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3. 예수님 족보[3/3] / 활동 준비기[1] / 부스러기 복음[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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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3-07-05 | 조회수255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 예수님 족보[3/3](마태 13,1-12; 루카 3,23-38) / 공관복음[3]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시 최소한의 일부 사람들에게는 ‘다윗의 자손’으로 인정을 받으신 것 같다(마르 10,47-48; 11,10). 그래서 사도들의 설교에서(사도 2,29-32; 13,22-23), 그리고 매우 오래된 신앙 고백에서도 그분께서는 ‘다윗의 자손’으로 선포되신다(로마 1,3-4). 이렇게 마태오와 루카 복음서의 족보에는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이심을 보여 주는데, 그것이 예수님의 메시아 사상의 정당성의 바탕이 된다. 또 이 두 복음서는 예수님의 동정녀 잉태를 전하면서도, 둘 다 요셉 쪽의 족보를 들춘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족보에는 대부분 남자 중심으로만 작성되기 때문이다. 이 두 족보는 당시의 족보들이 자주 그러하듯, 실제 내용과는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상당히 인위적이다. 그 예로, 마태오는 아브라함에게서 예수님까지 유다 왕국의 임금들을 소개하는 반면에, 루카는 아담에게서 예수님까지 임금은 다윗만 포함시키면서 77대로 계산한다. 사실 루카는 예수님의 족보를 자기 복음서의 첫머리에 배치하는 마태오와 달리, 그분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말한 다음에야(1,35; 3,22), 비로소 그분의 인간적 혈통을 제시한다. 그리고 루카는 온 인류와의 관계를 강조하려고(사도 17,26.31) 믿음의 선조 아브라함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손수 빚으신 아담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면서 다윗과 스알티엘 사이에 임금은 하나도 거명하지 않고, 예언자들의 이름만 집어넣는다. 당시의 메시아사상을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서른 살쯤에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사람들은 그분을 요셉의 아들로 여겼다’(루카 3,23). 이렇게 루카만 예수님의 나이를 제시한다. 다윗도 서른 살에 임금이 되어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시작한다(2사무 5,4). 사실 초기 규정에 따르면 이스라엘에서는 남자의 경우 서른 살이 되어야 만남의 천막 등에서 작업을 할 수가 있었다(민수 4,3 참조). 같은 나이에 요셉은 이집트의 파라오를 섬겼고(창세 41,46), 다윗은 임금의 자리에 올랐고(2사무 5,4), 에제키엘 예언자는 소명을 받았다(에제 1,1). 그리고 ‘사람들은 그분을 요셉의 아들로 여겼다’라고 직접적인 표현인 ‘요셉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서른 살쯤에 활동을 시작하셨다.’ 라고 하지 않은 것을 두고서, 어쩌면 이는 예수님의 동정녀 잉태를 간접적으로 상기시키는 구실을 한다고 믿었다. 한편 마태오 복음 사가는 족보에서, 인위적으로 세대 수를 14대씩 나눈다. ‘그리하여 이 모든 세대의 수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가 십사 대이고, 다윗부터 바빌론 유배까지가 십사 대이며, 바빌론 유배부터 그리스도까지가 십사 대이다’(마태 1,17). 이 인위적인 ‘14×3’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제시되지만, 아직도 정확한 정설이 없는 형편이다. 확실한 것은 마태오 복음서 저자가 이러한 도식으로, 선택된 민족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 정점에 다다른다는 사실과, 하느님께서 그 역사를 당신께서 의도하신 목표로 이끄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에서의 예수님 족보에는 아브라함에서 예수님까지 직계 순으로 그 명단을 나열해보면,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포함해 41명이 소개된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셨기에, 실제 족보에 가담된 이는 요셉을 빼고 총 40명이 되는 셈이다. 이는 세 주기를 합쳐서 사십 세대다. 그렇다면 어째서 십사 대가 세 번 주기로 되풀이 되도록 했으며, 아브라함에서 다윗을 거쳐 예수님까지가 사십 세대일까? 이유는 율법과 예언서에 되풀이하여 예시되고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에도 곧잘 나오는 사십이라는 수의 의미를 부각시키려 했을 수도 있다 하겠다. 이 숫자의 상징성을 잘 드러내는 것이 소위 말하는 ‘단식’ 기간이다. 사실 예수님은 물론 모세, 엘리야 등이 이 40을 채웠다. 예수님의 이 오랜 기간 단식 후의 악마의 유혹은, 그야말로 인간 한계의 시험장이었다(마태 4,1-11). 그리고 추가적으로 예수님의 부활 후의 40일간의 기간은 영광의 기간이었다. 이렇게 신약의 시작이 ‘예수님 족보’로 시작하는 것은 하느님의 구원사적 뜻인 ‘부활’을 분명하게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예수님은 참으로 기이한 방법으로 죄 많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당신께서 만드신 단 하나뿐인 이 지구에 인간으로 오셨다.[계속] [참조] : 이어서 ‘4. 세례자 요한 출생 예고[1/2]’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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