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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삶의 성경의 렉시오 디비나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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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7-07 조회수667 추천수7 반대(0) 신고

내 삶의 성경의 렉시오 디비나

-버림, 떠남, 따름-

 

 

 

하루하루 살기로 했습니다. 하루하루가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입니다. 하루하루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미하며 살기로 했습니다.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기로 했습니다. 하루하루 사랑하며 살기로 했습니다. 하루하루 내 성경의 한쪽을 써가며 때로는 내 미완의 성경을 렉시오 디비나하며 살기로 했습니다. 하루가 한쪽, 내 나이 곱하기 365일 하면 내 삶의 성경 쪽수가 나옵니다.

 

저에겐 성경이 셋입니다. 하나는 신구약성경, 하나는 자연성경, 하나는 내 삶의 성경입니다. 그러니 렉시오 디비나 성독의 대상은 셋이 됩니다. 말그대로 렉시오 디비나의 확장이요 관상적 삶의 실현입니다. 그래서 요즘 제 독서의 대상은 아름답게 산 이들의 평전評傳입니다. 성경을 읽듯이, 삶의 스승에게 배우는 마음으로 아름답고 치열하게 산 이들의 평전을 읽습니다.

 

또 면담성사를 위해 수도원을 찾는 이들이 저에게는 살아 있는 성경책처럼 참으로 소중합니다. 성경을 렉시오 디비나 하듯 귀기울여 경청합니다. 때로 성경을 안 듯이, 보물을 안 듯이 감격에 벅차 안기도 합니다. 얼마전 그림 전시회를 갖는다는 옛 초등학교 교편시절 영적도반 교사의 소식을 듣고 반가웠습니다. 

 

70대 초반에도 영원한 현역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이번 전시회의 제목은 “사랑의 찬미”라 하니 이름도 멋집니다. 돌고래가 바다에서 솟구치며 뛰노는 찬미의 모습을 신비로운 아름다움으로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하루하루 아름답게 사랑의 찬미의 삶의 성경을 써가는 자매님입니다. 

 

요즘 창세기는 아브라함과 하느님과의 긴밀한 관계중에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의 삶자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성경이 된 것입니다. 하느님이 없는 아브라함 상상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중에 참 파란만장하게 펼쳐지는 삶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희로애락, 생노병사가 다 함축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의 생애도 종반에 치닫는 느낌입니다. 백이십칠 년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을 때 빈소에 들어가 사라의 죽음을 애도하며 슬피 우는 모습에서 아브라함의 인간적 면모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이어 동굴에 자기 아내 사라를 안장합니다. 참으로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다음 묘사가 아브라함이 얼마나 하느님 중심의 순종의 삶에 충실했는지 말그대로 순종의 축복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늙고 나이가 무척 많았다. 주님께서는 모든 일마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내려 주셨다.’

 

이런 노년의 삶이라면 얼마나 축복된 삶이겠는지요! 이젠 아브라함에게서 그의 아들 이사악으로 자연스럽게 초점이 이동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가 자연스럽습니다. 믿는 이들의 삶은 우연이 아닌 섭리의 실현임을 깨닫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복을 받는 후손들입니다. 아브라함의 뒤를 잇는 이사악이요 사라의 뒤를 잇는 며느리 레베카입니다.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세대교체입니다. 다음 묘사가 참 아름답습니다.

 

‘이사악은 레베카를 자기 어머니 사라의 천막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그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이사악은 레베카를 사랑하였다. 이로써 이사악은 어머니를 여읜 뒤에 위로를 받게 되었다.’

 

어제 성무일도시 새벽 독서의 기도중 2사무6,1-23 까지는 그대로 다윗의 치열한 삶이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그대로 다윗의 삶의 성경이야기입니다. 얼마나 하느님을 치열하게 사랑한 삶이었는지 그와 그의 아내 미칼에 대한 다음 대목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다윗은 아마포 에폿을 입고 온 힘을 다하여 주님 앞에서 춤을 추었다...다윗 임금이 주님 앞에서 뛰며 춤추는 것을 사울의 딸 미칼이 창문으로 내려다보고 비웃었다...그 뒤 사울의 딸 미칼에게는 죽는 날까지 아이가 없었다.’

 

오늘 복음에서는 세관에 앉아있던 마태오가 주님을 만남으로 마태오에게는 획기적 전환점이 됩니다. 이제부터 주님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 주님을 따름으로 새롭게 펼쳐지는 마태오 삶의 성경이야기입니다. 부질없는 질문이지만 마태오가 부름받지 않았다면, 우리가 부름받지 않았다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낼른지요. 

 

믿는 이들에게는 만약도, 우연도 없습니다. 알게 모르게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 방법대로 최선, 최상의 길로 인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마태오는 무의미하고 허무하고 무지했던 삶에서 벗어나 주님의 제자공동체에 참여함으로 존재감있고 의미충만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 삶의 허무와 무지에서 벗어나 주님을 따르는 따름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보다 큰 축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의를 제기하는 바리사이들에 대한 주님의 말씀은 그대로 우리가 평생 담고 살아야 할 금과옥조의 말씀입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세상에 넘쳐나는 주님도 자기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무지의 병자들이요 무지의 죄인들입니다. 구원의 출구는, 답은 단 하나뿐입니다. “나를 따라라” 병자요 죄인인 우리를 부르시는 자비하신 주님께 날마다 응답하여 따라나서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주님을 따를 때 주님은 우리를 치유하시고 용서하시며, 날로 당신을 닮아 온유와 겸손, 자비와 지혜, 찬미와 감사로 가득한 우리 삶의 성경을 쓰게 하실 것입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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