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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의 전사, 평화의 전사, 복음의 전사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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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5-13 조회수441 추천수3 반대(0) 신고

사랑의 전사, 평화의 전사, 복음의 전사

-무지(無知;ignorance)의 세상 안에서 주님의 제자들-

 

 

 

“온 세상아, 주님께 환성 올려라.

 기뻐하며 주님을 섬겨라. 

 환호하며 그분 앞에 나아가라.”(시편100,1-2)

 

어제 많이 잊고 지내던 ‘설렘’이란 말을 참으로 오랜만에 사용하고 참 기뻤습니다. 이젠 정말 어떤 환경에도 불구하고 ‘설렘의 수도자’로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을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 설레는 수도자로 말입니다. 수도자가 아니더라도 하느님만을 찾는 순수와 열정의 사람들인 구도자들이라면 이런 설렘의 사람이 되고 싶어할 것입니다. 참 좋은 자매와의 주고 받은 내용들입니다.

 

-“신부님께서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시고, 첫사랑의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하신다니 언제나 청년이신가봐요!”

“설렘의 수도자가 되려고 노력하지요.”

“이미 그러하신걸요!”

“설레다. ‘들떠서 두근거리다’ 뜻이네요.”

“설렘은 언제나 심장을 뛰게하고 새로운 기대를 하지요!”

“그래요. 5월 성모성월은 ‘설렘의 달’, 누구를 만나든 설레는 마음이기를 소망합니다.”

 

어제의 아름다웠던 순간도 잊지 못합니다. 피정중인 차분한 음성의 신심 깊어보이는 노수녀님이 면담고백성사를 청했습니다. 목소리가 고와 보속으로 제가 참 좋아하는 성가 244장 전부를 부르도록 부탁했고 저는 감상했습니다.

 

“성모성월이요 제일 좋은 시절, 사랑하올 어머니 찬미하오리다.

 오월 화창한 봄날 녹음 상쾌한데, 성모뵈옵는 기쁨 더욱 벅차오네”(2절)

 

들을 때 마다 마음 설레게 하는 곡에 가사의 내용들입니다. “이런 고백성사는 처음이네요!” 수녀님은 조용하고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떠났고 감미로웠던 분위기가 지금도 긴 향기의 여운으로 남아있습니다. 보속은 벌에 목적이 있는게 아니라 치유에 있음을 깨달으니 고백성사는 새삼 주님 사랑의 성사, 치유의 성사라 할 수 있겠습니다.

 

수도자들은 물론 믿는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참 역설로 가득한 세상을 살아갑니다. 하느님이 창조한 아름다운 사랑하는 세상인데 무지의 죄로, 어둠으로 가득한 세상이기도 합니다. 말씀과 사랑이 사람의 본질이라 하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무지한 욕망의 종이 되어 살아갑니다.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인데 세상은 곳곳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영적전쟁 치열한 최전방입니다. 참으로 착하게 살았는데 원인 불명의 희귀병들이나 뜻밖의 병들로 고통을 겪는 이들도 많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원망은 커녕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가는 환우들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바로 그 무지의 현실이 오늘 복음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도대체 주님 사랑 안에 머물며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랑의 공동체 제자들을 미워하는 세상이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또한 역사적 사실이고 지금도 일어나는 현실입니다. 예수님의 위로와 격려 말씀이 힘과 용기를 줍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뿐 아니라 내가 세상에서 너를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를 미워하는 것이다.”

 

새삼 주님을 믿는 이들의 신원은 파스카 예수님과 운명공동체의 신원임을 깨닫습니다. 어둠이요, 거짓이요, 죽음이요 악의 세상과 같아지기를 바라는 무지의 세상에, 빛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선을 추구하는 주님의 제자들은 몹시 불편한 존재들일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에 속화(俗化)되거나 동화(同化)되기는 커녕 세상을 정화(淨化)하고 성화(聖化)하는,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들에 대한 무지한 세상의 박해는 자연스런 현실이 됩니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그러나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어지는 다음 말씀이 이 모든 궁극의 원인은 하느님을 모르는 무지의 악에 기인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마음의 병인 하느님을 모르는 무지(ignorance)야 말로 모든 죄와 악과 병의 근원이 됩니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지에 대한 궁극의 유일한 답은 하느님뿐이요, 이런 하느님께 이르는 길이자 진리이자 생명이신 파스카의 예수님뿐임을 깨닫습니다. 무지의 어둠을 몰아내는 주님 말씀의 빛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전사들은 무지의 세상과의 영적전쟁은 필연입니다. 

 

“어떻게 영적승리의 삶을?”

 

더욱 가열차게 파스카 주님과의 일치로 완전무장하여 주님의 전사, 즉 복음의 전사, 사랑의 전사, 평화의 전사로 백절불굴의 영적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래서 앞서 ‘주님 사랑 안에 머물라’는,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주신 주님의 심모원려(深謀遠慮)가 빛나고 고맙습니다. 

 

참으로 성령의 인도따라 순리대로, 미풍을 태풍으로 바꾸지 말고, 또 태풍은 미풍으로 바꾸는 지혜롭고 겸손한 주님 평화의 전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좋은 본보기가 제1독서의 바오로 일행입니다. 그렇게 사이좋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뜻하지 않은 심한 다툼으로 서로 결별한 후, 바오로 일행은 제2차 선교 여정에 오릅니다. 

 

성인들에게도 이런 인간적인 부족한 면모가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겐 또 위로와 힘이 됩니다. 완전하여 성인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열렬하고 한결같은 사랑이 있어 성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자들은 좌절하지 않고 복음 선포에 전념하니 이 또한 장한 일입니다.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자 진로를 바꾸고, 또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자 또 진로를 바꾸게 되고, 어느 날 밤 환시를 통해 계시 받은 바오로가 그에 따르니, 그대로 성령의 인도따른 삶이요 마침내 아시아가 아닌 유럽이 복음 선포의 선교지가 됩니다. 참으로 갈수록 가열(加熱)차지는 백절불굴의 복음의 전사, 사랑의 전사, 평화의 전사 바오로 일행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주님의 전사, 복음 선포의 전사로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은 참으로 좋으시고, 

 그분 자애는 영원하시며, 

 그분의 진실은 대대에 이른다.”(시편100,5).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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