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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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6-16 | 조회수445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마태 11,25-30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입니다. 이 축일을 맞아 우리는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본받고 따르겠다고 다짐하게 되지요. 예수님의 마음은 당신을 이 세상에 파견하신 아버지 하느님의 마음을 닮았습니다.
제1독서인 신명기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마음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바로 ‘사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가 많고 잘나서가 아니라, 수가 적고 보잘 것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시는 무조건적인 사랑, 당신 백성과 맺으신 약속을 소중히 여기시고 끝까지 지키시는 신실한 사랑입니다. 내 새끼가 어디가서 무시당하고 핍박 받는건 견딜 수 없는게 부모 마음이듯, 당신 백성이 이집트인들에게 핍박받으며 고통받는 모습을 도저히 두고 보실 수 없어서 당신의 놀라운 권능으로 이끌어내시고 해방하시는 사랑입니다. 그런 마음을 몰라주고 불평과 불만을 일삼으며 배신과 우상 숭배로 당신 마음을 아프게 해드려도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는 한 없는 사랑입니다. 당신 마음에 드는 이를 먼저 선택하여 사랑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 조건없이 차별없이 사랑해주시는 공평하고 공정한 사랑입니다. 당신께 내어드린 사랑은 천배로 풍성하게 갚아주시면서 당신 마음을 아프게 한 미움과 배신은 그 한 사람을 직접 벌주는 걸로 끝내시는, “분노에는 더디시나 자애가 넘치시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아버지의 사랑을 ‘온유함’과 ‘겸손함’이라고 표현하십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는 것은 그저 화를 잘 내지 않고 성격이 온순한 정도를 넘어서, 타인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공감한다는 뜻입니다. 곧 이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우리의 슬픔과 아픔, 고독과 절망, 걱정과 두려움을 알아주시는 마음인 겁니다. 당신의 ‘형제’, ‘자매’인 우리가 고통 속에 신음하는걸 보시는게 마음 아파서, 어서 빨리 참된 위로와 안식을 주고자 하시는 연민의 마음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시는 방식은 우리가 세상에서 봐온 모습과는 다릅니다. 세상의 권력자는 굳이 어떤 문제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멀리 떨어져서 ‘이 사람의 고충을 해결해주라’고 지시만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멍에를 메시고 고통도 시련도 함께 받으시면서 그것을 이겨낼 방법을 알려주시고 힘과 용기를 주시지요.
그런 예수님이시기에 믿고 따를 수 있습니다. 길을 알려주시고 ‘니가 알아서 가라’고 등 떠미시는 무심한 분이 아니라, 우리 손을 잡고 함께 걸으시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주시는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기에 힘들고 어렵지만, 두렵고 떨리지만 그분과 함께 한 발 한 발 나아갈 수 있는 겁니다. 이처럼 예수님과 함께 걸으려면 생각 없이 맹목적으로, 성찰 없이 기계적으로 그분의 행동을 모방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배워라”라고 하신건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이 아니라 당신의 거룩한 마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 주님으로 모신다면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그 마음을 나도 지니기 위해 노력해야겠지요.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선택의 기로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고 먼저 묻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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