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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린이 예찬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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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8-19 조회수575 추천수6 반대(0) 신고

어린이 예찬

-하늘 나라의 삶-

 

어제는 결혼과 이혼, 독신에 대한 예수님의 생각을 나눴고, 어제에 이어 오늘은 어린이에 대해 나눕니다. 강론쓰는 이 시간, 어린이같은 마음으로 책상앞에 앉아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참으로 사랑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와 손을 얹어 기도해 달라고 청했을 때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자 예수님의 즉각적 반응입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이어 생각나는 매3주간 저녁 성무일도시 두 번째 후렴과 이어지는 시편입니다. 이런 시편을 찬미노래로 바칠 때의 기쁨은 이루 형용할 수 없습니다. “어린이와 같이 되라, 그렇지 않고는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후렴에 이어지는 사랑스런 시편 131장입니다.

 

“주여, 잘난체하는 마음 내게 없삽고, 

 눈만 높은 이몸도 아니오이다.

 한다한 일들을 좇지도 아니하고,

 내게 겨운 일들은 하지도 않나이다.

 차라리 이 마음은 고스란히 가라앉아,

 어미 품에 안겨 있는 어린이인 듯,

 내 영혼은 젖 떨어진 아기와 같나이다.

 이스라엘아, 이제로부터 영원까지,

 주님만 바라고 살아가라.”

 

끊임없이 바치는 이런 찬미의 은총이 주님을 닮아 날로 어린이와 같은 사람이 되게 합니다. 자만심이나 자부심은 추호도 찾아볼수 없는, 순수하고 단순하고 열려있는, 신뢰심 가득한 겸손한 어린이 같은 영혼입니다. 요즘은 노인들은 많은데 어린이보기가 하늘에 별따기처럼 참 힘듭니다. 예전 어린이들 가르칠 때가 생각나 보관중인 옛 일기장을 들춰 봤습니다. 누렇게 바랜 공책은 글씨도 희미했습니다. 정확히 47년전 저는 28세 청년 교사로 12세 5학년 아이들을 가르칠 때 일기장입니다. 참으로 하루하루 치열했던, 가열찼던 초등학교 교사시절이었습니다.

 

지금 저는 75세, 당시 12세 아이들은 지금 59세가 되었고, 이때 맡았던 학급 인원은 80명 이상이었습니다. 1970년대 후반, 온통 어린이들과 함께 지냈던 8년간의 교사시절은 저에게 가장 행복한 때 였습니다. 지금은 하느님이 제 사랑 전부이지만 그 당시는 아이들이 제 사랑 전부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어린이들을 사랑했듯이 저도 그러했습니다. 일기장은 물론 글씨도 희미하게 바래있었습니다. 두 편의 동시를 발견하고 기뻤습니다. 

 

-‘아이들이 떠나간 빈 교실은

 썰물이 씻어간 바닷가

 먼 파도에 귀를 모으며 나는 

 귀여운 조개를 줍는다

 커텐 주름에서, 꽃병밑에서, 고운 향기로 살아오는

 맑은 웃음들,

 “저요, 저요, 저요”

 고사리 손의 물결속에 방실방실 떠오르는

 작은 얼굴들

 눈을 감으면 끝없는 물결소리

 내 작은 인어들은 어느 수평선을 가고 있을까?

 아이들의 옷깃을 고치듯

 비뚜러진 책상을 바로 놓는다’-1976.9.15.

 

또 하나의 동시입니다. 아마 교재준비후 7시 넘어 퇴근할 때의 심정일 것입니다.

 

-‘텅비어 있는 교실

 창을 통해 어둠이 들어오면

 마음의 창도 빛을 잃는다

 유리창 안에 들어왔던 하늘도

 초롱초롱 빛나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말소리도 흡수해버린

 교실은 말이 없다

 밤이 무척 쓸쓸하고 무섭지만 

 아이들의 꿈을 꾸면 즐거워진다 

 내일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1976,9,18

 

이때의 추억이 지금도 산책중 동요를 부르도록 부추깁니다. 지금도 즐겨부르는, 해방후 가장 먼저 많이 불렸다는 ‘새나라의 어린이’입니다. 새나라의 어린이는 하늘 나라의 우리로 생각해도 됩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어린이이기 때문입니다.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새나라의 어린이는 서로서로 돕습니다.

 욕심쟁이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나라

 새나라의 어린이는 몸이 튼튼합니다.

 무럭무럭 크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나라.”

 

해방후 새나라 건설의 열기를 느낄 수 있는, 지금도 즐겨 부르는 동요입니다. 어떻게 찾은 나라인데... 어제 원장수사에게 부탁의 메시지와 더불어 태극기 선물도 받았습니다. 

 

“내 솜씨로는 안되니 가능하면 태극기 A4용지 크기로 출력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집무실 십자고상밑에 붙여놓고 애국심愛國心을 진작振作시키며 독립운동獨立運動하는 마음으로 살려구요!”

 

광복 78주년을 지났지만 진정한 독립은 아주 멀었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마음 역시 어리이같은 순수한 마음의 발로라 믿습니다. 오늘 강론은 어린이 예찬입니다. 아무리 나이 들어 늙어도 마음은 순수한 어린이들입니다. 다시 이런 어린이 마음을, 동심童心을 살아야 하겠고, 참으로 예수님처럼 어린이들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칼릴 지브란의 아이들에 대해서 잠언 역시 깊고 아름답습니다.

 

“그대의 아이들은 그대의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란 스스로를 그리워하는 

 큰 생명의 아들딸이니

 그들은 당신을 거쳐 왔을 뿐 

 그대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또 그들이 당신과 함께 있을지라도 

 그대에게 소유된 것이 아니다.

 그대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으나 

 그대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 마라.

 아이들에게는 자기만의 사고가 있으므로.

 그대의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을 줄 수 있으나

 영혼까지 가두려고 하지 마라.

 아이들의 영혼은 그대가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에서 조차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으므로.

 그대가 아이들과 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을 그대와 같이 만들려고 하지는 마라.

 생명은 뒤로 물러가지 않으며 결코 어제에 머무는 법이 없으므로,”

 

예수님의 어린이들 사랑 깊이에는 이런 어린이관이 자리하고 있음을 봅니다. 비단 어린이뿐 아니라 동심을 살고 싶은 우리들 하나하나 영혼에 대한 묘사처럼 생각됩니다. 제1독서 여호수아 이름은 그대로 예수입니다. 두분 다 어린이같은 영혼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며 하늘 나라를 사셨던 분입니다. 어제에 이어 계속되는 여호수아의 마지막 열정과 순수를 다한 연설입니다. 여호수아의 연설에 주님을 섬길 것을 약속하는 백성들이 순수한 어린이들 같습니다. 

 

“이제 너희는 주님을 경외하며 그분을 온전하고 진실하게 섬겨라. 누굴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이구동성, 이에 대한 한 목소리로,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거듭 응답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대로 순수한 영혼의 어린이들같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경외하며 섬기듯, 예수님을, 이웃 형제들을 겸손한 사랑으로 섬길 때 동심도 활짝 피어날 것입니다. 마지막 여호수아의 죽음이 장엄합니다. 

 

‘이런 일들이 있는 뒤에 주님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죽었다. 그의 나이는 백 열 살이었다.’

 

가장 확실한 사실은 언젠가 죽는 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죽음을 눈 앞에 환히 두고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 때 어린이같은 순수한 영혼에 하늘 나라의 삶일 것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어린이같은 마음으로 하늘 나라 천국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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