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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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3-07-10 | 조회수895 | 추천수8 | 반대(0) |
대한민국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특성’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라는 말을 많이, 자주 사용한다고 합니다.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동네, 우리 남편이라고 합니다. 나의 남편, 나의 아내가 맞는 말 같은데 우리라는 말을 자주하니 우리 아내, 우리 남편이라고 합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우리는 고려, 조선으로 왕조는 바뀌었지만 거의 1,500년가량 한 국가의 통치 체제에 있었습니다. 외세의 침입은 1,000번 이상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끼리 싸우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외세의 침입에는 똘똘 뭉쳐서 싸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라는 말에는 친밀함이 있고, 동질감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사말에는 ‘밥은 먹었는지요? 다음에 밥 한번 먹어요.’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다른 나라에는 거의 없는 인사말입니다. ‘십시일반’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주변에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이 있으면 나의 일처럼 도와주었습니다. 지하철에서 아이가 울면 일본 사람은 아이 엄마를 째려보고 아이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 다음 역에서 내린다고 합니다. 우리는 아이가 울면 사람들이 가서 아이를 달래 주려고 하고, 아이 엄마가 다음 역에서 내리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라는 친밀감이 있어서입니다. 식당에서도 일하는 분을 ‘이모’라고 부르고, 친구의 엄마도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우리라는 친밀감이 가족을 넘어서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야곱은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네가 하느님과 겨루고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으니, 너의 이름은 이제 더 이상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불릴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특성’은 무엇이 있을까요? 하느님께 선택 받았다는 ‘선민의식’이 있습니다. 당대의 많은 나라는 ‘여러 신’을 섬겼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오직 ‘야훼 하느님’만을 섬겼습니다. ‘유일 신’을 믿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삶과 이야기를 기록하였는데 우리는 그것을 ‘구약성경’이라고 부릅니다. 신약성경과 함께 성경은 21억 명 이상의 인구가 매일 접하고 있습니다. 한 민족의 이야기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읽고, 삶의 이정표로 삼는 경우는 이스라엘이 유일합니다. 신약성서는 예수님의 족보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었음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그리고 딸을 고쳐 달라는 이방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먼저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을 돌보아야 한다.” 그러자 이방인 여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강아지도 주인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음식은 먹습니다.” 이스라엘은 서양문화의 원류가 되었고, 이스라엘은 신약의 뿌리였으며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나라와 교회는 이스라엘이라는 토양에서 잉태된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특성은 무엇일까요? 한국교회는 선교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교회를 받아들였습니다. 한국교회는 100년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수많은 순교자가 있었습니다. 신앙 때문에 재산을 버렸고, 벼슬을 포기했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세례를 받고 신앙인이 되는 것은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용감하게 순교로서 신앙을 증거하였습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은 7000킬로를 걸었습니다. 행동으로 신앙을 증거하였습니다. 성 정하상 바오로는 사제를 영입하기 위해서 얼어붙은 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습니다. 복녀 강완숙 골롬바는 목숨을 걸고 사제를 보호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박해를 받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신앙인이 정말 작은 이유로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보다는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고통스러운 현실이지만 같은 현실입니다. 우리는 선조들이 지켜온 신앙을 충실하게 따라야 합니다. 앙드레 지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 가듯이 바라보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쉽지만 의미 없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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