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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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5-31 조회수366 추천수3 반대(0) 신고

5월 달이 어느덧 마지막입니다. 참 좋아하고 사랑하던 달이 5월입니다. 그런데 5월달에 저는 기사 자격증 공부한다고 몸이 부셔지게 공부를 했지만 그러나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저 공부하는데 도움주신 사장님과는 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졸지에 또 백수가 되었고 그런 내 위치에서 주변에 인사도 못드리고 인간 도리도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시험 끝나고 신부님 찾아가 뵌다고 했지만 모습이 좀 변변치 못해 다음을 기약하려 합니다. 변변치 못한  저의 모습을 생각하다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성모님의 모습을 보니....

 

성모님은 남자를 모르는 상태에서 하느님의 계획을 천사로부터 듣습니다. 

 

듣는 순간에 하느님께 온전히 맞기는 그런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처녀가 아이를 가지면 돌을 맞아 죽습니다. 그런 성모님의 처지로 하늘 아래에 어디에 몸을 의지할 곳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하느님의 계시로 주님을 잉태 하였다고 할지라고 세상 사람들은 그런 성모님의 모습을 온전히 받아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입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그러나 그분을 알아 보지 못하고 죽였지요. 

 

그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영이 없기에 그런 잘못을 저질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하느님이 영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고 있는 엘리사벳은 달랐습니다. 나이가 많이 드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모님을 주님의 어머니로 모시고 주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알고 모른다는 것은 주님의 영을 내 안에 머물고 있고 없음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고된 몸의 성모님을 환대를 합니다.  

 

이 두분의 만남과 만남속에서 나누어진 대화를 보면서 주님의 뜻이 어찌 이루어지는지 알수 있습니다. 빈궁한 처지의 성모님을 따뜻한 환대를 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신앙인의 인간관계도 이 두분의 대화 속에서도 알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은 인간을 자유롭게 해줍니다. 그것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기에 그렇습니다. 엘리사벳은 그 어렵고 힘든 성모님의 처지를 알고 따뜻한 환대를 해서 맞이합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3개월 동안 평온히 그곳에서 잘 있다고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진정 나에게도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성령을 받는 것이고 그분으로 인해서 내 눈이 떠 져서 주님을 알아 보는 것이고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신 세상에서 가난한 이에게 행한것이 나에게 행한 것이라 하신 말씀같이 빈궁한 이들을 돌볼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하고 또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같이 공유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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