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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성의 시냇물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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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5-08 조회수422 추천수7 반대(0) 신고

영성의 시냇물

-“한결같은 주님 사랑, 말씀 사랑”-

 

 

 

“주님, 저희가 아니라,

 오직 당신 이름에 영광을 돌리소서.”(시편115,1ㄱㄴ)

 

몇 예화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두분으로부터는 자녀들로부터 어버이날을 앞두고 저녁을 대접 받았다는 흐뭇한 소식도 들었고, 1인가구 독신으로 살아가는 어느 형제로부터는 ‘홀로(solo)’살아가는 분들을 만나 노후 삶에 대해 의논을 나눴다는 대비되는 이야기들도 들었습니다. 참 다양한 삶입니다. 

 

새벽 휴게실에 들렸다가 주간지 첫 페이지 “군사비 지출 1분에 56억원 ‘지구는 탄다’”라는 말마디에 내용을 읽어 봤고 그 일부를 인용합니다.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가 지난 4월24일 ’2022녀 세계 군사비 지출 현황’을 발표했다. 이에 맞춰 세계군축행동의 날 캠페인에 나선 35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가 지출한 군사비는 2021년 대비 3.7% 증가해 약 2980조 원이며, 한국의 군사비 지출 순위는 사상 처음으로 세계 9위를 기록했다. 참가 활동가들은 ‘1분에 56억원이 군사비로 사라지고 있으며, 한정된 예산과 자원의 우선순위를 군사비가 아닌 기후위기 대응과 평화구축에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가 쓸데없는 군사비 지출로 작년 2980조원이 사라져 갔다니, 정말 미쳐가는 인간 무지의 적나라한 현실입니다. 정말 영성의 시대가, 자비와 지혜의 시대가 도래했으면 좋겠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불암산 계곡물 소리를 들으니 참 상쾌했습니다. 강론쓰는 중에도 하느님의 생음악처럼 들리는 계곡물 소리가 마음에 평화를 줍니다. 어제 써놓고 나눴던 ‘영성의 시냇물’이라는 글을 나누고 싶습니다.

 

“바싹 말랐던

시내가 갑자기 내린 봄비에

 

맑게 깨어 

노래하며 흐르는 시내가 되었다

 

꼭 하늘 은총 비내려야

흐르는 시냇물인가

 

하늘 비 없어도

늘 끊임없이

 

맑게 깨어 노래하며 흐르는

영성의 시냇물이고 싶다”-2023.5.7.

 

어제는 시냇물 소리가 좋아 불암동 버스 정류장까지 동요를 부르며 시냇물 맑게 흐르는 개천가를 두 번 걸었습니다. 즉시 영성의 시냇물 소리가 연상되는 여기 수도자들의 성무일도 기도 노래였습니다. 

 

평생, 날마다, 끊임없이, 한결같이 성전으로부터 세상 곳곳으로 울려 퍼져 나가는 찬양과 감사의 노래 기도 소리가 그대로 영성의 시냇물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어제 따라 와닿던 세 가사를 소개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도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어제 복음을 요약한 위 성구를 아치저녁 성무일도시 노래할 때는 얼마나 흥겹고 은혜롭던지요!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바꿀수는 없네, 이 세상 부귀영화와 권세도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의 크옵신 사랑이여.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명예도 버렸네.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바꿀수는 없네, 세상 어떤 것과도.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바꿀수는 없네, 이 세상 모든 영예와 행복도

 슬픔과 괴로움 밀려와도 영원히 주님만 의지하리.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명예도 버렸네.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바꿀수는 없네, 세상 어떤 것과도.”

 

요즘 계속되는 성체강복후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퇴장 성가가 비장미(悲壯美)와 더불어 마음을 숙연하게 합니다. 동병상련이라 유난히 우렁찬 수도자들의 성가소리가 그대로 지금도 들려오는 끊임없이, 한결같이, 맑게 노래하며 흐르는 불암산 계곡물 소리를 닮았습니다. 말 그대로 영성의 시냇물 소리를 상징합니다. 어울리지 않게 강론 쓰는 이 시간에 소쩍새 울음소리인지 노래소리인지 끊임없이 들려오네요.

 

“우리는 잠을 자도 주님과 함께, 꿈에도 당신만을 뵙게 하소서.

 언제나 한결같이 당신영광을, 새는날 밝아올제 찬미하리다.”

 

끝기도 찬미가때마다 마음에 와닿은 간절한 대목을 노래한후 잠자리에 들어 단잠을 자게 됩니다. 아, 이 모두가 주님 사랑, 말씀 사랑의 표현입니다. 한결같이, 끊임없이 주님을 사랑할 때, 말씀을 사랑할 때, 끊임없이, 한결같이 흐르는 영성의 시냇물에 참 맑고 향기로운, 멋지고 매력적인, 아름답고 행복한 삶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 이해가 확연해 집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그대로 공감하고 체험하는 진리입니다. 바로 이런 깨달음이 참행복의 원천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주저없이 예수님을 저의 절친이라 고백합니다. 다시 이어지는 말씀도 대동소이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 말씀을 지키면 하느님 아버지도 나를 사랑하시고 아버지와 아드님도 와서 나와 함께 사신다니 이보다 더 큰 행복도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의 빛나는 모범이 주님의 절친들이자 서로간에는 영적도반이 되는 제1독서 사도행전의 주님의 제자들인 바오로와 바르나바입니다. 

 

말그대로 백절불굴의 ‘복음의 전사들’인 바오로와 바르나바입니다. 리스트라에서 태생 앉은뱅이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음을 알고 바오로가 이자를 치유해주는 장면도 감동적입니다. 정말 명불허전(名不虛傳), 주님과 사랑으로 하나된 바오로였기에 가능한 치유기적입니다. 바오로을 통해 주님께서 치유해 주신 것입니다.

 

“두 발로 똑바로 일어서시오.”

 

정말 반듯한 자세는 영육의 건강에도 필수입니다. 똑바로 일어서고, 똑바로 바라보고, 똑바로 말하고, 똑바로 앉고, 똑바로 걷고, 똑바로 눕도록 훈련, 습관화하기 바랍니다. 제우스 신전의 무지한 사제가 이 주님의 두 제자를 제우스와 헤르메스로 여겨 모시려 하자 두 제자는 자기들의 옷을 찢으며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설교를 합니다. 참으로 두 제자는 명실공히 주님의 절친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 왜 이런 짓을 하십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헛된 것들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하려는 것입니다....그 분은 하늘에서 비와 열매 맺는 절길를 내려 주시고, 여러분을 양식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주셨습니다.”

 

이런 영적 현실에 참으로 무지한 탓에, 무지에 눈먼 탓에 1분에 군사비 지출로 56억원을 날려 보내니 지구는 속타고, 무엇보다 하느님은 얼마나 개탄스럽고 아프고 슬프고 답답하실까요! 창세기에서처럼 사람 만드신 것을 후회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회개와 더불어 무지의 병을 치유하시고 주님 사랑, 말씀 사랑에 전념하게 하십니다.

 

“너희는 받아라, 하느님의 축복을, 

 하늘 땅 만드신 당신의 축복을.

 하늘은 주님의 하늘이어도, 

 땅만은 사람들에게 주시었도다.”(시편115,15-16)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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