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이 영근 신부님의 복음 묵상 | |||
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3-07-11 | 조회수491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 마태 9,32-38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사람과 동물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사고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물은 ‘본능’에 따라 움직이지만, 사람은 ‘사고’를 바탕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에 따라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동물도 ‘본능’이 아니라 ‘양심’과 ‘동정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모습이 목격되어 사람들 사이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것도 초식동물도 아니고 초원의 ‘맹수’인 사자가 사냥한 먹잇감을 두고 한 행동이라 더욱 놀랍다는 반응들이 많았지요.
그 사건이란 이렇습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동물관리원인 ‘게리 월터’는 동물 보호구역을 순찰하던 중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한 암사자가 영양을 사냥하여 잡아먹고 있었는데, 그 뱃속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새끼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자 암사자는 ‘식사’를 멈추고는 영양의 뱃속에 있던 새끼를 아주 조심스럽게 밖으로 끌어내어 바닥에 살며시 눕혔습니다. 그리고는 한 동안 냄새를 맡기도 하고 코로 건드려보기도 하며 새끼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새끼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확인해 보려고 한 것입니다. 한참을 살펴본 끝에 새끼가 이미 죽었음을 알게 된 암사자는 그 사체를 조심스럽게 덤불 위로 옮겨주었습니다. 그러고는 마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침울한 모습으로 그 주변을 한참동안 서성거리다가 자신이 잡은 사냥감을 그대로 둔 채 그곳을 떠났습니다.
이 암사자가 보여준 모습은 동물에 대한 그동안의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여러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사자가 새끼를 밴 동물을 사냥해서 아무 거리낌 없이 잡아먹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암사자는 자신이 새끼를 밴 ‘엄마’ 영양을 사냥한 것을 후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우리는 그 모습을 통해 동물도 죄책감과 동정심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선’ 그 자체이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은 기본적으로 마음 속에 ‘선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선하심’을 닮고 싶어합니다. 내 주변의 누군가가 슬픔에 빠져 있으면 그 슬픔에 공감하여 함께 울어주며, 누군가가 고통과 시련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처지를 딱하게 여기고 마음 아파 합니다. 그러다가 그가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고 다시금 기쁨과 행복을 찾게 되면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축하해 주기도 합니다. 그런 ‘측은지심’이야말로 우리를 ‘사람답게’ 만드는 기본조건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예수님께서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신 것도 이 험한 세상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의 딱한 처지를 가엾이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초월적’인 존재로서 자기보다 낮은 자들을 ‘내려다보며’ 불쌍하게 여기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떨어질 수 없는 ‘한 가족’으로써, 그 누구보다 ‘친한 친구’로서 우리의 슬픔과 고통을 자기 일처럼 여기며 함께 나누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영광스럽고 행복한 순간을 맞이할 때도 자기 일처럼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들은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인간다운 ‘본성’보다는 동물적인 ‘본능’을 더 따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욕심’이라는 본능을 따르기에 마귀에 들려 고통받는 이웃에게는 관심도 없습니다. 오직 자기 것을 지키는 데에만 관심을 둘 뿐입니다. ‘시기’, ‘질투’라는 본능을 따르기에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자기들의 기득권을 침해하는 ‘경쟁자’라고 생각하여 ‘마귀 우두머리’라는 누명을 씌워서라도 제거하려고 들 뿐입니다. 그런 이들이 ‘행복’이라는 수확을 거둘 수 있을리가 없지요. 그런 모습을 보고 예수님은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실천하는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동물적인 ‘본능’보다는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에 심어주신 선한 ‘본성’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뿌려주신 ‘사랑’이라는 씨앗이 튼튼하게 잘 자라서 ‘행복’이라는 수확을 풍성하게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