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6주간 금요일] 의미를 부여할 때 가치가 되고, 그 가치는 생명이 된다. (요한16,20-23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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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3-05-19 | 조회수288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부활 제6주간 금요일]
의미를 부여할 때 가치가 되고, 그 가치는 생명이 된다.
복음(요한16,20-23ㄱ)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 제자들의 애통, 근심이 기쁨으로 반전 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 말씀은 세상의 기쁨은 근심(謹審), 애통(哀慟)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기도 한 것이다.
21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 여자가 아이를 낳기 위해서는 해산의 고통과 진통의 시간을 거쳐야 하는 것은 진리다. 새로운 피조물, 새 사람, 새 생명, 곧 기쁨의 구원을 깨닫기 위해, 낳기 위해, 받기 위해서는 모든 피조물(여자)들이 해산의 고통, 진통의 시간을 거쳐야 하는 것이 진리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풍파가 이는 고통의 바다와 같은 곳이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고통과 진통의 시간, 사건들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은총(恩寵)들인 것이다. 그러나 나 혼자 겪어내라는 말씀이 아니다.(본 6장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하느님의 영이시며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사랑의 보호자로 함께 하시며, 함께 겪으시며, 이끄시며 이겨내게 해 주신다는 것이다. 곧 성부, 성자, 성령, 그 삼위의 하느님이 나와함께 겪어 내고 계신 것이다. 지키시며 이겨내게 해 주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고통과 진통의 시간은 반드시 기쁨이라는 열매, 결과를 맺게 되어있는 것이다. 세상도, 아무도 빼앗지 못할 그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라는 말씀이다.
22 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 약속하신대로 진리의 영,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모든 말씀을 깨닫고, 믿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23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 내 안에 성령께서 가르치시기 때문이다.
(1요한2,26-28) 26 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성령)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믿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 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28 그러니 이제 자녀 여러분,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의 재림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 ‘그릇되다’하신 세상의 죄(罪)와 의(義), 심판이 진리라 속이는 말이 아닌(요한16,8) ‘그분 안에 머무르시오’ 어제 공부했듯이 성령 하느님, 주님의 말씀, 그 진리 안에 나를 담그는 것이다.
(필리4.11-13) 11 내가 궁핍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12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13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 사도 바오로가 감옥에서 한 말이다. 진리이신 주님께서 성령으로 함께 하시니까 주님께서 허락하신 고난의 일이 원망스러운 것이 아니더라, 감옥도 견뎌지더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곧 해산의 고통과 진통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마냥 기쁘고 행복해야한다는 말이 아니다. 현실은 해산의 고통, 진통의 시간이다. 그러나 그 시간을 말씀의 힘, 성령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사랑의 힘, 말씀의 능력에 대한 희망으로 마음이 기뻐하고 행복한 것이다. 그랬을 때, 현실의 고통, 진통의 힘이 잦아지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먼저 십자가라는 고통, 진통을 겪어 내셨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께 ‘어떤 처지에서든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느님의 열심,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다.
(갈라5,22-23)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23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막는 법은 없습니다. = 성령이 맺으시는 열매들이다. 즉 성령께서 오셔서 성도의 삶속에 나타내시는 하느님의 영광은 이렇게 하느님의 속성과 성품에 관한 것을 말한다. 따라서 사랑이 나타나기 위해서 사랑할 수 없는 상황이 주어지는 것이고, 기쁨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 주어지게 되는 것이며, 평화가 드러나기 위해서는 평화로울 수 없는 현실이 주어질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오래 참음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오래 참아야 하는 일이 있어야 하고, 온유, 절제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인내의 현실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聖徒)는 성령이 오신 후, 곧 하느님의 사랑받는 이는 환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사도14,22) 22 그들은 제자들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고 계속 믿음에 충실하라고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1베드2,19-21) 19 불의하게 고난을 겪으면서도, 하느님을 생각하는 양심 때문에 그 괴로움을 참아 내면 그것이 바로 은총입니다. 20 잘못을 저질러 매를 맞을 때에는, 견디어 낸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명예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선을 행하는데도 겪게 되는 고난을 견디어 내면, 그것은 하느님에게서 받는 은총입니다. 21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면서,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여러분에게 본보기를 남겨 주셨습니다. = 우리의 고난, 시련의 사건들에 의미(하느님의 뜻, 선)를 부여하면 하늘의 영원한 기쁨, 생명의 가치가 되지만, 의미 없이 견디면 영원한 죽음, 절망이 뿐이다.
☨영원한 보호자이시며 진리이신 천주 성령님! 우리의 삶속에서 늘 함께 하시며 생명의 의미의 길, 진리로 이끄시니 감사합니다. 저희 모두의 마음을 불을 놓으시어오늘 말씀들이 믿음으로 자라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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