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생명의 빵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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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3-04-26 | 조회수622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생명의 빵 -“예수님은 영원한 도반이시다”-
“온 땅은 춤추며 하느님을 기리라. 그 이름의 영광을 노래하여라. 빛나는 찬미를 주님께 드려라.”(시편66,1-2)
논어 맨처음에 나오는 군자삼락(君子三樂)은 언제 읽어도 공감이 갑니다.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영원한 도반으로 둔 우리 구도자들이자 수행자들에게도 그대로 들어맞는 말씀입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친구가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사람들이 나를 몰라주더라도 화를 내지 않으면 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찾는 끊임없는 지칠줄 모르는 갈망이 진리를 공부하게 하고 도반을 찾게 하고 마음의 평화에 이르게 함을 깨닫습니다. 어제 수도원을 찾은 여러 도반들과의 진실하고 소박한 만남도 참 반갑고 기뻤습니다. 늘 흘러야 맑은 물이든 늘 흘러야 맑은 삶입니다. 늘 한결같이 주님을 목말라, 배고파 찾을 때 맑은 삶, 깨어 있는 삶입니다.
“밖으로는 산 천년만년 주님을 기다리는 산 안으로는 강 천년만년 주님 향해 흐르는 강”
참으로 주님을 찾는 이들은 이런 ‘산(山)과 강(江)’의 영성을 삽니다. 생명의 빵이신 주님만이 우리의 근원적 목마름과 배고픔을 해결해 주기 때문에 끊임없이 기다리는 주님이요 끊임없이 주님 향해 흐르는 우리의 삶입니다.
“목말라 눈떴고, 눈뜨면 목말랐다 아픔에 눈떴고, 눈뜨면 아팠다”
지금도 여전히 새벽마다 일어나 강론을 쓰게 하는 주님께 대한 목마름이요 아픔입니다. 생명의 빵이자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만이 영혼의 갈망을, 영혼의 아픔을 해결해 주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생각나는 지금도 여전히 애송하는 7-8월에 배밭 곳곳에 피어나는 야생초 “메꽃”에 대한 무려26년전 자작시입니다.
“이 가지 저 가지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하늘 가는 여정의 다리로 삼아 분홍색 소박하게 하늘 사랑 꽃피어내며 끊임없이 한결같이 하늘로 하늘로 오르는 메꽃들!”-1997.8.21
사실 사람 마음 깊이에는 누구나 이런 하늘이신 주님을 찾는 끝없는 갈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주님의 집인 수도원을 찾습니다. 바로 이런 영혼의 갈망을 충족시켜주는 요한복음의 생명의 빵이자 영원한 생명이요 영원한 도반이신 예수님의 초대는 늘 들어도 반갑고 기쁘고 고맙습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과의 만남만이 우리 영혼의 근원적 배고픔과 목마름을 일거에 해결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생명의 빵 예수님을 모시는 우리들입니다. 한 두 번의 만남이 아니라 매일 평생 끊임없이 찾아 만나야 하는 생명의 빵, 영원한 도반이신 예수님입니다. 이어지는 복음 말씀도 참 은혜롭습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 왔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의 정체와 예수님의 정체가 환히 드러납니다. 결코 우연한 우리 존재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보내 주신 아버지의 선물들인 우리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보내 주신 아버지의 선물들인 우리를 예수님은 결코 물리치지 않을 것이며 다음 대목에서 그분의 결의는 더욱 빛납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날에 그들을 살릴 것이다.”
도대체 이런 예수님이 아닌 누구가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의 근원적 배고픔과 목마름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을런지요. 그리하여 살아있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한결같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의 빵이자 영원한 도반이신 예수님과의 우정을 날로 깊이하는 우리들이요 바로 이것이 우리 영적 삶의 모두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스테파노의 순교에 이어지는 박해로 들불처럼 번지는 말씀의 불길이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임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장차 바오로 사도로 변할 섭리의 인물 사울이 언뜻 눈에 띕니다. 마치 주님 향한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바싹 마른 영혼들이 살아 있는 말씀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자 활활 타오르는 분위기입니다. 말그대로 사랑의 불길, 생명의 불길입니다. 박해로 흩어진 사람들은 곳곳에 말씀을 전하였고 군계일학(群鷄一鶴) 필리포스의 활약이 눈부십니다.
필리포스가 그리스도를 선포하자 아버지께서 보내신 사람들은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생명의 말씀을 듣습니다. 참으로 생명의 빵이신 주님과의 만남으로 본래의 모습으로 치유 회복된 모습이 흡사 기쁨으로 활짝 피어난 파스카의 꽃들 같은 다음 장면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에게 붙어 있던 더러운 영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불구자가 나았다. 그리하여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다.’
얼마나 신바람 나는 장면인지요! 더러운 영들 가득한 혼란한 사회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소비주의, 중독, 물질주의, 금전만능주의, 극심한 빈부 격차, 온갖 질병들, 생존경쟁, 탐욕, 두려움, 질투, 이념갈등, 곳곳에서의 분쟁과 전쟁등 더러운 영들이 발호하는 시대 같습니다. 이 모두가 인간 무지의 죄악에서 기인함을 봅니다.
제대로 미치면 성인들인데 잘못 중독되어 미쳐 폐인들, 괴물들 가득한 시대 같습니다. 이 모두가 인간 무지의 죄악에서, 주님을 잊는 업보에서 기인함을 봅니다. 이 모두에 대한 답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과의 만남뿐입니다. 우리 영혼의 근원적 배고픔과 목마름을 충족시켜 주실 분은 죽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뿐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온 세상이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을 노래하게 하소서. 주님 이름을 노래하게 하소서.”(시편66,4).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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