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26. 부활 제3주간 수요일.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오늘 <복음>은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를 듣고 호수 건너편까지 찾아온 군중들이 예수님께서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요한 6,34)하고 간청하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이는 “나는 생명의 빵이다.”라는 곧 “나는 ~이다”(εγω ειμι)라는 당신 자신에 대한 계시선언문입니다. 곧 당신 신비에 관한 말씀입니다. 당신 생명의 신비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러니 당신 몸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당신 신성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에 대해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말합니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이것은 당신 몸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빵은 내 몸이다.”라는 말씀은 한참 뒤에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생명의 빵”은 그분의 신성을 가리킵니다. ‘성찬의 빵’이 거기에 강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빵이 되듯, 이 신성은 말씀이신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빵”입니다.”
그러니 “말씀이신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빵”에 대한 신비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말씀의 빵’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셨을 때, 신명기(8,3)의 말씀을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 또 예언자 아모스는 말합니다.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것이 아니고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는 것이다.”(아모 8,11). 곧 당신 말씀이 ‘참 생명이요 참 양식’임을 드러내십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빵을 먹는 일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서 벌어집니다. 곧 ‘예수님께 와서 말씀을 듣고 믿는 이’ 안에서 실현되는 생명의 빵입니다. 이 “빵”(말씀)은 믿는 이의 생명을 참된 생명에로 변화시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요한 6,39-40)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고, 아들은 그 뜻을 실현하는데 전념하십니다. 곧 ‘당신께 와서 보고 믿는 이들’을 살리십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빵을 먹는 일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서 벌어지듯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 역시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에게서 벌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이 모든 일은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 진정 우리의 내적인 눈이 열려야 할입니다. 곧 ‘믿음’으로 열리는 눈 말입니다. 그 눈은 바로 믿음으로 보는 눈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내가 생명의 빵이다.”(요한 6,35)
주님!
부서져 먹히게 하소서!
부서져 먹히는 빵이 되고서야 양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먹혀 형제들 안에서 사라져버리게 하소서!
먹혀 사라지고서야 생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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