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마태11,25-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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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3-07-09 | 조회수306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복음(마태11,25-30)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 하느님이 감추신 ‘이것’, 앞 23절 이하에서 카파르나움(나를 위한 고을, 성전), 곧 하느님의 뜻, 새 계약의 말씀인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그 하늘의 의(義)를 구원의 진리로 밎지 않고, 의지하지 않고 제사와 윤리, 그 인간들의 행위의 열심, 계명을 잘 지킨, 그 인간의 의(義)로 자신의 뜻을 이루며 또 하늘에 까지 이르려는 이들은 소돔, 고모라 처럼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라 하신 ‘이것’이다.
(예레23,14) 14 나는 예루살렘의 예언자들에게서도 *망측한 일을 보았다. 그들은 간음을 하고 거짓 속을 걷는다. 또 악을 저지르는 자(세상)들의 손을 거든다. 그리하여 *아무도 제 악에서 돌아서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나에게 소돔처럼 되고 그 주민들은 고모라처럼 되어 버렸다. =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들(세상)의 법(法), 계명(誡命)으로 가르치는 것이 하느님과 분리, 이혼시키는 간음(姦淫), 악(惡), 거짓, 곧 죽음의 길이다. ‘신학(神學)이 믿음의 신앙을 망쳤다’는 말이 있듯이 본문 25절은 하느님의 말씀은 학위(學位)받는 박사(博士)들 보다 철부지들이 더 잘 받아들인다는 말씀이신 것이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이사29,14) 14 나는 이 백성에게 놀라운 일을, 놀랍고 기이한 일을 계속 보이리라. 그리하여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는 사라지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는 자취를 감추리라.”
(1코린3,19) 19 이 세상의 지혜가 하느님께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을 그들의 꾀로 붙잡으신다.”
27ㄱ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 하느님은 첫 사람 아담에게 세상의 권한을 넘겨주셨다.(창세1,28 2,15-19참조) 그러나 자신의 욕망 때문에 뱀(악)의 유혹에 넘어가 그 세상의 권한을 빼앗기고, 넘겨주고 말았다.(창세3,1-8 루가4,6참조) 그래서 모든 인간들(세상)은 악마(죄)의 지배(거짓 가르침)를 받다가 끝내는 영원한 죽음에 갇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아버지, 사랑의 하느님께서는 그냥 계실 수가 없으셨다. 그래서 당신의 백성, 자녀들을 구(求)하시기 위해그들의 모든 죄(罪)를 예수님께 넘겨주셨고, 그 넘겨받으신 우리 죄(罪)의 목숨 값으로 십자가(十字架)에서 대신(代身) 죽으심으로 믿는 우리가 새 생명, 구원을 넘겨받게 된 것이다.
(1코린15,22)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갈라3,22) 22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이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
27ㄴ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 ‘말씀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말씀을 통하지 않고서는 절대 하느님 아버지를 알 수가 없다.
(요한6,37) 37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 하느님께서 미리 선택(選擇), 정(定)하신 이들을 넘겨주심이다.
(에페1,11)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 한 몫, 믿음으로 얻는다.
(1베드1,2) 2 하느님 아버지께서 *미리 선택하신 여러분은 성령으로 거룩해져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되었고, 또 그분의 피가 뿌려져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풍성히 내리기를 빕니다. = 성령(聖靈)의 이끄심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 깨끗해진다.
(로마8,29-30)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 하느님께서 의롭게, 영광스럽게 만들어 가신다. 그때 필요한 것이 우리의 살이 되어버린 세상의 힘들을 떼어내는 자기 버림, 부인(否認)의 고통, 시련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구원(救援)의 말씀을 믿지 않고 자신의 뜻을 위한 행위의 길을 가는 자식 들에게 사랑(생명)의 매(枚)를 드시는 아버지시다.
(히브12,7)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 하느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사탄(마귀)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看過)해서는 않된다.(마태24,24) 그러나 하느님의 고집이 더 세시다. 그러니까 하늘의 의(義), 생명을 위한 믿음의 신앙이 아닌, 세상의 명예, 의(義), 재물(才物) 등을 내는 것으로 ‘쌓기 위한’ 결함있는 옛 계약(히브8,7) 그 율법(제사와 윤리)의 행위신앙(行爲信仰)을 고집하면 할수록 힘들다는 것이다.
2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 나를 부르신다, 예수님의 품에 안기는 시간으로~) 사람의 규정과 교리로 고생하는, 그래서 ‘신앙이 오히려 짐이 되어버린 이들아 오너라.’ 하신다. 그 절망과 고생길에서 돌아서서~~희망과 구원의 길인 하느님의 규정과 법규로 돌아오라 하시는 것이다.
(탈출15,23.25) 23 (이집트 탈출 후 과야길에~) 마침내 마라에 다다랐지만, 그곳 마라의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다. = 마라(아람어), 마리아(히브리어)- ‘쓴 물’ 25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나무 하나를 보여 주셨다. 모세가 그것을 물에 던지자 그 물이 *단 물이 되었다.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우시고 그곳에서 주님께서는 백성을 시험하셨다. = ‘쓴 물’에 ‘나무 하나’, 곧 십자나무(예수)가 들어가 썩어져서(죽어서) 쓴물이 단물이 되는, 곧 생명수가 되는 것이다. 다시~ 죄인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면 의인이 되는, 그것이 하느님의 구원의 규정과 법인 것이다. 십자나무의 희생, 그 의로움의 예수님이 구원(안식, 생명)의 길, 진리라는 것이다.
(2코린5,21)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갈라2,21) 21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율법(제사와 윤리)을 통하여 의로움이 온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 온유(溫柔, 폴라우스-풀어주다) 겸손(謙遜, 타페이노스-하느님 앞에 낮은 자)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에 낮은 자세로 순종하셔서 우리를 묶고 있는 모든 죄의 법에서 풀어 해방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예수님 당신의 멍에 십자가로, 그러니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알아야(배워야)한다.
(갈라3,13) 13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저주받은 몸이 되시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모두 저주받은 자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명21,23) 23 그 주검을 밤새도록 나무에 매달아 두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그날로 묻어야 한다.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자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시는 땅을 부정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 내가 달려야할 십자가에 예수님께서 대신 달리셨으니, 그 예수님의 十字架가 내 십자가라는 것이다.
(1배드2,24) 24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십자가)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 예수님의 멍에, 그분의 십자가로 얻는 의로움과 안식이다.
(마르8,34) 34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 사람의 계명, 도리, 그 의로움이 구원의 힘, 능력이 없음을 깨닫고 그동안 걸었던 길, 그 자신을 버리고(부인하고) 제 십자가, 곧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 그분을 따르는 그분의 제자라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죽음(부인)과 예수님의 죽음이 만나는 것이 구원이며 안식이라는 것이다. 물론 내 삶에서 일어나는 어려운 상황, 여건들, 그리고 힘들게 하는 가족과 이웃들을 내 십자가로 지고 가야 한다. 그럴 때 예수님을 모른다면, 절망과 미움과 악의, 그 죄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 그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다. 엊그제 봤던 그 중풍병자에게 주님께서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신 그 말씀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르는 내 현실의 십자가는 희망이 없는 죽음으로 끝날 뿐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아멘.
*함께 묵상을 나눈 교우님의 신앙체험을 소개합니다. 저는 세례받고 얼마 되지 않은 때에 구역의 한 자매님으로부터 무서운 큰 충격적인 말을 신앙의 조언으로 듣고, 불안과 공포증에 시달리기 시작했고, 본당 신부님의 말씀대로 매일미사를 열심히 다니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으나, 마음 한가운데에는 늘 큰 무거운 근심 덩어리가 있었습니다. 그 후 모 수도원에서 마음을 정화하는, 전 삶을 되돌아보는 프로그램에 참석해서 열심히 했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화근이 되어 급기야는 정신과 약을 꽤 오랫동안 먹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본당의 모든 전례와 행사에 빠지지 않고 지구봉사와 철야기도, 그리고 온갖 피정을 찾아 다녀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어떤 피정, 어떤 가르침을 들어도, 신부님의 강론 말씀도 도덕과 윤리의 말씀이셨기에 안식(쉼)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앙이 오히려 무거운 짐이였습니다. 급기야 점점 더 심해져서 하던 모든 활동을 전부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성경을 붙들고 씨름하기 시작했습니다. 할 것이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본당, 활동, 종교행위, 행사에 더 열심했고 묵주기도도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습니다. 본당에서 시키는 일은 다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제대로 본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성경을 봤습니다. 처음엔 말씀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사랑의 하느님이 느껴지지가 않았습니다. 도덕과 윤리로 봤으니까요. 그래도 성경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다른 것은 다 해봤고, 모든 것이 소용없음을 너무 잘 알았기에 해보지 않았던 성경말씀에 희망을 걸어 보기로 작정하고 매달렸던 것입니다. 성경을 붙들고 온 방을 헤매며 울며 매달렸습니다. 어느 순간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말씀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말씀이 내 안에서 활동하신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사제에게도 배우지 못하고 들어보지도 못한 성경 말씀이 깨달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성령께서 가르치신다는 말씀이 실감 났습니다. 그렇게 말씀 안에서 말씀이 주시는 쉼, 안식의 삶을 요즈음은 살고 있습니다. 인간의 머리로는 알 수 없다는 그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속에 살고 있습니다. 말씀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왜? 하느님의 말씀을 못 받고 사람의 말을 받아 너무나 힘든 시간, 헛된 시간을 살았나~ 왜 사람의 법규와 규정과 교리에 묶여 무거운 짐 같은 신앙을 살았나~ 억울한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음에 감사할 뿐입니다. 요즘, 저는 그 미사와 성체의 실체이신 말씀이신 주님과 함께 생활하니 든든합니다. 성경을 하느님의 뜻으로 먹고 자고 하는 이 시간이 행복합니다. 오늘도 ‘오라’하시는 그 말씀 안에서 살렵니다. 하느님의 지혜를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눈과 귀를 열어주신 삼위일체 하느님, 찬미와 감사와 영광 드립니다.
☨거룩하신 천주의 성령님! 저희 모두의 마음을 충만하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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