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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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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5-30 조회수289 추천수2 반대(0) 신고

버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버린다는 것은 비움과 같습니다. 무엇인가 비우고 그 안에 주님의 것으로 체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비움의 과정은 매일 매 시간 기도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수도회에 가서 보면 신부님과 수사님들이 매 시간 성무일도를 하기 위해서 성전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참 비장해 보입니다. 

 

아니 수도회만 그럴까요? 본당에 있는 신부님과 수녀님들도 참 비장해 보이세요. 사실 본당에 있는 신자분들이 어느 특정 계층의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속을 알 수 없고 믿음의 계층도 너무 다양합니다. 다양하다는 것이 어느 순간에 어떤 돌발 변수가 일어날지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 모인곳이 본당입니다. 

 

기도생활은 하는지 모르겠으나 그런데 너무 많은 분들이 와서 아무 생각없이 신부님과 수녀님들에게 말하는 것을 보면서 참 .. 그런 모든 것을 받아주시면서 그것을 극복하시는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너무 성스러워 보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분들이 살수 있는 것은 기도 생활입니다. 매 순간 매 시간 규칙적인 기도생활이 있기에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가능합니다.

 

성스럽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닮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고 ..사랑하는 과정속에서 가슴에 많이 상처를 받겠지만 그 안에 주님이 항상 같이 하십니다. 주님으로 부터 위로를 받습니다. 내어 놓으면 내어 놓을 수록 주님은 그 가련한 영혼을 혼자 내버려 놓지 않으십니다.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이고 그리고 그 궁극적인 목적을 체워주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손해 보는 것 이라고 생각하면 처음부터 접근 방법이 잘못되었을 것입니다. 비움과 나눔의 삶 속에 주님이 같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룸의 주어는 주님입니다. 그 안에 나는 쓰여지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항상 알고 살아야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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