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3주간 수요일] 구약이 신약으로 열매 맺지 못하면 죽음이다. (요한6,35-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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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3-04-26 | 조회수623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부활 제3주간 수요일]
구약이 신약으로 열매 맺지 못하면 죽음이다.
복음(요한6,35-40) 33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34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3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36 그러나 내가 이미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 생명의 빵을 청하는 이들에게 ‘너희는 믿지 않는다.’ 하신다. 왜? 하늘의 생명의 빵(예수)으로 자신들의 뜻, 유익, 만족을 이루기 위해 청하기 때문이다. 생명의 물이신 예수님이시다.
*(요한4,13-15)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땅의)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 (하늘의)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15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 여자가 주님의 물(말씀)을 청하기는 하지만 그녀도 자신의 편안함, 만족을 위해 청하고 있다. 오늘 예수님을 따른다(믿는다)는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만족(뜻)을 위해 따르는 그 속셈(실체)을 보라 하신다. 하늘의 생명의 물, 곧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계시다. 그 말씀이 사람 안에서 새 창조로 살리시는 구원의 일을 하신다.(히브4,12 1데살1.23 필리2,13 에페3,20 참조) 땅의 물, 인간의 뜻(만족)을 위한 말, 곧 세상의 지혜(힘)의 논리가 참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믿지 못한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으로 내려오신, 그 예수님을 보고 믿는다 하면서도, 정작 구원의 지혜(진리)이신 새 계약의 그리스도로는 믿지 못하는 것이다. (1코린1,21-25 참조)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38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 믿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고 늘 하늘의 양식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이다.
다시 기억해 보자~ (요한3,16-17)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로마8,28-30)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새 창조, 구원)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 우리의 한 생애를 통해 모든 ‘희노애락’의 사건들을 통해 일하신다.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40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 = 아들을 보고, 보이는 예수님을 보이지 않는 창세 이전에 계셨던 그리스도로, 곧 하느님의뜻인 구원의 지혜, 힘, 진리로 깨닫고 보는(호라우)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믿고 의지하는 것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에 믿을 만한 것이 하나 더 추가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동안 믿고 의지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놓아지는 것을 말한다. 나를 만족하게 해주는 세상의 것들은 참 생명이신 예수님께 가는 길에 가로막는 장애물(障碍物)이 될 뿐이다. 사제께서~ ① “우리 삶에서 내가 죽어야하는 그 순간에, 죽으면 그 순간에는 죽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죽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 되는 일들이 일어난다. 내 한사람의 인내와 겸손함으로 공동체를 살리는 경우가 많음을 체험합니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요 죽는 것이 죽는 것이 아닙니다. 달리 말하면 ‘내가 나를 위해서 살고자하면 하느님께서 죽이시지만...... ② 내가 하느님 때문에 죽으면 하느님께서 나를 다시 살리신다는 것이다. 스테파노가 주님의 품에 안기는 최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었으면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실천하는 삶, 성체성사의 일상화(日常化)가 바로 우리를 이러한 모습으로 이끌어 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집니다.“ 하셨는데 앞①부분의 가르침이 너무 은혜롭다. 그러나 성체성사(聖體聖事)의 의미, 곧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십자가의 죽음, 그 피의 새 계약을 깨닫지 못하고 하는 성사생활이 일상화가 되면, 진실 된, 온전한 인내, 겸손, 자기 버림, 죽음이 나올 수 없다. 또한 하느님 때문에 죽을 수는 더더욱 없다. 그 생각 자체가 모순이다. 인간의 죽음이 하느님께 무슨 의미(유익)가 있다고.... (에제36,20-22 참조) 인본주의에서 나온 그릇된 생각이다. ‘그리스도교는 신본주의’다. 우리는 하느님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 곧 하늘의 생명을 얻기 위해 죽는 것이다.
새 계약의 예언(預言)~ (예레31,31) 31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성찬례(聖餐禮)에서~ (루가22,20) 20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성령(聖靈)의 증언(證言)~ (로마8,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단죄를 받을 일이 없습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그대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히브10,15-19.22) 15 성령께서도 우리에게 증언해 주시니,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그들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그들의 마음에 내 법(새 계약)을 넣어 주고 그들의 생각에 그 법(새 계약)을 새겨 주리라.” 17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 18 이러한 것들이 용서된 곳에는 더 이상 죄 때문에 바치는 예물이 필요 없습니다. 19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피 덕분에 성소(하늘)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22 그러니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 악에 물든 양심을 벗고 깨끗해졌으며, 우리의 몸은 맑은 물로 말끔히 씻겨졌습니다.(~아멘)
<노파심> 지금까지의 말씀을 모르고, 믿지 못하고 하는 고해성사에 충실하다 보면 율법(제사와 윤리), 십계명, 그 옛 계약에 묶여 “ 다 이루어졌다.” 하신 ‘그리스도의 대속, 피의 새 계약’이 거저 주시는 하늘의 용서, 거룩, 의로움에 대한 믿음이 자랄 수가 없다. 잃어버릴 수, 놓칠 수 있다는 말이다. 구약(제사)을 신약(혼인잔치)으로 열매 맺지 못하면 죽음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의 나라(옛 계약)가 아버지의 뜻(새 계약)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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