향해서 나가기 위해 두려움을 극복해야합니다.

 

(창세15,1) 1 이런 일들이 있은 뒤, 주님의 말씀이 환시 중에 아브람에게 내렸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

 

여기서 이후에란 아브라함이 세상 왕들과 싸움에서 승리한 후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친 후에 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이 후에 라는 말입니다. 이후에 아브라함에게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헤브론에서 하느님과 교제만 할 때는 몰랐는데, 전쟁을 치러보니까 이 세상은 한 순간도 끊임없는 치열한 전쟁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전쟁에서 자신의 힘으로 승리한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북쪽의 그돌라오멜 왕을 이긴 것은 전적인 하느님의 도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현실적으로는 아브라함이 그 왕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집에서 기르고 훈련한 사람이 있었지만 알고 보니 그들 때문에 이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아직 자녀가 없습니다. 당시 자녀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가장 큰 무기였습니다(시편127,4).

그런데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무기가 될 만한 자녀가 한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아브라함은 미래에 북방 왕이 다시 처 들어와 보복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큰 민족 많은 자손을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한 자녀도 있을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아브라함은 과연 하느님의 말씀이 내 삶 가운데서 이루어질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창세15,2-3) 2 그러자 아브람이 아뢰었다. “주 하느님,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는 자식 없이 살아가는 몸, 제 집안의 상속자는 다마스쿠스 사람 엘리에제르가 될 것입니다.” 3 아브람이 다시 아뢰었다. “저를 보십시오. 당신께서 자식을 주지 않으셔서, 제 집의 종이 저를 상속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두려움 가운데 있으니까 하느님 앞에서 자신에게 없는 것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라고 합니다.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자신의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종이 엘리에젤을 자녀로 삼아서 상속자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하느님께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두려움이 있으면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것보다 내게 지금 당장 주지 아니하신 것만 봅니다. 그래서 하느님 지금 내게 이것도 없고 이것도 없습니다. 하면서 하느님 내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두려움이 있으면 우리가 하느님의 방법보다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세15,1) 1 이런 일들이 있은 뒤, 주님의 말씀이 환시 중에 아브람에게 내렸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

 

하느님은 두려워하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네 방패란 앞에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의 방패가 되어주셔서 그돌라오멜의 손에서 그를 지켜주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지극히 큰 상급이라는 말도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대신하여 싸워주심으로 아브라함에게 큰 상급 즉 승전물을 주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과거에 너의 방패였던 것처럼 현재에도 너의 방패고 미래에도 너의 방패가 되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과거에 너의 상급이었던 것처럼 현재에도 너의 상급이 되어주며, 미래에도 너의 상급이 되어주겠다는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방패가 되면 너의 상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우리를 사탄의 정죄에서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정죄합니다. 너는 죄인이라고 합니다. 성령하느님이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그래서 성령하느님을 보혜사(保惠師)라고 했을 때 보혜사의 가장 중요한 뜻은 변호사(辯護士)입니다.

 

(로마8,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느님은 우리를 이 세상의 모든 재앙에서 지금도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시편91,4-7) 4 당신 깃으로 너를 덮으시어 네가 그분 날개 밑으로 피신하리라. 그분의 진실은 큰 방패와 갑옷이라네. 5 너는 무서워하지 않으리라, 밤의 공포도 낮에 날아드는 화살도 6 어둠 속에 돌아다니는 흑사병도 한낮에 창궐하는 괴질도. 7 네 곁에서 천 명이, 네 오른쪽에서 만 명이 쓰러져도 너에게는 닥쳐오지 않으리라.

 

이 말씀은 우리는 절대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도 잘못하면 코로나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에 걸리더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재앙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방패와 손 방패가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창세15,4) 4 그러자 주님의 말씀이 그에게 내렸다. “그가 너를 상속하지 못할 것이다. 네 몸에서 나온 아이가 너를 상속할 것이다.”

 

하느님은 두려워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아브라함에게 하느님의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종 엘리에젤이 상속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네 몸에서 날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종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이 더 쉽습니다. 또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이 100세 때 또 불임여성인 사라이를 통해서 난 이사악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려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앞으로 시간적으로 15년이 더 걸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인간이 생각할 때 전혀 불가능한 방법을 통해서 하느님의 일을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창세15,5) 5 그러고는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에서 유()를 만드신 하느님께서 인간적인 힘으로는 한 자녀도 나올 수 없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자녀가 있게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

 

(창세15,6) 6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도무지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라도 하느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 로마서에서는~

 

(로마4,17-18) 17 그것은 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었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믿는 분, 곧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8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완성을 해서 나가기 위해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대신 싸워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세상과 사탄보다 문제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전혀 불가능한 일도 능()히 할 수 있으십니다.

오직 의인(義人)은 믿음으로 산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이런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하고 하셨습니다.

 

둘째, 우리의 믿음이 완성을 향해서 나가기 위해 우리의 신실함이 아니라 하느님의 신실함을 의지해야합니다.

 

(창세15,7) 7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주님이다. 이 땅을 너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려고, 너를 칼데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이다.”

 

하느님께서는 여기서 또 이 가나안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2장과 13장에서도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땅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아브라함이 ~

 

(창세15,8-10) 8 아브람이 주 하느님, 제가 그것을 차지하리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9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삼 년 된 암송아지 한 마리와 삼 년 된 암염소 한 마리와 삼 년 된 숫양 한 마리, 그리고 산비둘기 한 마리와 어린 집비둘기 한 마리를 나에게 가져오너라.” 10 그는 이 모든 것을 주님께 가져와서 반으로 잘라, 잘린 반쪽들을 마주 보게 차려 놓았다. 그러나 날짐승들은 자르지 않았다.

 

이것은 고대근동에서 계약을 체결할 때 모습입니다. 고대근동에서 계약을 체결할 때 먼저 짐승을 잡아서 죽여서 쪼갭니다. 그리고 약속의 두 당사자가 쪼갠 고기사이로 같이 지나갑니다. 이것은 만일 동등한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서로에 대한 약속을 어기면 쪼갠 고기처럼 죽게 될 것이라는 의식입니다.

그런데 만일 주인과 종이 서로 약속을 하면 종이 쪼갠 고기사이로 지나가게 합니다. 그래서 만일 종이 약속을 어기면 종이 쪼갠 고기처럼 죽게 된다는 의식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과 아브라함은 동등한 관계가 아니고 주인과 종의 관계입니다. 그러면 누가 쪼갠 고기사이로 지나가야합니까? 아브라함이 지나가야합니다. 그런데 ~

 

(창세15,17) 17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갔다.

 

주인과 종의 관계라면 아브라함이 지나가야하는데, 하느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횃불이 쪼갠 고기사이로 지나갑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우리를 대신하여 종의 자리까지 내려오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만일 하느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배반하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쪼갠 고기처럼 피 흘려 죽으시더라도 우리에게 대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느님의 신실하심으로 우리의 믿음이 완성을 향해서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열심으로 우리의 믿음이 완성을 향해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에게 너의 열심이 아니라 나의 열심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의 헌신이 아니라 너를 향한 나의 헌신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통해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내가 네 삶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입니다. 내가 절대 너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네가 낙심하여 쓰러질지라도 나는 너를 끝까지 붙들어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무엇보다 내가 죽기까지 너를 사랑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너의 믿음을 더 완성시켜 나가겠다는 약속입니다.

정말 힘이들고 인생에 어려운 순간마다 주님 약속을 다시 마음속에 새겨 봅시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하느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약속에 신실하신 그 하느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함으로 믿음을 더 완성시켜 나가는 모든 성도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째, 우리의 믿음이 완성을 향해서 나가기 위해서 고난이 있어야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나안땅을 주겠다고 말씀하시고, 그리고 그 다음에 ~

 

(창세15,13-16) 13 그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잘 알아 두어라. 너의 후손은 남의 나라에서 나그네살이하며 사백 년 동안 그들의 종살이를 하고 학대를 받을 것이다. 14 그러나 네 후손이 종이 되어 섬길 민족을 나는 심판하겠다. 그런 다음, 네 후손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올 것이다. 15 너는 평화로이 네 조상들에게로 갈 것이다. 너는 장수를 누리고 무덤에 묻힐 것이다. 16 그리고 그들은 사 대째가 되어서야 여기로 돌아올 것이다. 아모리족의 죄악이 아직 다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가나안땅을 아브라함에게 네 후손이 애굽으로 갔다가 거기서 괴로움을 당하다가 400년 만에 다시 이 가나안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가나안땅을 주시려면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이 가나안땅에서 아무 일없이 400년을 있게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자연스럽게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가나안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기근으로 애굽으로 내려가게 하십니다.

거기서 한 두 해도 아니고 430년을 있게 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서도 편안하게 있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을 당하게 하십니다. 그러다가 430년 만에 돌아오게 하십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430년 동안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손에 잡히는 것도 없었습니다. 애굽에 있는 중간세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내 아버지 때 할아버지 때도 그들에게는 가나안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할 그 어떤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내 자녀와 손자 때에도 가나안땅을 차지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430년의 끝에서는 애굽 왕 파라오를 통해서 자녀를 잃어버리는 극심한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고난을 주십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가지만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고난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완성시키시기 위함입니다.

 

(탈출1,7) 7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식을 많이 낳고 늘어만 갔다. 그들은(고난가운데) 번성하고 더욱더 강해졌다. 그리하여 그 땅이 이스라엘 자손들로 가득 찼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늘의 별과 같은 자녀를 수많은 자녀를 애굽에서 극심한 고난이 있을 때 만드십니다. 그래서 출애굽기112절에서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탈출1,20) 19 산파들이 파라오에게 대답하였다. “히브리 여자들은 이집트 여자들과는 달리 기운이 좋아, 산파가 가기도 전에 아기를 낳아 버립니다.”

 

그래서 고난은 이스라엘백성들로 더 번성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셨습니다. 고난은 절대 우리로 망하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고난은 우리를 더 번성하게 하시고 우리로 더 강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고난가운데 더 강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께 부르짖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탈출2,23) 23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이집트 임금이 죽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고역에 짓눌려 탄식하며 부르짖었다. 그러자 고역에 짓눌려 도움을 청하는 그들의 소리가 하느님께 올라갔다.

기도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탈출2,24-25) 24 하느님께서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맺으신 당신의 계약을 기억하셨다. 25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살펴보시고 그 처지를 알게 되셨다.

 

여기서 기억하셨다.” 란 잊어버리고 잊다가 기도할 때 기억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 대한 약속을 계속 기억하셨다가 부르짖을 때 기억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은 430년 동안 한순간도 하느님의 약속을 잊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내 위에 아버지 할아버지 때에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내 아들 손주 때까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하느님은 한 순간도 우리를 잊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성경에서 하느님의 약속은 기도(祈禱)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성령의 약속이 있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어주지 아니하십니다. 고난가운데서 하느님의 약속을 붙들고 더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을 허락하심은 우리로 죄 지을 틈을 주지 않기 위함입니다.

 

(창세15,16) 16 그리고 그들은 사 대째가 되어서야 여기로 돌아올 것이다. 아모리족의 죄악이 아직 다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고난은 하느님의 더 크신 능력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당시 애굽은 세계 최대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애굽보다 더 강하고 크신 필로 그들 물리치시고 이기셨습니다.

 

(창세15,14) 14 그러나 네 후손이 종이 되어 섬길 민족을 나는 심판하겠다. 그런 다음, 네 후손은 많은 재물을 가지고 나올 것이다.

 

고난가운데서 한 순간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잊지 않고 계십니다. 쇠는 더 연단을 받을수록 단단해지는 것처럼 믿음도 고난가운데서 더 단단해집니다. 또 고난은 우리로 더 기도와 말씀에만 집중하게 하십니다.

고난가운데 하느님께 부르짖고 기도함으로 하느님의 약속을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시기를 바라며 그래서 고난을 통해서 믿음이 완성을 향해 나가는 모든 성도들이 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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