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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7 부활 제3주간 목요일...독서,복음(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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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쪽지 캡슐 작성일2023-04-27 조회수276 추천수2 반대(0) 신고

1독서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8,26-40
그 무렵 26 주님의 천사가 필리포스에게 말하였다.
일어나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거라.
그것은 외딴길이다.”
27 필리포스는 일어나 길을 가다가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왕 칸다케의 내시로서,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면서,
자기 수레에 앉아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

 

29 그때에 성령께서 필리포스에게,
가서 저 수레에 바싹 다가서라.” 하고 이르셨다.
30 필리포스가 달려가 그 사람이 이사야 예언서를 읽는 것을 듣고서,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러자 그는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서,
필리포스에게 올라와 자기 곁에 앉으라고 청하였다.

 

32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러하였다. “그는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갔다.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린양처럼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33 그는 굴욕 속에 권리를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제거되어 버렸으니 누가 그의 후손을 이야기하랴?”
34 내시가 필리포스에게 물었다. “청컨대 대답해 주십시오.
이것은 예언자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입니까?”

 

35 필리포스는 입을 열어 이 성경 말씀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그에게 전하였다.
36 이렇게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자 내시가 말하였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장애가 있겠습니까?”
(37)·38 그러고 나서 수레를 세우라고 명령하였다.
필리포스와 내시, 두 사람은 물로 내려갔다.
그리고 필리포스가 내시에게 세례를 주었다.

 

39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자 주님의 성령께서 필리포스를 잡아채듯 데려가셨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하였지만 기뻐하며 제 갈 길을 갔다.
40 필리포스는 아스돗에 나타나,
카이사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해

26

루카의 사화에서 천사들은 중재역할을 담당한다. 루카의 상징적 세계에서는 천사들이 인간에게 직접 말을 건넬 수 있다(23.9)

 

27

에티오피아는 이집트 남쪽과 겨계를 이루는 나라이고 구스의 땅으로 알려져 있다. 이 나라는 언제나 간다케라는 칭호로 불리는 여왕이 통치했다. 고대 근동이나 동양의 왕실에서는 흔히 거세시킨 남성에게 궁정의 중요한 일을 맡겼다. 신명 23.2에 따르면 고자가 된 사람은 집회에서 제외되었다. 이사 56,4-5에보면 내시들도 계약에 충실하면 하느님의 집에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약속이 있지만 쿰란의 메시아 공동체는 그들을 제외시켰다.

 

28

마차는 내시가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가고 있었을 것이다. 내시는 고대 관습대로 혼자 있을 때라도 소리를 내어 성서를 읽고 있었기 때문에 필립보가 그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29

여기서는 천사가 아니라 이 필립보에게 말을 건넨다. 그러나 천사나 둘다 하느님이 보내시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분의 직접적인 인도가 강조된다.

 

30

성서의 모든 본문은 여러 단계의 이해를 거쳐 파악될 수 있다. 랍비들은 본문을 해석하는 데 있어 자구적 의미와 응용적 의미와 신비적 의미를 구별했다. 그리스도교 전통도 비슷한 구분을 했는데, 본문을 자구적, 윤리적, 유비적으로 각각 구별하여 읽었다.

본 사건으로 돌아와서 보면, 필립보는 예언서들이 미래를 향한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확인 속에서 내시에게 질문을 던진다.

 

31

인도하다는 길을 따라 이끄는 것을 말한다. 이 원초적 의미가 칠십인역에서는 의로움이나 지혜로 인도한다는 의미로 발전된다. 쿰란 공동체에서 의로움의 교사는 성서를 올바로 해석하는 능력을 지닌 특별한 인물로 존경을 받았다.

 

32

이사야서에 나오는 이 고통받는 종의 노래는 신약성서에 매우 드물게 인용되지만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있어 예수의 정체를 밝히는 데 깊은 영향을 미쳤다.

 

33

굴욕은 루카가 좋아하는 낮춤/올림의 관계를 암시할 수도 있고 바오로가 메시아의 비움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겸손의 의미를 가리킬 수도 있다.

 

34

쿰란 공동체에서는 흔히 옛 본문을 당대의 인물들과 사건들에 적용시켜 해석했다. 내시의 인물도 예언자의 말을 예언자 자신이 아닌 다른 인물에 적용시켜 해석할 가능성을 전제한다.

 

35

입을 연다는 성서적 표현은 칠십인역에서 장중한 선언이나 예언자의 담화에 앞서 나온다. 여기서 필립보는 모세와 모든 예언자들의 기록에서부터 성경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그들에게 설명해 주시는예수와 비교된다.

 

39

주님의 영이 필립보를 잡아채 갔다는 표현은 루카의 시청각 교육을 드러낸다.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에서 기쁨은 이 세상에 드러난 하느님의 활동에 대한 특별한 반응이다. 루카복음에서 기쁨이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 경우는 유다와 헤로데의 기쁨뿐이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은 박해를 받은 후 기뻐하며 돌아가고 사마리아 지방의 도시에 복음이 전해졌을 때 그곳에는 기쁨이 넘쳤다.

 

40

아스돗은 해변가에 위치한 가자의 북쪽에 있다. 루카는 여기서도 한 가지 사건을 바탕으로 선교의 일반적인 성공을 언급한다. 이 선교는 성령에 의해 극적으로 유도된다. 필립보는 가이사리아까지 바닷가를 따라 선교활동을 벌이는데 바오로는 가이사리아에서 필립보를 만나게 될 것이다.

 

 

 

 

 

 

 

 

 

복음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44-5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45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46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50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해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는 문맥상 예수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그이임을 예시한다.

 

45

믿음은 하느님의 은총임을 뒷받침하는 성서 인용이다. “모든 이들은 보편적 특성을 드러내고자 삽입한 말이다. 이 인용구에 대한 짤막한 해설이 들어내고자 삽입한 말이다. 이 인용구에 대한 짤막한 해설이 곧바로 이어진다. 문맥상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는다란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배워서 그분의 가르침을 알고 받아들임을 함께 뜻한다.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으리라라는 원문의 표현은 이런 의미를 강하게 시사한다.

 

46

인용된 성서 말씀에 대한 설명이다. “아버지로부터 듣는다는 것은 직접 주의깊게 듣는 내적 경청을 가리킨다. “배운다는 것은 이런 경청으로 들은 것을 습득함을 뜻한다. 이런 뜯고 배우는 과정에서 아버지께서 이끄시는일이 이루어진다. , “아들예수에게로 오게 된다. 달리 말하자면 아들예수를 믿게 된다.

 

45절에 대한 오해가 없도록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그이곧 하느님과 함께 있었고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아들외에 그 누구도 하느님을 육안으로 보지는 않았다고 언급한다.

아들만이 실재로 아버지를보았다고 강조한 말로서 이 아들 안에서 아버지께서 당신을 보고또한 당신 말씀을 듣고 배우게 하신다는 것을 시사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완전한 일치를 이루기 때문에 아들의 말을 듣는 것은 곧 아버지의 말을 듣는 것이다.

 

49

49-51ㄴ절은 31절에 연결될 수 있고, 332-35절과 구조나 내용 면에서도 매우 흡사하다. , 이 두 대목은 31절에 연결되는 것으로서 서로 병행한다. 49절은 문맥상 50절을 더욱 명확하게 한다. ,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는 죽음생명으로 묘사된다. 27절과 흡사하다.

 

51

생명의 빵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에 관한 내용이 함께 요약된다. 그러나 이 언급은 살아 있는이란 말에 역점이 있다. 그래서 자기 안에 가지고 있는 생명을 계속 줄 수 있다는 의미를 강조한다.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분도출판사에서 옮김

 

솔직히 국회의원 선거는 어느 당의 누가 되든지 거기서 거기다. 아주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래서 나는 누구를 선택할까 궁리하다가 몸이 배가 많이 나와서 임산부같으니까 더불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당은 선택하지 않으려고 한다. 배가 더불어 나올 것 같으니까. 다이어트에 별로,...그런데 함께라는  뜻도있어요한다면?

 

그리고 요셉성인은 목수였으니 일명 노가다로 가정을 이끌어갔다. 그러니 예수님은 어떤 그러한 일을 했으리라고 여겨지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아버지께서 노동을 하셔도 어렸을 적부터 한번도 저에게 그러한 노동을 가르쳐준적이 없으시다. 동네 사람들이 수군대었다. 가난하기 때문에 대학을 나오기는 어렵고 또 일을 어렸을적부터 시키지 않으면 놈팽이가 된다고들 하였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같은 분들이 있으셨으니 예수님께서도 성경공부하도록 하시지 않았나 생각된다. 즉 목수일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정의당에서 많이 외치는 노가다의 사람들에 속하지 않았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요셉성인이 목수였으니 정의당을 찍던가 고기를 먹어도 대패삼겹살을 먹기로 하지만 예수님과 가까운 것은 어느 당이 좋을까 생각중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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