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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1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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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3-08-27 조회수343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제21주일 가해] 마태 16,13-20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너의 그 한 마디 말도 그 웃음도 / 나에겐 커다란 의미

너의 그 작은 눈빛도 / 쓸쓸한 그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너의 모든 것은 내게로 와 /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네]

 

‘산울림’이라는 밴드가 부른 <너의 의미>라는 가사 중 일부입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가 나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일입니다. 그가 하는 말 한 마디, 그가 하는 사소한 행동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기울이며 집중합니다. 그렇기에 하루에도 수십 혹은 수백 명씩 내 곁을 지나쳐가는 ‘행인’들의 그것과는 달리,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은 나에게 커다란 의미가 되고 기쁨이 됩니다. 때로는 그가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내 앞에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 이유가 너무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기에 아무리 어려운 수수께끼라도 풀어내기 위해 노력하지요. 그렇게 그와 나 사이의 관계는 점점 깊어져 가는 것입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존재이고 싶은, 내가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싶은 것은 비단 인간들만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주님께서도 당신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당신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스스로가 존재하는 이유와 의미에 대해, 그리고 주님과 관계 맺은 특별한 존재로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보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의미에 대해 묻고자 하시는데 그 전에 먼저, ‘신앙의 눈’으로가 아닌, ‘욕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게 당신이 어떤 모습으로 비치는지를 물으십니다. ‘틀린 답안’의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심으로써 ‘모범 답안’을 향해 나아가는 그분만의 특별한 교육방식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주님인 하느님께 희망을 두면서, 그분께서 언젠가는 구원자를 보내어 ‘선민’인 자신들을 구원해 주리라 믿었습니다. 그런 믿음과 기대가 ‘메시아’에 대한 신앙 속에 반영되었기에, 어떤 이들은 다윗과 같은 강력한 ‘임금’의 모습을, 어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특별한 제사를 드리는 ‘사제’의 모습을, 또 다른 이들은 이스라엘이 ‘강대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위대한 ‘예언자’의 모습을 예수님께 기대했습니다. 제자들이 메시아이신 예수님께 군중들이 기대하고 바라는 점들을 전하자, 예수님께서 이번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당신과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는 ‘제자’로서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예수님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들은 예수님께 무엇을 기대하고 또 바라는지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신앙’은 다른 사람이 알려준 지식으로 예수님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맺는 일대일 관계 안에서 예수님의 참모습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과의 특별한 관계 안으로 초대하시는 것이지요.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평생을 고기잡는 일만 해온 ‘무식한’ 어부 출신인 베드로가 성경에 대한, 그리고 신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그런 대답을 했을리 만무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들이 때로는 당최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처럼 느껴지지만, 그분께서 왜 그런 행동들을 하시는지 그 이유와 의도를 도무지 알 수 없어 답답할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사랑과 자비가 넘치시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한 가지 사실만은 마음으로 분명하게 느끼고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통해 베드로는 마음 속에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간직할 수 있었고, 그 힘으로 자신에게 닥쳐오는 시련과 고통들을 이겨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두고 “너는 행복하다”라고 선언하신 것이지요.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이 말씀은 당신을 믿고 따르는 공동체인 ‘교회’가 고통이나 시련을 겪지 않는다고 ‘보장’해 주시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는 예수님의 뜻을 따른다는 이유로 미움과 배척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더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어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든 과정들이 주님께 대한 믿음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이에 대해 오늘의 제1독서에서 하느님은 이사야 예언자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나는 그를 말뚝처럼 단단한 곳에 박으리니 그는 자기 집안에 영광의 왕좌가 되리라.”(이사 22,23)

 

‘무른 땅’에 박힌 말뚝은 박을 때 쉽게 박힌 것만큼 작은 충격에도 쉽게 뽑혀나갑니다. 그러나 단단한 돌 바닥에 박힌 말뚝은 박을 때 수많은 땀방울을 흘리는만큼 그 어떤 충격에도 뽑히거나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그 자리를 지키지요. 예수님은 우리가 이런 ‘말뚝’같은 믿음을 지니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께서 내 삶에 주고자 하시는 ‘의미’는 헤아리려고 하지 않고 그분을 이용하여 쉽고 편안한 삶만 누리려고 하면, 고통이나 시련이 닥쳤을 때 ‘구원’이라는 땅에서 금새 뽑혀져 나가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바라기만 하는 신앙 말고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의미를 찾는 신앙을, 하느님께서 나를 이 세상에 왜 보내셨으며 나를 통해 어떤 일을 하고자 하시는지에 귀 기울이는 신앙을 지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저승의 세력’이 유혹해도 흔들리거나 방황하지 않고 구원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갈 수 있을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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