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1. 갈릴래아 전도 시작 / 갈릴래아 활동기[2] / 부스러기 복음[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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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3-08-02 | 조회수240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 갈릴래아 전도 시작 (마태 4,12-17; 마르 1,14-15; 루카 4,14-15) / 공관복음[26]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본격적으로 전도 활동을 시작하시고자 마음을 잡수셨다. ‘때’가 찬 것이다. 바로 그 때에 친척인 요한이 잡히셨단다. 그는 예수님의 공생활의 길을 터준 이다. 그런 그가 잡혔단다. 아니 지금껏 여자에게서 난 가장 위대한 이요, 누구보다도 성령의 기운을 많이 가졌다 여겨지는 세례자 요한이 잡혔다니, 이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일이 분명하다. 그분 말고는 어느 누구도 성령의 기운을 입은 거룩한 이를 거슬러 어떠한 짓도 할 수가 없기에. 죄인은 다른 죄인에게 어떤 짓도 한다. 그는 전적으로 하느님 보살핌에 벗어나 있기에. 그러나 하느님의 사람에게는 죄인은 어떤 짓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는 하느님의 뜻이리라. 그래서 예수님의 때가 찬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물러가신 것은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당신의 때가 그만큼 찾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유혹의 위험에서 피하는 하나의 본보기를 보여 주기 위해서일 게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그 많은 유혹을 다 이겨낼 수가 없기 때문이리라.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카파르나움은 일반적으로 갈릴래아 호수 북동쪽에 있었던 것으로 호수를 낀 겐네사렛과 벳사이다 중간쯤이다. 아무튼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셔서 ‘자리를 잡으셨다’라는 표현은 참 흔한 일이 아니다. 굳이 이렇게 카파르나움에다 자리를 잡으셨다는 것은, 그곳이 예수님 일행이 장차 갈릴래아 일대의 활동 무대 시 장기적으로 머물 숙소였을지도. 어쩌면 나자렛에서 성모님께서 아들 예수를 만나려 오실 때의 임시 거처가 될 수도 있었을 게다. 이렇게 예수님의 초기 전도 지역의 근거지로 선택한 갈릴래아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지역’이다. 사실 갈릴래아는 팔레스티나에서 그나마 비옥한 곳으로 외부의 침입이 잦았고, 오랫동안 이민족들의 지배를 받아 착취를 당한 ‘이민족들의 갈릴래아’로 불렸다. 그래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많은 버림받은 지역이기도 했다. 여기를 예수님은 전도 활동의 첫 무대로 잡은 것이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한줄기 큰 빛이신 예수님께서 그곳, 낮을 대로 낮은 천박한 지역으로 가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 그곳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 영혼을 타락하게 만드는 죄는 ‘죽음의 그림자’를 낳는다. 여기에 ‘빛이 떠올랐다’라는 말은 빛이 나타났다는 것이 아니라, 빛을 맞은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이들을 향해 그 빛이 비춰지고 있다는 거다. 그림자를 빛으로 당장 지우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드리워진 ‘죄’를 치워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회개의 요구다. 이렇게 하느님 나라에 들려면 회개를 통한 죄의 용서가 선행되어야 할 게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이는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선포한 내용과 같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 이렇게 예수님께서도 요한이 늘 하던 대로 설교를 시작하셨다. 참으로 큰 빛답다. 이는 예수님께서 요한의 가르침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옳음을 확증해 주시는 것이다. 지금 요한은 잡혀있다. 만약 요한이 여전히 요르단 강변에서 그의 설교를 계속하는 중이라면, 예수님의 이 설교는 어쩌면 요한에게는 방해일 수도. 그래서 이제 요한이 갇히자 예수님께서 그의 가르침을 이어나가시는 것이다. 이것은 요한이 참된 증인임을 알리시고자 그의 가르침을 다시 일깨워 주시는 것일 게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과 완전한 하느님 나라를 인수인계하셨다.[계속] [참조] : 이어서 ‘2. 고향에서 희년 선포(마태 13,54-58; 마르 6,1-6; 루카 4,16-30)’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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