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모르 파티의 운명론이 허무주의를 이겼다지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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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대군 | 작성일2023-07-13 | 조회수419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라틴어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이는 허무주의는 극복했으나 동물과 다른 생각하는 인간로으로서의 도전은 빠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긍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만 신에 대한 의지는 간과했습니다. 예, 모두가 신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신의 나라가 바로 이 땅이 되기 위해서 주님의 기도를 합니다. “~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예언자들의 말씀을 통해서 계속 말씀하셨고 그의 말씀이 성취되었지만 우리는 구원이 되었음을 모르고 살아가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신의 세상과 인간의 세상은 나뉘어 있지만 이 인간 세상에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분명한 한 가지는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과 같은 분을 죽였지만 우리는 이를 두고 하느님을 죽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정말로 시급한 문제는 가슴 뛰는대로 사는 것이 아니요 신이신 분께서 죽었으니 죽고 분명히 부활하셨고 하늘에 올라가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마치 운명지어진 것 같지만 우리의 자유의지와 신에 대한 나라의 것으로 나누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이시고 사람이신 그분을 신은 죽었다고 말하지만 성부이신 신이 살아 있으니 영원한 것입니다. 아무튼 파티는 운명론의 나라인 인도라는 나라의 세상과 같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운명지어졌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불교는 이 운명론을 부수고 이 세상을 열었습니다. 또한 간디는 영국이 지배한 나라에서 무저항 운동으로 독립을 이끌어냈습니다. 아무것도 없어 공허하다는 허무주의는 다시금 가슴이 뛰는대로라며 그렇게 살면된다는 운명론에 패배하였지만 이는 때가 되어 자신의 자리를 찾았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실 운명으로 오셨다고 보아야 할까요? 또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을 운명이라고 보아야 할까요? 저는 그래서 한번씩 아모르 파티라는 노래를 듣습니다만 과연 그것이 허무를 멀리하고 운명에 순응한다는 것일까요? 불교에서의 윤회론도 운명과 같은 것일까요? 깨우치고 여기에서 좋은 업을 쌓아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몰라도 다시 인간의 세계나 동물들의 세계나 그렇게들 태어난다는 것은 지금의 힌두교와 다른 것이겠지요.
운명지어진 인간이 아니라 인간들의 삶이 그러하니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데서 모든 것은 시작하고 끝을 맺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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