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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깨어 있어라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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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8-31 조회수570 추천수8 반대(0) 신고

깨어 있어라

"깨어 있음도 훈련이요 습관이다"

-함께 희망하기(Hoping Together)-

 

 

“주님, 아침에 당신 자애로 채워 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시편90,14)

 

오늘 화답송 시편 성구가 위로와 힘이 됩니다. 오늘 새벽 산책시 놀랍고 신비스런 사실을 발견했고 확인했습니다. 곡식은 사람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큰 다 하는데 배밭사이 오솔길 배열매들이 그러합니다. 그 어느 배나무들보다 주렁주렁 달려 무럭무럭 자라나는 평화의 집 배밭사이 오솔길의 배나무 열매들이 그러합니다. 하찮은 미물도 사람이,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사랑의 발자국 소리가 그립고 반가운가 봅니다. 1년 365일 날마다 새벽 기도 산책 때 마다 제 강복을 받는 배나무들이니 그럴만도 합니다. 

 

오늘 밤도 집무실에 들어오자 마자 어제부터 시작한 것처럼 십자고상 태극기 앞에서 만세 오창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나라가 있고 교회가 있습니다. 

 

“하느님 만세!”

“예수님 만세!”

“대한민국 만세!”

“가톨릭 교회 만세!”

“요셉 수도원 만세!”

 

정신이 번쩍 들면서 깨어 있게 됩니다. 참으로 깨어 살아야 할 시절입니다. 어떤 때보다 간절하고 절박한 말마디가 “깨어 있어라”입니다. 사람이라 다 사람이 아닙니다. 참으로 깨어 있는 사람이 참으로 살아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옛 사막 수도자들의 한 가지 목표는 참으로 사는 것이었고, 깨어 있을 때 비로소 참으로 살아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어제 오랜만에 방문한 도반 사제의 고백성사가 있었고 보속으로는 말씀처방전과 함께 애국가 4절까지 콧팅한 자료를 드리며 1절까지 깨어 부르라 했습니다. 그대로 깨어 기도하는 고요하고 숙연한 분위기였고 감동했습니다.

 

“아, 고등학교 때 불러보고 처음입니다. 10년도 훨씬 넘은 것 같습니다.”

 

애국가를 부른 후의 고백이었고, 함께 십자가의 예수님과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니 흡사 둘다 독립운동가처럼 참 멋졌습니다. 이 또한 깨어 있음의 훈련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도, 회개도 결국은 깨어 살기 위함입니다. 영성생활의 직접적 목적은 깨어 있음의 순수요 궁극의 목적은 하늘 나라의 삶입니다.

 

“Hoping Together(함께 희망하기)!”

 

오늘 8.31일부터 9.4일까지 제43차 해외 사목 방문국인 몽골을 향한 영원한 현역이자 주님의 평화와 희망의 전사, 교황님의 모토가 참 멋집니다. 이에 한 형제는 주옥같은 말마디라 감탄했고 한 자매는 공동체의 모토로 삼았다 했습니다. 함께 희망할 때 저절로 모두가 깨어 있게 됩니다. 엊그제 8.29일은 경술국치(1910.8.29.) 113주간이 되는 날이었고 곳곳에서 추념식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날 일본은 오염수를 방류하기 시작했고, 국군의 요람 육사에서는 독립영웅 5인의 철거가 거론되기 시작했으니 참 반복되는 역사같아 이 또한 우리를 깨어 있게 합니다. 

 

저는 이런 묵상도 했습니다. 2차 대전 끝 무렵, 일제 패망시 3.1 독립운동시 민족대표 33인중 변절하지 않은 자는 한용운 시인 하나뿐이었다 합니다. 아마 일제 패망과 대한독립을 반기지 않았을 국민들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것입니다. 나라야, 민족이야 있든 없든 내 편하고 만족하면 된다는 민족의식 부재, 국가의식부재의 사람들이요 지금도 이런 무지몽매한 이들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이래서 해방후 온민족의 통절한 반성과 회개, 자숙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입니다.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 평전을 낸 이동순 시인의 “내가 돌아오지 말걸-홍범도 장군의 독백-”이란 장시長詩를 통분의 마음으로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소련 입국신고서에 직업은 '의병', 목적과 희망 항목에는 '고려독립'이라 쓰여 있었습니다. 아, 왜 이런 뉴스가 일간지에 안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역사를 잊어버린 육사에게 미래는 없다.”

 

말마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찌 육사뿐이겠습니다. 역사대신 민족, 나라, 공동체, 개인 모두를 넣어도 다 통합니다. 이래서 좋은 역사의 기억을 말하는 것이요 이래야 악순환의 역사를 멈출 수 있습니다. “기억이 없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A nation with no memory has no future)” 역시 어제 읽은 말마디도 같은 맥락입니다. 역사의식이 부재한 지도자들이 참으로 통탄스럽습니다.

 

이래서 어려서부터 올바른 역사 교육은 필수입니다. 역사교육 부재의 오늘의 교육현실은 그야말로 얼빠진, 넋빠진 교육입니다. 깨어 있음은 참으로 폭이 넓고 깊습니다. 과거를, 역사를 기억하는 것 역시 깨어 있는 행위입니다. “민중의 벗”이었던 고 김승훈 사제의 마지막 강론 주제는 무관심의 병이었습니다. 23년전 순교복자수녀원 피정지도시 머물고 계시던 신부님이 겸손히 고백성사를 청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그 이후 3년만(2003.9.2.)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21세기 인류의 가장 큰 병은 무관심의 병입니다. 이 무관심의 병이 지금 인류전체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고치기 힘든 무서운 병이 무관심의 병입니다.”

 

20년전 말씀이 지금도 여전히 호소력을 지닙니다. 바로 무관심 병의 치유를 위한 처방이 깨어 있음입니다. 참으로 잊어야 할 것을 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억하는 것이 깨어 있음입니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는 망각이 죄요 병인 것입니다. 참으로 깨어 있음은 하느님의 시야와 관심에 까지 확장됨을 요구합니다. 텅빈 자족적 폐쇠적인 깨어 있음이 아니라 온통 주변 세상에 환히 열려 있는 깨어 있음입니다.

 

지난 18개월 동안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의 무죄한 어린이들 540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교황님은 9월의 기도지향은 변두리의 열악한 곳에서 살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입니다. 만연된 가난과 시련, 목이 뻣뻣하고 무디어진 마음에서 벗어나 환영의 문화를, 살심장을 지닐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인구의 10% 7억이 굶주리고 있으며 16억이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지낸다는 교황님의 개탄이요 결론같은 말씀이었습니다.

 

“환영은 도움 이상이다.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형제자매를 회복시킴으로 타인을 우리 수준에 위치시킴을 뜻한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한몸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우리가 교회입니다. 참으로 깨어 있어야 할 교회인 우리들입니다. 깨어 살아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참으로 사는 것입니다.

 

“깨어 있음은 기억입니다. 깨어 있음은 은총입니다. 깨어 있음은 침묵입니다. 깨어 있음은 기도입니다. 깨어 있음은 기다림입니다. 깨어 있음은 인내입니다. 깨어 있음은 겸손입니다. 깨어 있음은 빛입니다. 깨어 있음은 사랑입니다. 깨어 있음은 관심입니다. 깨어 있음은 희망입니다. 깨어 있음은 회개입니다. 깨어 있음은 찬미입니다. 깨어 있음은 감사입니다. 깨어 있음은 평화입니다. 깨어 있음은 기쁨입니다. 깨어 있음은 개방입니다.”

 

깨어 있을 때 유혹도 마귀도 죄악도 범접하지 못합니다. 깨어 있음은 빛 자체이신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깨어 있음의 덕이 끝이 없습니다. 그러니 깨어 있음은 모두라 할 수 있습니다. 깨어 있음의 훈련과 습관이 영성생활에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요즘 유행되는 향심기도, 비움기도, 명상기도등 모든 기도수행이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 깨어 있음의 훈련이요 습관화입니다. 참으로 의식적 지속적 한결같은, 끊임없는 분투의 노력을 요하는 깨어 있음의 영성훈련입니다.

 

참으로 희망하는 자가, 기다리는 자가 끝까지 깨어 살 수 있습니다. 바로 주님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의 대상, 기다림의 대상,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외로움, 그리움, 기다림 모두의 갈망에 대한 근본적 해답은 주님뿐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자만이 끝까지 깨어 있을 수 있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제가 날마다 밤 1시에 일어나 깨어 강론을 쓸 수 있음도 이런 주님께 희망을 두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 뵈올 희망에 설레는 마음으로 일어나 깨어 쓰는 매일 강론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고맙게도 “깨어 있어라”가 주제입니다. 주님으로 상징되는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니 이 말씀 명심하고 마음의 눈 크게 뜨고 마음의 귀 활짝 열고 깨어 있으라,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깨어 준비하고 기다림이 유비무환의 지혜입니다. 모두가 깨어 있되 공동체의 지도자는 더욱 그래야 합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어떻게 하는 종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내가 진실로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참으로 오늘 지금 여기 제자리 꽃자리에서 깨어 제정신으로 제역할의 몫을 다하는, 제책임을 다하는 제대로의 삶이 바로 구원이요 하늘 나라의 실현임을 깨닫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 역시 우리에게 깨어 살라 주시는 기도 말씀처럼 들립니다.

 

“여러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처럼 여러분의 사랑도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며,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

 

그러니 주님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일일일생,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깨어 사는 훈련이요 습관입니다. 내일 9월부터는 영적으로 여름방학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깨어 살아야 하는 기도의 계절에 돌입합니다. 9월 순교자 성월, 10월 묵주기도 성월, 11월 위령성월, 그리고 대망의 기다림의 시기 대림시기입니다. 참으로 늘 깨어 참으로 사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이 거룩한 미사중 주님의 자비를 청합시다. 

 

“하느님, 우리 주의 어지심이.

 우리 위에 내리옵소서. 우리 손이 하는 일에 힘을 주소서.

 우리 손이 하늘 일에 힘을 주소서.”(시편90,17).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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