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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닮의 여정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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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6-11 조회수330 추천수5 반대(0) 신고

 

예닮의 여정

-사랑의 성체성사의 은총-

 

 

 

어제 내린 많은 비로 우렁차게 흐르는 불암산 계곡 찬미의 물소리가 흡사 오늘 대축일을 경축하는듯 합니다.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절정인 오늘 대축일입니다. 24절까지 이르는 긴 성체송가가 생명의 빵으로 오시는 하느님 사랑의 결정적 표현인 주님의 성체에 얼마나 감격해 있는지 절절히 마음에 와닿습니다. 아름다운 마지막 23-24절을 인용합니다.

 

“23.참된음식 착한목자 주예수님 저희에게 크신자비 베푸소서.

 저희먹여 기르시고 생명의땅 이끄시어 영생행복 보이소서.

 

 24.전지전능 주예수님 이세상에 죽을인생 저세상에 들이시어,

 하늘시민 되게하고 주님밥상 함께앉는 상속자로 만드소서.”

 

얼마나 고마운 사랑의 참된음식 성체성사인지 구구절절 감동입니다. 그대로 성체성사 미사의 은총입니다. 아침성무일도때 흥겹게 부른 후렴도 긴 여운으로 남아있습니다.

 

“당신백성을 천사들의 음식으로 배불리셨고, 하늘의 빵을 그들에게 주셨도다. 알렐루야.”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로다. 이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리라.”

 

하늘의 빵, 살아있는 빵, 천사들의 양식인 성체를 모시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빵대신 밥으로 표현하면 우리에게 더 가까이 와닿는 기분입니다. “밥으로 오시는 하느님” 제가 사제서품 받던 해, 그러니까 34년전 41세 부제때  오늘 지금 여기서 1989년 5월28일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시 강론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앞부분만 다시 그대로 인용합니다.

 

-속담에서 말합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사흘 굶어 담 아니 넘을 놈 없다”, 밥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실감나게 하는 말들입니다. 코헬렛의 저자는 말합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수고한 보람으로 먹고 마시며 즐겁게 지낼 일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선물이다.”

 

아주 현실적인 적나라한 고백이지만 마음 한구석 허전해 짐은 어쩔수 없습니다. 과연 먹고 마시며 즐김으로 나의 영적 갈망을 채울 수 있을까요? 불교의 스님들은 식사전 오관게(五觀偈) 음식공양 기도문입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道業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먹고 마시는 행위는 공양이란 명칭으로 그 품격이 한결 높아지지만 그래도 미진한 느낌입니다. 삶의 감격과 기쁨이 미미하게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지하 시인의 고백을 들어봅시다.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입으로 들어 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밥이 하늘입니다.

아아 밥은

모두 서로 나눠 먹는 것.”

 

이 보다 성체성사의 핵심을 꿰뚫코 있는 글은 없다며 한국의 세계적 민중신학자 고故 안병무 박사가 극찬極讚했던 시입니다. 밥이 하늘이라는 폭탄과 같은 선언으로 기존 종교관념을 송두리째 뒤집어 버립니다. 먹고 마시는 행위는 숙명적인 인간한계를 드러내는 동물적 행위도, 육신을 지탱하는 약도 아닌 바로 하늘을, 하늘이신 주님을 모시는 거룩한 행위, 성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함께 나눠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상이 34년전 성체성혈 대축일 강론 서두 내용입니다. 그래서 농사農事와 더불어 식사食事요 성사聖事입니다. 성사중의 성사가 바로 성체성사입니다. 저는 성체성사를 네 측면에 걸쳐 묵상했습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에 사랑의 성체성사의 은총이 얼마나 절대적인지 깨닫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성체성사 미사를 사랑합니다.

 

첫째, 광야 여정중의 성사입니다.

신명기 모세의 말씀은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것을 기억하여라.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 너희 하느님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특히 강조되는 것이 기억하는 것이요 잊지 않는 것입니다. 여전히 광야 여정중인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하느님 말씀으로 격퇴하셨습니다. 똑같은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 성체와 말씀의 만나로 우리를 살리시고 천상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을 계속하게 하십니다. 광야 여정중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하는, 날로 예수님을 닮게 하는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성체성사에 참여할 때 마다 구원의 기억을 새롭게 하는 우리들이요 광야여정의 인도자이신 주님을 새롭게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야 옛 탈출기의 백성들처럼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기 때문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내용을 다시 나눕니다. 광야 인생 여정의 치열한 영적전쟁중 우리는 세 부류의 인생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인이냐, 괴물이냐, 폐인이냐 셋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정말 심신이, 영육이 온전한 사람 드문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너무 아프고 병든 사람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우선적인 것이 정신 건강, 영혼 건강, 마음 건강입니다. 참으로 성체성사의 은총으로 주님을 닮아갈 때는 누구나 건강한 정신의 성인이지만 주님을 떠나 세상 우상들에 종되어 살 때, 또 세상 맛에 중독되어 살 때는 여지없이 괴물이요 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영혼 건강의 성인이, 참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답은 단 하나 평생의 광야 여정중 성체성사를 선택하여 훈련하듯 자주 성체와 말씀의 만나를 모시는 것을 습관화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구원에 이르는 거룩한 선택, 거룩한 훈련, 거룩한 습관이 거룩한 미사참례입니다. 비록 미사를 못하더라도 날마다 기도와 말씀의 생명의 빵, 참 만나인 주님을 모시기 바랍니다. 이래야 영혼 건강의 성인이 되고 영적전쟁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일치의 성사입니다.

하느님이 원하는바 일치요 사탄이 원하는바 분열입니다. 죄중의 죄가 분열입니다. 참으로 분열의 치유도, 영적 건강도 주님과의 일치에서 가능합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아갈 때 공동체의 일치요 내 자신의 내적일치입니다. 서로 좋아서, 마음이 맞아서 사는 우리들이 아니라 바라보는 방향, 바라보는 중심, 주님이 같아야 일치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획일적인 일치가 아니라 다양성의 일치입니다. 참으로 자유롭게, 행복하게, 자유롭게, 풍요롭게 하는 주님과 일치의 삶입니다. 바로 이런 일치의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성체성사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나는 하늘에서 내려 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안에 머무른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옛 만나를 먹은 백성들은 모두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 온 이 성체의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삽니다. 성체의 힘, 예수님의 힘, 하느님의 힘으로 살게 하는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참으로 공동체의 일치, 참나의 내적일치의 비결도 단 하나 성체성사를 통한 주님과의 일치뿐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삶의 살아 있는 중심인 주님을 떠난 일치의 삶은 영원히 불가능합니다. 끊임없이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정화하시고 성화하시며, 날로 주님과 일치를 깊게하는, 주님을 닮아가게 하는 성체성사의 은총입니다.

 

셋째, 나눔의 성사입니다.

바로 성체성사를 생활화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정신 번쩍나게 합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빵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나누기 때문입니다.”

 

아, 모두가 한몸의 지체들인 형제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하나가 또 하나의 예수님이요 살아있는 성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상에서 서로 나누며 섬길 때 깊어지는 주님과의 일치, 공동체의 일치, 참나와의 일치라는 것입니다. 일상에서의 사랑의 나눔과 섬김의 삶을 통해 완성되는 성체성사임을 깨닫습니다.

 

넷째, 천상 영광을 앞당겨 사는 성사입니다.

교회는 옛 기도문에서 성찬의 신비에 대해 이렇게 환호합니다. “오 거룩한 잔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영하며, 그분의 수난을 기념하고, 은총으로 가득 차며, 다가올 영광의 보증을 받는도다.” 그러니 성찬례 미사시간은 “주님 파스카의 기념이고, 우리가 제대에서 받아 모시는 성체를 통하여 하늘의 온갖 은총과 축복을 가득히 받으므로 천상의 영광을, 천상의 맛을 미리 맛보는 시간”입니다(가톨릭교리서1402).

 

참으로 정의가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이 큰 희망에 대하여 성찬례보다 더 확실한 보증과 분명한 징표는 없습니다. 안티오키아 이냐시오는 “실로 이 파스카 신비인 미사가 거행될 때마다, 우리의 구원 활동이 이루어지고, 영생을 위한 약이요 죽지 않게 하는 해독제이며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하는 빵을 나누어 먹는다.”말합니다(가톨릭 교리서1405).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성가 177장도 이런 천상의 기쁨을 앞당겨 노래합니다. 만나를 먹은 백성들은 다 죽었을지라도 이 생명의 빵을 먹는 이들을 영원히 살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참 기쁨이 넘치는 그곳 내 주님 계신 곳

 내 모든 근심 슬픔을 다 위로하여 주시네.

 약속한 땅이여 오 아름다운 대지여

 영원히 머무를 곳 젖과 꿀이 흐르는 그곳

 이빵을 먹는 자는 그 복지 얻으리.

 아 영원한 생명의 빵은 내 주의 몸이라.”(177장 2절)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참 좋은 선물이 성체성사, 바로 이 거룩한 미사입니다. 말그대로 사랑의 성체성사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성체성사의 신비입니다. 바로 날마다의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은총이 우리 모두 날로 주님을 닮아가게 하고 참나의 성인이 되어 영원한 삶을 살게 합니다. 저절로 나오는 시편의 고백입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나이까

 그 종락 무엇이기에 따뜻이 돌보시나이까

 천사들 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어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주셨나이다."(시편8,5-6).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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