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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소 실현의 여정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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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4-30 조회수513 추천수5 반대(0) 신고

성소 실현의 여정

-착한 목자 예수님 닮기-

 

 

성소주일이면 떠오르는 말마디가 있습니다. 

 

“나는 불림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유다인 랍비 신비주의자 아브라함 여호수아 헷셀의 말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합리주의 철학자 데칼트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김춘수의 "꽃"이란 시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우리 모두가 하나하나 주님께 불림 받는 유일무이한 "파스카의 꽃"같은 귀한 존재입니다. 오늘은 4월의 마지막 날이자 부활 제4주일이자 성소주일입니다. 성소주일을 맞이하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담화문이 참 시의적절했습니다. “은총이며 사명인 성소”라는 주제하에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마태26,42)성구를 바탕으로 참 귀한 가르침을 주는 담화문 서두 일부를 인용합니다.

 

“오늘 우리는 60번째 성소주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성소주일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진행되던 1964년 성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하여 제정되었습니다. 하느님 섭리의 이 계획은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들이 개인으로서, 그리고 공동체로서, 오늘날 세상의 고통과 희망, 도전과 성과가운데 우리에게 저마다 주님께서 맡기신 부르심과 사명에 응답하도록 돕고자 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홀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교회의 친교 안에서, 우리 형제자매들과 함께, 교회 목자들의 인도 아래 수행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언제나 하느님의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은 예외없이 성소 실현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성소가 실현되는 여정은 그대로 하느님의 꿈이 실현되는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 실현되는 하느님의 꿈, 얼마나 멋집니까! 어떻게? 답은 단 하나, 착한 목자 예수님을 닮아가는 일입니다.

 

참 역설적인 진리가 착한 목자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참나의 성소가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마침 어제 피정자들과 나눈 강의 주제와도 일치합니다. 강의 주제는 “참으로 멋진 그리스도인의 삶-하루하루 날마다 끊임없이, 한결같이, 주님을 따르며 제 삶의 자리에서 사명과 책임을 다하는 삶-” 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소주일이자 착한목자 주일이기도 합니다. 착한 목자 주님은 우리가 안심하고 드나들 수 있는 생명의 문, 진리의 문, 생명의 문이기도 합니다. 착한 목자 예수님의 감동적인 복음 말씀입니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나는 문이다’ 얼마나 멋진 착한 목자 예수님의 신원인지요! 예수님께는 벽이 없이 온통 누구에게나 사면팔방 활짝 열린 문이라는 것입니다. 문이라고 다 문이 아니라 생명의 문, 구원의 문, 진리의 문은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벽이 변하여 문으로!”제가 자주 예로 들었던 참 좋아하는 말마디입니다. 

 

참으로 착한 목자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우리의 벽은 점차 넓은 생명의 문으로 사랑의 문, 지혜의 문으로 변해간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착한 목자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벽은 변하여 문이 되고, 부패인생은 발효인생이 되고, 태풍은 미풍이 되는 인생이 펼쳐진다고 참 많이 강조했습니다. 

 

착한 목자하니 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생각납니다. 이제는 신화가 되고 전설이 된 분이지만 추기경님에 관한 숱한 일화들은 언제 들어도 신선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하루를 마칠 때면 경당에서 기도를 바친후 그날 받은 편지에 대한 짧든 길든 꼭 친필의 답신을 써 보냈다는 일화입니다. 또 하나는 8백명이 넘는 교구 사제들의 영명축일을 맞이할 때 마다, 친히 축하전화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추기경님과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영적우정을 나눴던 어느 수녀님으로부터 들은 일화도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추기경님이 선종전 6개월, 사경을 헤매실 정도로 병석에 누워 지내실 때라 합니다. 어느날 한 자매님이 수녀님을 방문하여 자초지종 남편에 대한 곤경에 처한 상황을 이야기하며 살려 달라, 도와 달라 애걸복걸하더라는 것입니다.

 

모함으로 인해 억울하게 4년 선고를 받고 2년동안 수감중이었는데 건강이 악화되어 정신적으로 폐인이 될 위중한 상황인지라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그의 아내가 수녀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수녀님도 딱한 사정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어, 정말 염치불구하고 병석에 계신 추기경님께 탄원서를 부탁했다는 것입니다. 추기경님은 참으로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망연자실 물끄러미 바라보다 빙그레 웃으시더니 말씀하셨답니다.

 

“그래, 그러면 수녀가 내 마음을 담아 한 번 탄원서를 써봐!”

 

추기경님의 격려에 힘을 얻어 수녀님은 온갖 정성을 다해 탄원서를 썼고, 타이핑하여 드리니 추기경님은 정독하신후 간병인의 부축으로 힘겹게 일어나 떨리는 손으로 친히 추기경 이름을 쓰고 싸인한 후 직인을 달라하여 또 떨리는 손으로 직인을 찍어 수녀님께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어 수녀님은 곧장 직접 법무부 장관에게 전달했고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극적으로 8.15일 광복절 특사로 사면되어 출옥하게 되어 살아 났다는 일화이니 그 당사자에게 추기경님과 수녀님은 생명의 은인이 된 것입니다.

 

돌아가시면서 한목숨 살린 추기경님입니다. 얼마나 인간미 넘치는, 또 사랑과 지혜가 넘쳤던 위대한 어른 김수환 추기경이었는지요! 노인은 많은데 어른은 없고, 선생은 많은데 스승이 없는 시대라 세월이 흐를수록 그리워지는 추기경님입니다. 말그대로 예수님을 닮은 착한 목자 김수환 추기경님이셨습니다. 착한 목자 예수님을, 김수환 추기경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를 섬기로 오신 착한 목자 영성을 배우고 실천하여 날로 착한 목자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착한 목자 영성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종(servant)과 섬김(service)의 영성”입니다. 종들중의 종이라는 교황님이 아닙니까! 섬김의 권위, 섬김의 직무, 섬김의 리더십, 바로 섬김은 복음의 핵심적 덕목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라 정의되는 베네딕도회 수도공동체입니다.

 

어떻게 착한 목자 영성을 배우고 실천하여 문이신 주님을 닮아 갈 수 있을런지요! 답답한 벽이 아니라 활짝 열린 주님의 사랑과 지혜의 문, 생명의 문, 구원의 문, 하늘문이 되어 살 수 있을런지요? 셋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회개와 순종과 경청입니다.

 

첫째, 회개입니다.

평생 끊임없는 회개의 여정을 살라는 것입니다. 회개의 수행 역시 선택-훈련-습관의 경로를 밟기 마련입니다. 오늘 제1독서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에 감동하여 마음이 꿰질리듯 아파하는 사람들은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묻습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회개하십시오. 저마다 죄를 용서받으시고 성령을 받으십시오. 여러분은 이 타락한 세대로부터 자신을 구원하십시오.”

 

하느님 안 제자리로 돌아가 착한 목자 예수님과 함께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사명과 책임을 다하면서 복음 선포의 삶에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회개의 완성입니다. 역시 평생 과제입니다. 삶은 은총의 선물이자 평생 숙제입니다.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착한 목자 예수님을 닮아갈 때, 사랑과 지혜, 겸손의 삶이요, 성소의 실현이자 하느님 꿈의 실현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회개한 우리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대로 미사에 참여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었지만, 이제는 여러분 영혼의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신 그분께 돌아왔습니다.”

 

둘째, 순종입니다.

죽기까지,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한 주님이십니다. 삶은 순종입니다. 산다는 것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막연한 추상적인 순종이 아니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삶의 순종의 여정입니다. 성소 실현의 여정과 함께 가는 순종의 여정입니다. 영적 성숙의 잣대가 자발적 사랑의 순종입니다. 오늘의 제2독서에 나오는 베드로 사도의 말씀을 들어보세요. 주님은 고난과 순종을 통한 종과 섬김의 영성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면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여러분에게 본보기를 남겨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의 병이 나았습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중 순종하는 영혼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선사되는 치유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새삼 순종의 선택이요 순종의 훈련이요 순종의 습관화임을 깨닫습니다. 이래야 주님을 닮아 성소의 실현입니다.

 

셋째, 경청입니다.

경청은 영성의 기초입니다. 경청을 위한 침묵이요 경청할 때 저절로 따라오는 순종과 겸손입니다. 주님과 소통의 대화인 기도도, 형제들과의 원활한 소통의 대화에 공경하는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 듣는 경청은 영성생활의 필수적 기본요소입니다. 

 

하느님은 마치 침묵중에 모두를 듣는 “귀”자체여. 모두를 보는 “눈”자체라 생각됩니다. 참으로 잘 듣고 잘 보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요!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에서도 목자와 양들의 관계는 들음과 따름으로 요약됨을 봅니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참으로 경청하여 주님을 따를 때, 착한 목자 예수님을 닮고 성소의 실현, 하느님 꿈의 실현입니다. 역시 경청의 선택, 훈련, 습관이 중요합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은 하느님의 꿈이 실현되어 가는 성소 실현의 여정입니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부각되는 회개, 순종, 경청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성소의 실현에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23,1)“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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