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 삶의 스토리는? 내 삶의 콘텐츠는?”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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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3-08-25 | 조회수382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내 삶의 스토리는? 내 삶의 콘텐츠는?” -사랑이신 하느님 중심의 삶-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시편146,1ㄴ)
오늘 화답송 후렴처럼 끊임없는, 한결같은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이 각자 삶의 아름다운 스토리(story)와 콘텐츠(contents)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줍니다. 일어나서 맨먼저 강론 쓰기전 일별해 보는 인터넷 메인 뉴스입니다. 미사시 청원기도를 위한 준비이기도 합니다. 역시 메인 뉴스는 어제부터 방류한 일본의 핵 오염수였습니다.
“일본, 오염수 결국 바다로 쏟아냈다. 올해만 3만t 방류 예정; 2011년 3월 원전 폭발 사고로 인해 발생한 방사능 오염수 134만t을 30년 이상 바다로 흘러 보내는 것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여파로 한,일 양국 모두에서 수산물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관련 소비가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태평양 침공, 1200일 지나면 남해에 삼중수소 영향”
이런 메인 뉴스에 태평양 연안 국가들의 우려와 탄식, 규탄으로 가득한 뉴스였습니다. 참으로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하거나 묵과할 수 없는 일이 국가에 의해 공공연히 자행되는 현실입니다. 참으로 인류의 생존을 위해 앞으로 전개되는 활동에도 예의 주시하여 기도와 동시에 행동에 옮겨야 할 것입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스토리와 콘텐츠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엊그제 어느 교구 사제의 무심코 한 말, “스토리가 있어 재미있어 지루한 줄 모르고 들었습니다.”라는 말마디중 ‘스토리’가 마음에 꽃쳤고 이어 연상되는 ‘콘텐츠’ 말마디와 더불어 어제는 하루 종일 두 말마디를 묵상했습니다. 영어 스토리는 ‘일정한 줄거리를 담고 있는 말이나 글’을, 콘텐츠는 ‘담고 있는 내용물’을 뜻합니다. 번역보다는 스토리와 콘텐츠가 마음에 와닿아 영문자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정말 현대판 예언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언론입니다. 크고 작은 공동체는 물론 정치 지도자들의 삶의 스토리와 콘텐츠를 여과없이 소개하여 공동체 성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사실 지금까지 삶의 스토리와 콘텐츠를 보면 미래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짜 예언자들처럼 가짜 언론, 가짜 뉴스가 얼마나 큰 범죄인지 드러납니다.
오늘 강론 제목은 “내 삶의 스토리는? 내 삶의 콘텐츠는?-사랑이신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몸의 건강에는 최대 관심을 쏟습니다. 이런 몸의 건강에 관심을 기울이듯 하루하루 날마다 내영혼, 내정신, 내마음의 건강에도, 특히 내 삶의 스트리와 콘텐츠에도 최고의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모든 것을 보고 배웁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습니다. 윗 사람이나 이웃의 삶의 스토리와 콘텐츠를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은 예외없이 삶의 스토리와 콘텐츠가 좋습니다. 아름답고 고운 꽃이 색깔이나 크기, 모양이나 향기가 다 다르듯 사람도 그러합니다. 세상에 똑같은 성인이나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특히 성인들이나 위인들의 평전을 보면 삶의 스토리와 콘텐츠는 다 다르지만 한결같이 아름답고 품위있고 향기롭습니다.
삶의 스토리와 콘텐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삶의 중심입니다. 삶의 중심이 좋고 살아 있어 또렷하고 분명해야 스토리도 콘텐츠도 좋습니다. 삶의 중심이 없으면 스토리도 콘텐츠도 없어 겉은 사람이지만 속은 괴물이요 악마요 야수요 폐인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영양가 없는, 공해가 되는, 좋은 스토리와 콘텐츠가 결핍된 영화나 책, 삶은 얼마나 많은지요! 사랑의 스토리와 콘텐츠가 결핍된 식탁은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습니다.
어제 주간지에 나온 글 제목도 잊지 못합니다. “인격보다 상품 앞세우는 한국 교육”, 올바른 인생관, 가치관을 통해 스토리와 콘텐츠 좋은 참사람을 우선하는 교육이 아니라 상품을 만들듯 유용성을 잣대로 교육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무수한 철부지 괴물을 양산하는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됨의 요소에 “철학, 실력, 용기”중 가치관의 철학이 결핍된 교육인 것입니다.
이런면에서 가톨릭교회의 매일미사는 얼마나 고맙고 중요한지요! 하느님께서 날마다 주시는 최고의 참 좋은 선물입니다. 주님의 미사은총이 우리 하나하나 하느님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해주면서 주님을 닮은 참 좋은 진선미眞善美와 신망애信望愛의 스토리와 콘텐츠를 형성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저는 피정 강론중 매일미사는 못하더라도 매일 미사전례문을 꼭 영적독서하듯 선택-훈련-습관의 수행을 강조합니다. 참으로 좋은 스토리와 콘텐츠를 위해 좋은 영적 선택과 훈련, 습관은 너무 중요합니다.
이런 참 좋은 삶의 스토리와 콘텐츠를 위한 결정적인 답을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주십니다. 답은 오직 이 하나뿐입니다. 구약의 613개 율법을 둘로 요약한 경천애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사랑의 이중계명입니다. 율법교사의 “가장 큰 계명이 뭐냐?”는 불순한 질문에 개의치 않고 주님은 정면돌파의 답변을 주십니다. 참으로 하느님 중심의 사랑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서와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있다.”
작금의 기후재난으로 인해 이웃 사랑은 공동의 집인 지구사랑, 자연사랑으로 확대되야 하는 절체절명의 현실입니다. 구별할 수는 있어도 분리할 수 없는 하나로 연결된 사랑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면 그 피조물인 이웃인 형제들과 자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웃사랑을 통해 하느님 사랑의 진위가 검증됩니다.
오늘부터 룻기의 시작입니다. 성인마다 다 다른 그 고유의 삶의 스토리와 콘텐츠입니다. 아브라함, 야곱, 이삭, 모세, 다윗의 스토리와 콘텐츠가 다 다릅니다. 그러니 누구의 삶의 스토리나 콘텐츠를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하느님 중심의 삶의 스토리와 콘텐츠를 형성해 가는 것입니다. 풀꽃 시인 나태주의 풀꽃시를 기억할 것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바로 룻기의 룻이 풀꽃같은 성녀입니다. 끝까지 시어머니 나오미와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일편단심 사랑의 고백에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하나로 녹아 있습니다. 참으로 작은 풀꽃처럼 그 삶의 스토리와 콘텐츠도 곱고 아름답고 향기롭습니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제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바로 이런 룻으로 부터 마침내 다윗이 나오고 우리 구원자 예수님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하느님 앞에 갔을 때 하느님은 우리 각자 삶의 스토리를, 콘텐츠를 참으로 살았느냐, 즉 각자 고유의 아름답고 향기로운 사랑의 스토리를, 콘텐츠를 살았는가 점검하실 것입니다. 바로 이 주님의 거룩한 미사시간 최후심판에 앞서 우리 모두 제 삶의 스토리와 콘텐츠를 점검해 보는 은혜로운 시간입니다.
“주님,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시고 당신의 진리로 저를 이끄소서.”(시편25;4.5 참조).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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