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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물 위를 걷는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는 신앙인의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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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3-08-08 조회수598 추천수2 반대(0) 신고

 

 

 

 

 

 

 

 

 

 

 

 

 

2023년 가해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물 위를 걷는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는  신앙인의 모델>

 

 

 

복음: 마태오 14,22-36

 

 

 

 


성모자


부티노네(Butinone) 작, (1490),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실 때 베드로가 자신도 걷겠다며 나서는 내용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렇게 청합니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예수님은 당신처럼 하려는 베드로를 나무라지 않으십니다. 그저 “오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베드로는 온전한 인간으로 하느님처럼 물 위를 걸은 최초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불가능한 것에 도전한다면 그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대상을 만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만남이 없다면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유튜브 ‘엠빅뉴스’에 ‘24년 동안 100만 평에 나무 2만 그루 홀로 심은 할아버지 ‘미친X’이라 놀리던 마을주민이 이제 그를 영웅이라 부른다!’라는 동영상이 있습니다. 해가 뜨면 낫을 들고 산으로 사라지는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마을주민들은 그를 ‘미친 사람’이라 불렀습니다. 나무를 베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자기 돈 주고 씨앗을 사와 온종일 나무를 심으러 다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무려 24년을.


    1960년 인도네시아 산불로 잿더미가 된 마을. 문제는 재앙 이후가 더 컸습니다. 건기에는 가뭄이 우기에는 홍수가 덮쳤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 없어 빈곤에 쪼들렸던 주민들은 하나둘 마을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1997년, 45세의 사디만은 향신료 열매 농사를 그만두고 가지고 있던 염소까지 모두 팔아 비싼 반야나무와 피쿠스타무 씨앗을 사 숲속에 심기 시작합니다. 주민들은 “배를 너무 굶어 정신이 나갔다”라고 수군거렸습니다. 심지어 주민들은 반얀나무엔 영혼이 깃들어 있어 마을을 망칠 것이라 믿으며 묘목 근처에 가축을 풀어 사디만을 방해하였습니다. 열매가 없는 반얀나무론 팔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디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이 나무들이 물을 가져다줄 것이다.”


    매년 수천 그루의 나무를 심은 사디만. 그렇게 10년이 지나자 땅속에서 샘물이 솟았습니다. 반얀과 피쿠스는 땅속에 물을 저장해 수분을 나눠주는 나무였던 것입니다. 냇물이 흐르고 물을 쓸 수 있게 된 마을. 물이 부족해 1년에 한 번 농사를 짓던 마을은 이제 2~3번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고 마을은 궁핍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무려 24년 동안 사디만은 100만 평의 땅에 2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혼자 심어 지옥의 땅을 축복의 땅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사디만의 생각대로 지난 10년간 마을엔 가뭄이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사디만 할아버지는 말합니다.
    “저는 사디만입니다. 저는 예순아홉 살입니다. 저는 숲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저는 반얀나무와 피쿠스나무로 좀 더 빽빽하게 숲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그게 분명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누군가 불가능한 일에, 이해받지 못하는 일에 도전하고 있다는 말은 그것을 가능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아기는 마치 진화하지 못한 동물처럼 기어 다닙니다. 그 아이가 두 발로 걸으려고 도전한다면 이는 그것을 가능하다고 믿는 누군가를 만났음을 의미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어쩌면 우리가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만나지 못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위 사디만 할아버지는 누구를 만나고 있을까요? 그분은 자신을 “숲을 만드는 사람”으로 정의합니다. 누가 그렇게 정의해주었을까요? 혼자서 그런 정체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분은 분명 자신을 그런 소명으로 태어나게 한 누군가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대상이 누구이건 간에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그 일을 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분을 분명 당신을 만나며 산 자녀로 인정해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성체를 영하면서도 이웃의 행복을 위해 그러한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은 분명 사디만 할아버지보다 못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아기가 부모를 보고 걷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제로 부모라 믿지 않음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포크포크 채널 ‘나무 150억 그루 심은 아홉 살 꼬마’ 동영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평범하기 그지없던 아홉 살 아이는 어느 날 북극곰이 온난화로 보금자리를 잃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북극곰을 사랑했던 펠릭스는 더 이상의 방관은 ‘범죄’라고 생각하고 “북극곰을 위해 나무 100만 그루를 심겠다”라고 선언합니다. 그의 말에 동조하는 어른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펠릭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주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앞장을 섰습니다. 그렇게 3년 뒤 5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을 때 어른들은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급기야 펠릭스는 UN에서 연설합니다. 어른들의 관심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는 여기서 “1조 그루 나무를 심기 캠페인”을 선포합니다. 그의 연설이 어른들을 일어나게 했고 이 운동은 전 세례로 확산했습니다. 이 캠페인에 한국도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100만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고 시작했던 펠릭스의 꿈은 현재 전 세계에 150억 그루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이 땅 위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차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절대 잊지 마세요. 모기 한 마리는 코뿔소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수천 마리의 모기는 코뿔소의 길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화성을 인간이 살 수 있게 만드는 게 꿈입니다. 그리고 진짜 그 일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이건 그는 분명 물 위를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하느님은 분명 인류를 구하고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불가능이 없게 만드시는 분입니다. 펠릭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꿈을 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예수님을 만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만나고 있는 신앙인의 모습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물 위를 걷는 베드로의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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