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30. 연중 제17주일.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마태 13,44)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절대 최고의 가치를 지닌, 내 목숨을 내어주고서라도 얻고 싶은 것, 그것은 무엇일까? 참된 행복, 참된 기쁨, 참된 보물, 그것은 무엇일까? 바로 그것을 여러분은 발견하였는지요? 그리고 그것을 이미 가지셨는지요? 아니면 그것을 갖기를 진정으로 원하시기는 하는지요?
오늘 [말씀전례]는 바로 이 ‘진정 중요한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어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2열왕 3,5)라고 묻자, 솔로몬은 대답합니다.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1열왕 3,9)
이처럼, 솔로몬은 백성을 분별 있게 통치할 “듣는 마음”을 청합니다. 여기서 ‘듣다’(샤마)라는 동사는 단순히 듣는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귀 기울여 들은 것을 받아들여 수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지혜는 ‘소통하는 듣는 마음’에서 옵니다. 곧 ‘말씀을 듣고 들은 말씀을 받아들여 수용하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줍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로마 829)을 밝히면서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로마 8,29)
그러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모상”이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중요한 것은 “와 있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로 비유됩니다. 오늘 <복음>은 먼저, 그 ‘값진 보물’인 “하느님 나라”가 대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그리고 그 보물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십니다. 먼저, 하늘나라는 대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묻혀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마태 13,44)
그것은 멀리 하늘 끝에 높이 매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하고 있는 “밭에 묻혀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우리의 일터에, 우리의 삶의 터전에 ‘이미 묻혀있다’ 말씀입니다. 우리의 사무실이나 가게에, 우리의 농장이나 공장에, 혹은 거리나 광장에, 이 세상에 그리고 사람 서리에, ‘이미 묻혀있다’는 말씀입니다. 곧 우리의 일상의 삶의 장소 안에 ‘이미 묻혀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우리가 밭을 충실히 일구고 가꿀 때, 비로소 바로 그 밭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어떤 장사꾼이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것에 비길 수 있다”(마태 13,45)
그것은 우리의 머릿속, 관념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진주를 찾아다니는” 그 행위에 ‘이미 깃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길을 찾는 그 발길 안에, 진리를 더듬는 손길 그 안에, 혹은 인간을 찾아나서는 우리의 인간관계 그 안에, 어떻게든 바르게 살아보려는 바로 그 행위 안에, ‘이미 깃들어있다’는 말씀입니다. 곧 하느님을 찾아나서는 신앙의 여정, 신앙의 행위 그 안에 ‘이미 깃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것을 열심히 찾아다닐 때, 바로 그 행위 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하늘나라”는 우리의 ‘일상의 삶’과 하느님을 ‘찾아나서는 행위 안’에 ‘이미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루가 17,21)
그렇다면, 우리 가운데 있는 이 “하늘나라”를 어떻게 얻을 수가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 보물을 찾아낸 사람은 ~있는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마태 13,44)
“그 진주를 발견한 장사꾼은 ~있는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마태 13,46)
결국, “하늘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먼저 “있는 것을 다 파는” 일입니다. 우리가 비록 보물을 찾았고 진주를 발견했다 해도, 그것이 곧바로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보물을 깨달아 알아들었다 해도, 그것이 아직은 우리의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진정 그 보물을 차지하려면, “먼저” 그 보물을 위하여 ‘헌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가진 것을 다 팔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숨까지도 팔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듯이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 그 보물이 더 값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는 실제로 그것을 “사는” 일이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가 비록 보물을 발견했고 가진 것을 다 팔았다 해도, 그 보물을 실제로 사들이지 않고는 아직 보물이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늘나라”를 얻는 길은 “있는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사는 것” 입니다.
‘성서 안에서는 사는 방법’을 두 가지로 말해줍니다. 하나는 돈 없이, 곧 값없이 사는 것이요(이사 55,1; 묵시 21,6), 또 하나는 모든 것을 다 투자하여 사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이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필립 3,7-8). 그런데 사실, 모든 것을 다 투자하여 산다는 것 역시 결국은 당신의 겻을 당신께 돌려드리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 곧 목숨까지도 애시 당초 당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실 ‘있는 것을 다 팔아도’ 잃어버린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우리 가운데 있는 이 “하늘나라”를 우리가 가진 것을 다 팔아 사야할 만큼, 진정 가장 값진 보물로 여기고 있는지?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진정 “하늘나라”가 나의 기쁨이요 나의 행복인지, 진정 나에게 있어서 최상의 유일무이한 것인지, 목숨을 주고라도 얻어야하는 그 무엇인지, 사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하늘나라”의 가치를 인정할 때라야, 진정으로 그것을 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혹 내가 아직 보물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제 진정한 마음으로 찾아 나서야 할 일입니다. 혹 보물을 발견하고도 아직 있는 것을 다 팔지 않았다면, 서둘러 다 팔아야할 일입니다. 혹 가진 것을 다 팔고도 아직 보물을 사들이지 않고 있다면, 어서 빨리 보물을 사야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그물의 비유를 통해 그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하십니다. 또한 이미 얻은 보물인 “하늘나라”를 선포하고 증거 하라 하십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하늘나라는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마태 13,47)
주님!
하늘나라의 그물에 저를 몰아넣으소서.
당신 말씀의 그물로 덮어씌워 당신 뜻 안에 가두소서.
세상의 바다에 저를 던지시어, 당신의 그물이 되게 하소서.
온갖 고기를 모아들일 뿐, 제 입맛에 맞게 고르지 않게 하소서.
제가 그물일 뿐, 주인이 아니듯 고기의 주인도 아님을 잊지 않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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