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24. 예수님 세례[2/2] / 활동 준비기[1] / 부스러기 복음[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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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3-07-31 | 조회수242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4. 예수님 세례[2/2] (마태 3,13-17; 마르 1,9-11; 루카 3,21-22) / 공관복음[24] 아무튼 요한의 세례가 율법의 가르침에 따라서는 완전했지만, 죄의 완전한 용서를 가져다주지는 못하고 사람들이 세례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만 했다는 점에서는 불완전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요한의 세례가 이제부터 완전한 의로움을 드러내도록 세례를 받으시려는 것이다.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인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사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는 세례 받는 이들이 죄를 고백하는 동안 오래 물에 잠겨 있었다. 그렇지만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나오셨다‘가 아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회개하는 자로서가 아니라 죄를 씻어 주시고 물을 거룩하게 만드시는 분으로서 세례를 받으셨기에, 거룩한 물위로 올라오신 것이다. 그것도 회개의 시간이 필요 없는 ’곧장‘ 나오신 것이다. 이처럼 ’올라옴‘은 세례 받은 이는 회개로 의로움을 이루었기에, 그 세례 받은 이들이 다시 죄 없는 ’거룩한 지위‘로 올라오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인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는 것이다. 사실 성령을 이 ‘비둘기’ 모습으로 상징하는 것에 관해서는 아직도 만족할 만한 설명이 제시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무튼 노아의 방주로 돌아온 비둘기를 가리켜, 성령의 내려옴으로 보는 것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또 어떤 학자들은 이 세상에 내려오는 하느님의 사랑을 가리킨다고 이해한다. 그렇지만 세상 창조 때에 심연의 물 위를 감도신 성령을 비둘기 모습으로 연상한 유다인들의 전통을 바탕으로, 성령으로 그려지는 이 비둘기가 예수님의 세례 때에 이루어지는 새로운 창조를 상기시킨다고 보는 것 같다. 그렇게 하느님의 영인 성령께서 비둘기 모습으로 구름처럼 하늘을 덮었다. 그리고 하늘에서 성부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고 올라오시자 하늘에서는 영께서 내려오셨고 성부 아버지의 말씀이 들려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씀이다. ‘세례 받는 이’가 아닌, 단순히 ‘이는’이다. 이는 세례 받는 예수님이 아닌,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씀으로, 예수님 신원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이는 믿음의 삶을 사는 우리의 ‘신앙고백’이 아닌가.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성부 아버지의 말씀이 들리는 순간 하늘의 문이 열리고, 하늘에서 성령께서 비둘기 모습으로 내려온다. 땅에서는 성자 예수님이 물에서 올라오신다. 그리하여 지금 요르단 강가에서 삼위일체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아버지께서는 목소리로, 아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성령께서는 비둘기 모습으로. 지상에서의 삼위일체가 처음으로 구현되는 예수님 세례식이다. 신구약의 인수인계가 삼위일체의 출현으로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 요한의 시대는 끝나고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이, 지금 요르단 강에서의 세례식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는 끝이 나고,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신 ‘말씀’이 기쁜 소식으로 울려퍼지는 세례식장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 강에서 돌아오셨다.[계속] [참조] : 이어서 ‘25. 광야에서의 유혹 (마태 4,1-11; 마르 1,12-13; 루카 4,1-13)’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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