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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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7-04 | 조회수472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마태 8,23-27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오늘의 제1독서인 창세기를 보면 롯은 천사의 손에 이끌려 멸망이 임박한 소돔 성읍에서 도망치면서도, '산으로 달아나라'는 천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천사가 그에게 산으로 가라고 한 것은 '산'이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거룩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소돔 성읍에 내려지는 불의 심판이 하느님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그분 날개 밑으로 피신하면 멸망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는 천사의 제안을 거부합니다. 그 어떤 인간적이고 물질적인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황량한 산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심판의 불길에 휩쓸려 멸망하는 것보다, 먹을 게 없어 굶어죽는걸 더 걱정했던 겁니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다른 성읍으로 도망가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하느님께 완전히 자신을 의탁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세속적인 조건들에 의지하는 나약한 마음 때문입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하신 약속 때문에 그의 청을 들어 주셨지만, 그가 그런 약한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자꾸만 인간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에 기대느라 하느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지 못한다면 온 세상이 멸망하는 심판의 때에는 더 이상 피신할 데가 없을 겁니다.
그런 모습은 풍랑 속에서 예수님께 자신을 의탁하지 못하고, 그분께서 물리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자기들 앞에 닥친 고통과 시련을 해결해주시기를 바라는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약한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주님을 굳게 믿으며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온전히 따르는 순명을 하지 못한다면, 당장 눈 앞에 닥친 파도는 넘을 수 있을지 모르나, 쉼 없이 몰아치는 거센 폭풍우를 뚫고 ‘하느님 나라’라는 목적지에 도달하지는 못할 겁니다.
사실 제자들이 정말로 조심하고 잘 대비해야 할 풍랑은 그들의 몸을 뒤흔드는 물리적인 바람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온통 헤집어놓는 유혹의 바람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고 따르기보다 내 뜻과 이익을 먼저 챙기라고 속삭이는 욕심의 바람, 예수님처럼 남을 섬기는 삶보다 남에게 섬김 받는 삶에서 만족을 찾게 만드는 교만의 바람, 정의와 공정을 추구하기 보다 대충 현실에 안주하라고 바짓단을 붙드는 게으름과 나태함의 바람, 주님을 믿고 의지하기보다 세속적인 조건들을 갖춰야만 마음이 놓이는 걱정과 근심의 바람, 예수님께서는 그 바람을, 그리고 그 바람에 대책없이 휘둘리는 우리를 단호하게 꾸짖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인생이라는 배가 조금만 흔들려도 겁에 질리고 두려움에 떠는 우리들입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현존’의 믿음이, 그분께서는 나를 사랑하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이끄신다는 ‘섭리’의 믿음이 부족한 탓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굳게 믿으면, 그 믿음 안에서 그분과 함께 있기만 하면 인생이라는 배를 뒤흔드는 바람도 파도도 다 하느님 손바닥 안의 일임을 깨달을텐데 말이지요. 그런 점을 되새기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나를 바라봅시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있고 하느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그 믿음이지 풍랑이 치지 않는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우리가 인생이라는 배를 타고 있는 한 ‘무풍지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참된 평화는 환경이 아니라 주님을 믿고 의탁하는 마음가짐에서부터 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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