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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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3-07-23 | 조회수705 | 추천수7 | 반대(0) |
지난 이탈리아 성지순례에는 다른 점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부부가 같이 온 분들 많았고, 다른 하나는 학생들이 많이 온 것입니다. 38명 중에 부부가 12명이고, 학생이 7명이었습니다. 19명이 부부와 학생이니 전체 순례자의 딱 절반입니다. 성지순례를 하면서 대부분은 자매님들이 많았습니다. 형제님들은 일하느라 바빠서 못 오기도 하고, 학생들은 공부가 먼저라 못 오기도 했습니다. 순례는 가슴이 떨릴 때 가야지 몸이 떨릴 때 가면 힘들다는 말이 있습니다. 바쁜 중에도, 공부가 중요한 데도 성지순례에 함께하시는 분들을 보니 하느님나라에 보물을 쌓은 것 같아 보였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이 등잔에 기름을 준비해 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다섯 배로 늘린 충실한 종처럼 보였습니다. 저도 올해 성지순례를 5번 다녀왔습니다. 1월에는 이스라엘과 과달루페를 다녀왔습니다. 4월에는 요르단 이스라엘을 다녀왔습니다. 5월에는 그리스 터키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탈리아를 다녀왔습니다. 몸은 힘들었지만 저도 가슴이 떨릴 때 성지순례를 다녀오고 싶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는 예수님께 ‘표징’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구원의 역사에서 우리는 많은 표징을 보았습니다. 모세는 표징의 인물입니다.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10가지의 표징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완고한 파라오는 10가지 표징을 보았으면서도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10가지 표징을 보았지만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집트에는 묏자리가 없어 광야에서 죽으라고 우리를 데려왔소?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어내어 이렇게 만드는 것이오? ‘우리한테는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나으니, 이집트인들을 섬기게 우리를 그냥 놔두시오.’ 하면서 우리가 이미 이집트에서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소?” 그렇습니다. 표징은 이정표는 될지언정 표징이 목적지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징에 목말랐던 토마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토마야!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참으로 복되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천지사방에 표징이 있습니다. ‘의혹’의 눈으로 보면 지금 여기에 예수님이 계셔도 또 다른 표징을 요구하게 됩니다. 오늘 성서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문제는 구원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길은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느님과 함께 길을 걷는 것입니다. 올바른 길을 걷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요나 이야기를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요나 예언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니느웨의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전하여라.’ 요나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이방인들에게도 하느님의 사랑이 전해지는 것이 싫어서 도망을 갔지만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하느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 병자들, 이방인들에게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표징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수많은 번제물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오직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정의를 실천하며 평화롭게 사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신기한 기적이나 놀라운 사건을 통해서 볼 수도 있겠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꽃에서도, 흘러가는 구름에서도, 거센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에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듣거든 너희의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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