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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모두 ‘믿음의 뿌리’를 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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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8-13 조회수475 추천수6 반대(0) 신고

“우리 모두 ‘믿음의 뿌리’를 

튼튼히 합시다.”

-기도하라, 사랑하라, 함께하라-

 

 

“주님, 저희에게 자비와 구원을 베풀어 주소서.”(시편85,8)

 

오늘 화답송 후렴의 기도가 참 간절합니다. 주님의 자비와 구원 은총이 우리 믿음의 뿌리를 튼튼하게 합니다. 순수한 ‘뿌리’란 우리말이 참 좋습니다. 뿌리가 튼튼해야 합니다. 뿌리가 죽으면 나무는 저절로 죽습니다. 뿌리없이는 잎도 꽃도 열매도 없습니다. 뿌리가 병들면 나무도 병들고 머지 않아 죽습니다. 

 

푸르름 짙어가는 나무들과는 대조적으로 죽은 나무들은 보기도 흉합니다. 흉물같습니다. 뿌리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병든 사회, 병든 개인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바로 뿌리가 병들었음을 뜻합니다. 나무 뿌리가 상징하는 바 믿음입니다. 믿음의 뿌리입니다. 내 믿음의 뿌리는, 내 공동체 믿음의 뿌리는 튼튼합니까? 병들거나 죽지 않고 살아서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습니까? 믿음의 뿌리가 가리키는 바 내적성장입니다. 

 

카눈 태풍의 위력이 여기 수도원에는 미미했지만 커다란 소나무가 뿌리 뽑혀져 넘어져 있었습니다. 거대한 소나무를 받쳐 주기엔 뿌리들은 참 허약했고 이미 많이 썩어있었습니다. 새삼 내 삶의 뿌리를, 믿음의 뿌리를, 내 공동체의 뿌리가 연상되었습니다. 예전에 써놨던 ‘뿌리살이’란 글이 생각납니다.

 

“뿌리없이는 꽃도 없다

 뿌리로 살아야지

 세월 땅속에 묻혀 뿌리로 사는 거야

 꽃사랑으로 

 피어날 때까지

 기다리며 뿌리로 사는 거야

 뿌리살이 고달플 때

 꽃사랑 추억으로 갈증 축이며

 하늘사랑 꽃으로 피어날 그날 그리며

 뿌리로 사는 거야

 뿌리없이는 꽃도 없다”-1999.7.2.

 

수도원 여기 이 자리에서의 24년전 시가 새롭게 떠오릅니다. 지금까지 공동체의 정주의 뿌리가 되어 큰 나무로 살아온 기분입니다. 지금까지 날마다의 강론은 집요한 뿌리내림의 표현이었습니다. 정주의 믿음, 정주의 뿌리입니다. 어떻게 하면 날로 깊어지는 튼튼한 정주의 뿌리로 살 수 있을까요? 

 

첫째, 기도입니다.

기도해야 됩니다. 끊임없이, 한결같이, 간절히, 항구히, 공동기도는 물론이고 개인기도도 필수입니다. 고독과 침묵을 사랑했던 옛 수도자들이었습니다. 바로 고독과 침묵중에 하느님을 찾아 날로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렸던 사막의 수도자들이었습니다. 참으로 내적 깊이의 뿌리 내림에 개인기도는 결정적입니다. 고독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라 설파한 토마스 머튼입니다. 

 

고독이 궁극으로 지향하는바는 연대입니다. 새삼 오늘 말씀의 순서대로 하느님의 종들인 엘리야, 바오로, 예수님의 믿음의 뿌리는 얼마나 깊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세분 공히 하느님의 사람들,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엘리야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했을 때 우선 찾은 것이 하느님의 산 호렙이었고 여기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호렙에 있는 동굴에서 밤을 지낼 때 주님의 말씀이 내립니다. 밤은 주님을 만나라 있는 은총의 기도시간임을 깨닫습니다.

 

“나와서 주님 앞에 서라.”

 

크고 강한 바람이 지났지만 거기에 주님은 계시지 않았고, 지진이 일어났지만 거기에도 주님은 계시지 않았고, 불이 일어났지만 불 속에도 주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으니 바로 주님의 임재입니다. 그 소리를 듣자 엘리야는 겉옷 자락으로 얼굴을 가린채, 동굴 어귀로 나와 섭니다.

 

고독과 침묵의 산에서, 외딴곳에서, 또는 내 삶의 자리에서 특히 밤시간, 조용하고 부드러운 주님의 소리를, 말씀을 들은 적이 있으신지요? 우리 예수님도 밤시간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며 깊은 관상 상태에 있었음을 봅니다. 5천명 군중을 배불리 먹여 돌려 보내시고 제자들을 먼져 떠나 보내신후 불야불야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시어 밤샘기도에 돌입합니다. 어쩌다가 아니라 매일 외딴곳에서 밤샘 기도로 충전시킨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 수도자들은 끝기도후 잠자리에 들기전 다음 찬미가를 바칩니다.

 

“우리는 잠을 자도 주님과 함께, 

 꿈에도 당신만을 뵙게하소서.

 언제나 한결같이 당신영광을, 

 새는날 밝아올제 찬미하리다.”

 

우리 수도자들은 잠자는 중에도 영혼은 깨어 주님 안에서 관상의 휴식을 누리며 내적 친교를 깊이합니다. 믿는 이들의 삶은 자나깨나 끊임없는, 한결같은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또 공동체에 깊이 뿌리내리는 삶이어야 합니다.

 

둘째, 사랑입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기도와 사랑은 함께 갑니다. 기도는 기술의 테크닉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기도와 더불어 하느님께 이웃에 더욱 깊이 사랑의 뿌리를 내리기 마련입니다. 보십시오, 바오로의 사랑은 얼마나 깊은지 그 사랑의 뿌리는 하느님께 닿아 있습니다.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

 

하느님 찬미의 사랑에 깊이 뿌리내린 이웃사랑임을 봅니다. 불교의 지장보살을 연상케하는 가톨릭의 지장보살 바오로 같습니다. 바로 지옥의 고통에서 허덕이는 중생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해 주기 위해 스스로 부처가 되기를 포기하고 지금도 지옥 문전에 있는 지장 보살입니다. 어제 읽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전설적 기도도 생각납니다.

 

“주여, 지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제가 어찌 천국을 즐기겠습니까. 주여 저주받은 자들을 불쌍히 여겨 천국으로 들여보내든지, 아니면 저를 지옥으로 보내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게 하소서. 저는 지옥에 남아 그들과 고통을 나누겠습니다.”(영혼의 자서전, 하권 424쪽)

 

하느님 사랑에 까지 그 사랑의 뿌리가 도달한 성 바오로, 성 프란치스코를 닮은 불가의 지장보살입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사랑은 여전히 초보자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봅니다. 더욱 사랑의 훈련, 습관화로 하느님과 이웃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시기 바랍니다.

 

셋째, 함께입니다.

함께 해야 합니다. 함께 섬겨야 합니다. 회개-친교-섬김의 순서입니다. 마음의 순결이, 자유가 최종 목표가 아니라 더불어 섬김입니다. 섬김을 위한 자유요, 섬김을 통한 자유의 완성입니다. 홀로인 듯 하나 함께 안의 홀로입니다. 더불어와 단절된 고립단절은 환상이요 바로 이것이 지옥입니다. “함께 안의 홀로” 성서의 위인들, 교회의 성인들이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곁 관상기도중에도 영안은, 사랑의 눈은 제자들을 향해 활짝 열려 있음을 봅니다. 초월과 내재의 파스카 예수님입니다. 졸지도 잠들지도 않으시고 언제나 깨어 우리를 살펴보시며 위기시 우리를 구원할 채비가 되어 계십니다. 이를 안다면 전혀 걱정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세요. 그대로 인생 항해 여정중의 제자공동체를 상징합니다. 

 

얼마나 위험한 인생 항해 여정중인 크고 작은 무수한 공동체들인지요! 좌초하거나 조난당한 공동체들도 많습니다. 각자도생의 비정한 사회, 온전한 공동체 보기 힘든 세상입니다. 그래서 무수한 이들이 자살입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은 주님을 찾습니다. 주님의 구원의 개입을 기도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풍랑에 시달리던 제자들의 공동체가 그러했습니다.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고 물위를 걸어 한걸음에 달려 오시는 주님은 흡사 축지법을 쓰는 듯 그대로 하느님 모습입니다. 제자들의 곤경을 한눈에 보신 주님의 개입이 고맙습니다. “유령이다!”외치는 제자들에 이어 주님의 감로수 같은 구원의 말씀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바로 위기에 처했을 때 이 말씀 상기하시고 흩어진 정신을 수습하시기 바랍니다. 물위를 걸어오다 두려움에 주님 향한 눈길을 놓치고 물속에 빠져드는 베드로의 “주님, 저를 구해주십시오.” 외침에 즉각 응답하여 손을 내밀어 구원하시며 베드로의 믿음 약함을 꾸짖습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 자 몇이나 될런지요? 함께의 인생항해 여정중 참 많이 깨닫고 배웠을 제자들의 믿음입니다. 혼자라면 이런 주님의 체험도 없었을 것입니다. 공동체의 배에 오르시어 중심에 자리 잡자 바람은 그쳤고 도래한 내적평화와 안정입니다. 공동체 제자들은 그분께 엎드려 고백합니다.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그러나 아직도 멀었습니다. “스승님”이라니 “주님”이라 부름이 맞습니다. 저 같으면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시편 23장을 노래했을 것입니다. 주님이자 스승인 주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 살아난 제자들입니다. 평생 믿음의 여정중에 늘 이 구원의 추억을 상기하여 분투의 노력을 다했을 제자 공동체 형제들입니다. 

 

참으로 병들지 말아야 할 믿음의 뿌리들입니다. 늘 살펴봐야 할 내 믿음의 뿌리, 공동체 믿음의 뿌리입니다. 그러니 믿음의 뿌리내리기 영성훈련의 기도가, 사랑이, 함께하는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하 주님의 간곡한 당부 말씀이요,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1.기도하십시오! 

2.사랑하십시오!

3.함께(together) 하십시오! 끊임없이 한결같이 간절히 항구히!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가 하늘에서 굽어보리라.”(시편85,11-12).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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